'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n번방 방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이 10일 시행되자 사전 검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까지 모두 들여다보는 것 아니냐'며 사찰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정치권에서 "고양이 영상도 검열당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인용하면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n번방 방지법 관련 기술을 개발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측은 "제기되는 의혹과 비판 대부분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과도한 우려"라고 단언했다.
AI가 영상 내용 보고 판단? "불법 영상물 코드값과 비교하는 것"
14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 따르면 'n번방 방지법'을 통해 차단되는 영상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심의·의결한 불법 영상물로 제한된다.
AI(인공지능) 프로그램 등으로 영상물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불법 촬영물 여부를 가리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조용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술총괄 담당자는 "플랫폼에 유통된 영상이 데이터베이스 돼 있는 불법 영상물에 해당할 경우 유통을 막는 단순한 필터링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영상 비교는 내용이 아닌 영상에 담긴 '디지털 코드'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걸러진다. 디지털 코드는 영상의 고유한 특징을 지정해 놓은 숫자 조합으로 암호화돼 있다. 조용성 총괄은 "올해 5월 전후부터 플랫폼 사업자들을 상대로 필터링 기술을 설명하며 법 시행에 준비해왔다"며 "유포자가 인코딩을 다시 하거나 혹은 '움짤'(움직이는 사진)로 만들어서 코드값이 일부 변형되더라도 기존 영상의 특징값(DNA)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필터링 기술로 식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AI 기술은 이 과정에서 영상 DNA를 추출하는 데에 사용될 뿐이다.
기존에 등록된 데이터와의 유사성을 식별하는 기술은 주로 논문 표절 등 저작권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이미 다수의 웹하드 사업자나 네이버 등 일정 규모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들은 같은 원리의 필터링 기술을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심의위) 관계자는 "네이버의 경우 AI 모니터링 기술을 활용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이미지 게시를 막아왔고, 일부 웹하드 사업자들도 저작권 침해를 막기 위해 필터링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n번방 방지법이 새로운 차원의 기술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n번방 방지법으로도 미진"... 불법촬영물 최초 유포 못 막아
방송통신위원회는 '살색이 많이 나오는 영상' '고양이 영상' 등은 n번방 방지법 시행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위원회에선 카카오톡 메신저에 고양이 영상을 올리는 과정에서 필터링 안내 메시지가 떴다는 주장에 대해선 "검토 과정에서 안내되는 문구이며, 확인 결과 해당 고양이 영상은 차단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n번방 방지법으로는 심의위에서 심의·의결하지 않은 다수의 불법촬영물은 걸러낼 수 없다고 지적한다. 특히 불법 촬영물의 최초 유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없는 한계점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심의위는 신고가 접수되는 즉시 심의지원단 확산방지팀에서 영상을 확인하고 24시간 내 데이터베이스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조용성 총괄은 "n번방 방지법은 불법촬영물 재유통을 막는 최소한의 조치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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