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모든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박일근 논설위원이 살아 숨쉬는 우리 경제의 산업 현장과 부동산 시장을 직접 찾아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집값이 꺾이고 있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이미 고점을 지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 집을 사면 가격 하락으로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게 정부 주문이다.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게 힘들어지고 금리도 오르고 있는 데다 종합부동산세 고지서까지 나오면서 ‘팔 사람’이 이전보다 늘어난 건 사실이다. 세종과 대구 등의 아파트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8년이나 쉬지 않고 오른 집값에 대한 피로감도 큰 상태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란 정부의 전망과 기대는 매번 빗나갔다. 양치기 소년(정부)을 더 이상 믿을 순 없다는 불신도 적잖다. 여전히 유동성이 넘치고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도 올해보다 적어 오히려 집값은 오를 것이란 반론도 거세다. 대출이 묶여 잠시 거래가 끊긴 것뿐이란 설명도 나온다. 대선과 지방 선거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집값은 정말 고점일까.
꼭지다 1. 세종·대구 하락 반전
최근 아파트 가격 상투론에 불을 지핀 건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다. 노 장관은 지난달 24일 CBS라디오에 나와 “집값이 확실히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제 얘기가 아니고 객관적 지표가 그렇다”고 강조했다. 노 장관은 근거로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 폭이 둔화하고 있고, 10월 서울 실거래가지수 잠정치가 마이너스로 반전됐다고 강조했다. 또 세종과 대구는 이미 하락하고 있고, KB국민은행의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가 추락한 사실도 덧붙였다. 이 지수가 기준선(100)보다 낮다는 건 집을 사려는 이보다 팔려는 이가 많다는 걸 뜻하는데 57.4(10일 기준)까지 하락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전국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도 99.2(6일 기준)로, 1년 6개월 만에 기준선 밑으로 떨어졌다.
꼭지다 2. 실거래가 절반 보합 하락
집값 하락론을 폈다 매번 틀려 체면을 구겼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다시 신이 났다. 그는 지난 8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매매시장의 경우 서울 일부 지역은 아파트 가격이 하락 진입 직전 수준”이라며 “11월 실거래의 절반이 직전 거래 대비 보합 또는 하락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비율은 9월 28.8%에서 11월 49.6%로 커졌다. 홍 부총리는 “아파트 경매시장 낙찰률(62.2%)도 연중 최저”라고 강조했다.
꼭지다 3. 심리지수 이미 고점 지나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은 집값이 이미 고점을 지났다는 입장이다. 이수욱 부동산시장연구센터 소장은 “집값은 2분기나 3분기 중 고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고 단언했다. 이 소장의 자신감은 부동산시장 소비심리지수 전망치가 하락세로 돌아선 데에서 나온다. 국토연은 매월 마지막 주 전국 일반가구 6,680명과 중개업소 2,338곳을 상대로 전화 조사를 한다. 이후 소비심리지수 실적치는 공개하고 전망치는 내부 자료로만 쓴다. 그런데 9월 조사부터 전망치가 기준선을 밑돌기 시작했다는 게 이 소장의 설명이다. ‘3개월 후 집값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에 9월과 10월 조사에서 모두 떨어질 것이란 응답이 오를 것이란 대답보다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다. 이 소장은 “금융기관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매수자는 좀 더 신중한 접근을 하기 시작했고, 기준금리가 오른 영향도 적잖다”며 “집값은 올해 고점을 지난 뒤 내년 하향 안정세로 접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꼭지다 4. 금리 인상, 대출 힘들어져
김영익 서강대 교수와 김경민 서울대 교수 등도 하락론자로 분류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로 올리면서 서울 아파트 가격이 변곡점에 돌입했고, 내년에 미 연준까지 금리를 올릴 경우 집값은 20% 가까이 떨어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오른다 1. 유동성 여전, 인플레이션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는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풀린 유동성이 여전하고, 모든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집값만 떨어지긴 힘들다고 설명한다. 내년 예산 규모도 607조 원이 넘는다.
더구나 집값 결정 요소 중 가장 중요한 수요와 공급 상황이 심상찮다.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올해보다 더 적다. 올해 집값 급등도 공급이 평년 수준에 못 미친 게 결정적이었다. 실제로 국토부 주택통계에 따르면 1~10월 주택 준공실적은 32만3,229호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7.1% 감소했다. 특히 서울 아파트는 3만4,831호로, 27.2%나 감소했다. 분양은 더 심각하다. 10개월간 서울 아파트 분양은 총 8,184호에 불과,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9.1%나 급감했다. 10, 11월엔 아예 단 한 건도 없었다.
내년은 더 골치다. 부동산114는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지난해 4만9,415가구에서 올해 3만1,211가구로 줄어든 데 이어 내년에는 2만463가구까지 급감할 것으로 집계했다. 수도권 집값과 상관 관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진 결혼 10년 차 가구 수는 올해와 내년이 큰 차이가 없다.
오른다 2.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 반토막
민간연구기관인 주택산업연구원도 내년 주택 매매가격이 2.5%, 전세 가격은 3.5% 올라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정부가 인허가 물량을 공급물량으로 간주해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실제로는 인허가를 받은 뒤 분양이나 착공하지 않은 물량들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주택 부족량이 전국 38만 호, 서울은 14만 호에 달한다는 게 연구원의 추산이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과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내년 주택 가격 상승률을 최대 5%로 제시하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정부에서 집값 고점이니 사면 안 된다고 얘기한 게 이미 한두 번이 아니지 않느냐”며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매수 우위 지표는 집값 전망시 큰 의미가 없는 수치”라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임대차계약갱신청구권을 모두 사용할 때까진 집값의 상승 압력이 더 센 것으로 보인다”며 “고점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올라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른다 3. 똘똘한 한 채 수요 더 커져
지난 몇 년간 집값 상승 전망이 모두 적중하며 눈길을 끈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도 정부의 집값 하락론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자본 시장에서 꼭지라는 건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라며 “정부의 집값 전망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제기될 수 있어 정말 신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집값이 거품이란 주장에도 반박했다. 그는 “일부 대기업은 신입사원 연봉이 1억 원에 육박하는 시대”라며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그동안 소득도 올랐고 대한민국 경제가 계속 성장한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대표는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가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를 키워 강남 아파트 가격만 더 올리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오른다 4. 강남은 신고가 경신
이창무 한양대 교수도 “집값이 고점이라고 단정할 정도로 분명한 신호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실거래가가 한두 달 떨어졌다 하더라도 과연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15~202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집값 상승률이 30% 안팎임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수도권 집값이 지나치게 올라 무조건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격이 오르면 그러한 힘으로 공급이 늘어나 자연스레 거품이 해소되는 게 정상인데 지금은 정부 규제가 이러한 흐름을 막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남권에서는 신고가 행렬이 여전, 고점론이 무색하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는 지난달 45억 원에 거래됐다. 직전 최고가인 42억 원을 경신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84㎡도 28억2,000만 원에 실거래가를 찍었다. 지난 8월 27억8,000만 원에 거래됐던 평형이다.
최근의 오피스텔 광풍도 새 집에 대한 수요가 여전하다는 걸 보여준다. 지난달 청약 접수한 경기 과천시 별양동 '힐스테이트 과천청사역' 오피스텔은 89가구 모집에 무려 12만4,426명이 몰려 경쟁률이 1,398대 1을 기록했다. 사상 최고 경쟁률이다. 투기 수요가 가세한 측면도 있지만 아파트 분양 물량 자체가 없자 아파트 대체 상품인 주거형 오피스텔이라도 사려는 수요가 몰려든 결과다.
판단하기 일러, 양극화 심화할 듯
지난 3일 경기 남양주 왕숙1지구를 시작으로 왕숙2지구와 부천 대장, 고양 창릉지구에 대한 토지보상금이 풀리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13조 원이 넘는 토지보상금이 다시 부동산을 매입하는 데 쓰일 경우 시장은 들썩일 수밖에 없다. 건설사의 한 임원은 “최근 동두천 등 수도권 외곽 지역과 세종과 대구 등 집값 하락은 단기 급등에 따른 조정의 성격이 강해 대세 하락으로 말하긴 섣부르다"며 "전체적인 집값의 향방은 좀 더 흐름을 확인할 필요가 있고, 오히려 강남은 고점이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어 내년 부동산 시장은 양극화 현상만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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