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Ⅱ, 이과 상위권 학생 대거 응시한 과목
1, 2등급 걸쳐 있던 학생들, 등급 뒤바뀔 가능성
평가원 "입시 전이라 정답 맞힌 학생들 피해 없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제를 두고 법원이 사상 초유의 '정답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이과 최상위권 입시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문제 자체는 겨우 2점짜리 문항 하나지만, 생명과학Ⅱ 응시생들은 이과 최상위권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서울대 자연계열, 의대 등을 노린 학생들의 경우 당락이 뒤바뀌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이주영)는 15일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2022학년도 수능 정답결정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평가원은 곧바로 항소 포기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전원 정답' 처리됐고 평가원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이 과목 응시생 6,515명의 성적을 온라인으로 제공했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곧장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1등급에서 2등급 떨어지면, 의대 수시 탈락 가능성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배점은 2점, 이 과목 응시자는 전체 응시생(44만8,138명)의 1.5%다. 그러나 생명과학Ⅱ는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응시하는 과목이라 전문가들은 이번 '전원 정답' 처리가 앞으로 있을 수시, 정시 모집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할 거라고 입을 모은다.
입시업계에 따르면 20번 문항의 정답률은 25% 정도다. 전원 정답 처리되면서 평균 점수는 약 1.5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평가원 재채점 결과 평균이 오르면서 표준점수 최고점은 기존 69점보다 1점 낮아졌고 만점자도 6명에서 13명으로 늘었다. 표준점수는 수험생의 원점수가 평균 성적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 지 나타내는 지표다. 평균이 낮으면 표준점수 최고점은 높아지고, 평균이 높으면 반대로 낮아진다.
또한 재채점 결과 1·2등급 인원이 종전보다 100명 넘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가원이 제시한 5번을 정답으로 채점했을 때는 1등급이 309명, 2등급이 587명이었지만 재채점 후 1등급은 269명, 2등급은 508명이었다. 1·2등급 합쳐 119명이 줄어든 것이다.
이로 인해 생명과학Ⅱ 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낮아져 수시모집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수험생이 발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다수 의대는 수시 모집에서 모든 과목의 1등급을 요구한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기존 1등급 구분점수에 걸쳐 있는 수험생이 약 172명, 2등급 구분점수에 놓인 학생은 약 400명이다. 1·2등급 합해 500여 명의 운명이 한순간에 뒤바뀔 수 있는 셈이다.
다만 평가원은 기존 정답자의 성적 하락에 따른 피해에 대해 "법원이 정답을 취소했기 때문에 '기존 정답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며 "입시 전형이 시작된 후라면 모르지만 성적 통보 전이라 정답을 맞힌 학생들의 피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시 마감 직후 정시접수 시작... 극심 '눈치작전'
30일부터 시작하는 정시 전형에도 연쇄 파장이 불가피하다.
생명과학Ⅱ의 표준점수 하락으로 이 과목 응시생은 다른 과학탐구Ⅱ를 선택한 학생보다 불리해졌다. 더구나 올해 수능은 수학 고득점자가 많아 과학탐구의 변별력이 더 높아져 미세한 점수 차이가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다. 생명과학Ⅱ 응시생 숫자는 6,515명으로 물리학Ⅱ(3,006명), 화학Ⅱ(3,317명), 지구과학Ⅱ(3,570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올해 수능이 예상을 뛰어 넘는 '불수능'이었고 사상 처음으로 문·이과 구분을 없앤 통합형으로 치러져 수험생들이 본인의 위치와 합격 가능 수준을 가늠하기가 더 어렵다는 변수도 있다.
게다가 이번 사태로 수시합격자 충원 등록 마감일이 28일에서 29일로 하루 미뤄진 탓에 30일부터 촉박하게 정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는 점도 혼란을 부채질한다. 정시 접수 시작 전날 저녁에야 수시 이월(수시에서 탈락해 정시로 넘어가는) 인원 파악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극심한 '눈치작전'이 불 보듯 뻔하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올해는 문·이과 통합 수능으로 이과에서 문과 교차지원이 있고 합격선 예측이 어렵다"며 "또 정시 선발 규모 파악까지 어려워 혼란 발생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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