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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오류' 무료 변론한 변호사 "생명과학 전공한 나도 2시간 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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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오류' 무료 변론한 변호사 "생명과학 전공한 나도 2시간 헤매"

입력
2021.12.17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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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 상대 승소 이끈 김정선 변호사
이의제기 묵살 평가원 보며 변론 결심
직접 문제 풀어본 재판부 노력에 감사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취소 소송을 승리로 이끈 김정선 일원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정선 변호사 제공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취소 소송을 승리로 이끈 김정선 일원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정선 변호사 제공

"생명과학을 전공했던 저도 처음에는 문제를 못 풀었어요. 2시간 정도 스터디를 하고 나서야 겨우 풀겠더군요. 그렇게 풀어 보니 이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걸 100% 확신하게 됐어요. 이 당연한 지적을, 평가원이 받아들이지 않더군요."

그 어렵다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한 대학수학능력(수능) 시험문제 출제오류 소송을 승리로 이끈 전북 익산의 일원법률사무소 소속 김정선(43) 변호사가 16일 밝힌 소회다. 김 변호사의 소회에는 우리 수능의 문제점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시험 이름처럼 수학 능력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변별력 높이려 과도하게 어려운 문제를 내고,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명공학 공부한 나도 어려웠다

김 변호사가 이 사건을 맡게 된 건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지난달 18일 수능 정답 공개 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이 이상하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래서 직접 풀어 봤다. 그럴 만한 것이 김 변호사는 생명과학 계열 대학을 3학년까지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봐서 한약학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땄고, 그 다음 로스쿨 1기 시험을 통과해 2012년 변호사가 됐다.


출제 오류 논란 끝에 전원 정답 처리된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출제 오류 논란 끝에 전원 정답 처리된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홈페이지


문이과를 다 겪은, 자기 같은 사람도 제대로 풀 수 없는 문제를 내는가 싶어서 놀랐다. 이거 문제가 잘못된 게 맞다고 확신했는데 평가원이 문제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진행 중인 다른 사건이 많아 짬을 낼 여유가 없었지만, 아는 사람을 통해 이 사건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 왔을 때 거절하지 못한 이유다. 김 변호사는 "이렇게 확실한 오류를 평가원이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일이 매번 반복될 것 같았고, 그건 막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수임료를 받지 않고 무료변론했다.

이의 인정 않는 평가원 보고 무료변론 결심

우선 정답 발표를 막기 위해 본안 소송과 함께 가처분 신청을 먼저 냈고, 결국 생명과학Ⅱ 응시생 6,515명에게는 이 과목 점수가 공란으로 처리된 성적표가 발급됐다. 1994년 수능 제도 도입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본안 소송에서도 법원은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김정선 변호사와 학생들이 1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2022 수능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관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 첫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김정선 변호사와 학생들이 10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2022 수능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 관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 첫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김 변호사는 우선 수험생들에게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수험생들과 단톡방을 열었는데, 거기에서 수험생들은 자발적으로 여러 자료를 찾아줬고, 평가원 풀이 방식의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했다.

재판부도 마찬가지다. 김 변호사는 33쪽에 이르는 판결문을 읽었을 때 "아 재판부도 이 문제를 직접 풀어봤구나"라고 생각했다. 판결문 자체가 수험생과 평가원의 문제 풀이 방식을 하나씩 다 비교해둔 것이어서다. 김 변호사는 "재판부도 짧은 시간 안에 공부해서 직접 이 문제를 풀어 봤으니 오류라는 걸 확신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가원, 귀를 더 크게 열어야

이 소송의 최대 난관은 '시간'이었다. 정답, 채점, 성적, 입시 전형 등 줄줄이 이어진 일정을 감안하면 최대한 압축적으로 빨리 끝내야 하는 사건이었다. 쪽잠을 자고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 가며 보름의 시간을 보냈다.

그렇기에 더더욱 평가원의 대처가 아쉽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을 진행하면서 보니 평가원이 수능 출제, 검토, 이의제기 처리까지 전 과정을 도맡는 데다 그 내용을 밖에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구조였다"며 "이의제기를 투명, 공정하게 처리하는 제도가 이번 기회에 꼭 마련돼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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