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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으로 세상의 틀을 깨부수고 싶다"…여자를 돕는 여자, 댄서 아이키

입력
2021.12.22 04:30
수정
2021.12.22 14: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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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여자를 돕는 여자들 특별 인터뷰] 댄서 아이키

편집자주

한국일보 '허스토리'가 인터뷰 시리즈 '여자를 돕는 여자들(여.돕.여)'을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여성의 영토를 넓혀나가는 이의 인터뷰를 10회에 걸쳐 담습니다. 이 개척자들의 서사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더 단단히 연결되려는 취지입니다. 더 많은 독자들과 의미를 나누기 위해 댄서 아이키의 특별 인터뷰 전문을 공개합니다. 다른 시리즈는 23일 밤 종료되는 크라우드 펀딩 (https://tum.bg/l6H8cX) 후원을 통해 읽으실 수 있습니다.

'엄마는 이래야 돼' '며느리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 '댄서는 이래야 돼'…. 댄서 아이키(32)는 이 같은 세상의 규정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모습만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엄마가 집에서 애는 안 키우고 뭐해?" "집안일은 대체 누가 해?" 무례한 질문에 반박하고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그의 유쾌한 수단은 춤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엄마는 이래야 돼' '며느리는 이래야 돼' '여자는 이래야 돼' '댄서는 이래야 돼'…. 댄서 아이키(32)는 이 같은 세상의 규정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모습만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엄마가 집에서 애는 안 키우고 뭐해?" "집안일은 대체 누가 해?" 무례한 질문에 반박하고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그의 유쾌한 수단은 춤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2014년 어느 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쿵쿵 격한 비트 소리. 아이를 낳은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한 여성이 뭔가 홀린 듯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발길이 닿은 곳은 목욕탕 2층의 허름한 헬스장. 그곳에서 중년의 여성들은 화려한 쫄쫄이 옷을 입고 격렬하게 땀을 흘리고 있다. 한동안 생기를 잃었던 산모의 눈이 반짝거린다. ‘그래, 나는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지.’ 그 길로 스물여섯의 어린 엄마는 에어로빅 군단에 합류한다.

2021년을 강타한 Mnet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에 출연하며 정상급 댄서로 자리매김한 아이키(32·본명 강혜인)의 '초심'에는 에어로빅이 있다. 중학교 3학년, 우연히 문 두드린 동네 댄스학원에서 ‘라틴 댄스’를 알게 된 이후 단 한 순간도 춤을 놓지 않은 그였다. 24세에 이른 결혼을 하고 25세에 출산했을 때만 제외하고 말이다. 이후 그의 삶은 '춤을 출 수만 있다면'의 연속이다. '노래가 좋아'라는 장기자랑 TV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정도로.

지금, 댄서 아이키는 스스로 '교집합'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됐다. 2016년, 댄싱듀오 ‘올레디’를 결성해 라틴과 스트리트댄스를 결합한 퓨전 댄스를 개척한다. 2019년 미국 NBC 댄스 오디션 프로그램 ‘월드 오브 댄스’에 참가해 4위에 오른다. 제자들과 뭉쳐 만든 크루 ‘훅(HOOK)’은 댄스 종류인 힙합(Hiphop)과 크럼프(Krump)의 ‘교집합’이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매번 섞고, 실험하고, 틀을 전복하는 그를 두고 댄스 씬(scene)의 누군가는 ‘짬뽕’ ‘아웃사이더’ 같은 낙인을 찍는다. 정통이나 주류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세상이 어떠한 이름으로 그를 규정할지라도, 아이키는 개의치 않는다. 그는 ‘엄마’이자 ‘아내’이고 ‘딸’이자 ‘며느리’이며, 그리고 ‘여자’다. 그와 동시에 뼛속까지 '댄서'다. 고정된 성 역할에 속박되지 않고 마음껏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아이키를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1. “‘스트릿 우먼 파이터’ 출연을 결심한 계기가 ‘여돕여’였어요”

합당한 일로 논쟁을 벌여도 주체가 여성이기만 하면 한국 사회는 쉽게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스우파의 여자들은 서로를 향해 소리 치고 욕설을 하고 맨몸을 부딪히며 싸우지만, 이들의 정정당당한 경쟁을 누구도 쉽게 '여.적.여'라 부르지 않는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오로지 실력으로 존재를 증명했기 때문이리라. 한지은 인턴기자

합당한 일로 논쟁을 벌여도 주체가 여성이기만 하면 한국 사회는 쉽게 '여.적.여(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딱지를 붙인다. 스우파의 여자들은 서로를 향해 소리 치고 욕설을 하고 맨몸을 부딪히며 싸우지만, 이들의 정정당당한 경쟁을 누구도 쉽게 '여.적.여'라 부르지 않는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오로지 실력으로 존재를 증명했기 때문이리라. 한지은 인턴기자

-‘여자를 돕는 여자들(여.돕.여)’이라는 수식어에 미뤄 자신을 평가해 보자면요.

“스우파에서 확실히 ‘여.돕.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출연 결심의 계기가 바로 여.돕.여였거든요. 다른 댄서들에 비해 저는 빨리 방송에 노출된 편인데요. 여러 경험을 해보니 좋은 점이 정말 많고 혼자 누리는 것이 참 아깝더라고요. 스우파라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다른 여성 댄서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출연하게 됐습니다.”

-스우파가 종영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화제성과 인기가 여전해요. 스우파의 어떤 지점에 대중이 매료됐다고 생각하나요.

“스우파를 연출한 최정남 피디님으로부터 배운 말인데요. 지금을 ‘초예능 시대(hyper entertainmentism)’라고 한대요. 기존 예능 장르를 벗어나 새로운 카테고리에서 또 다른 리얼리티가 열리는 것을 의미한대요. 지금까지 음악 경연 예능 등은 많았잖아요. 그런데 댄스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리얼리티를 담았기에 빵 터지지 않았나 싶어요. 스우파의 여성들은 거침이 없잖아요. 욕도 하고, 진짜 싸우고, 이기려고 하고, 그러다가 서로 막 웃고. 이런 현장감을 많이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요.”

-일부 스트리트 댄서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스우파 출연 댄서 모니카에 대해 “제대로 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고 저격하는 일이 있었어요. 대중이 잘 몰랐던 스트리트 댄스 씬의 위계질서나 차별이 이슈가 됐죠. 스트리트 댄서로 성장하고 인정받는 이른바 ‘정통 코스’가 있는데, 매스컴을 타는 등 이와 다른 경로로 유명해진 댄서에 대한 ‘스트리트 댄스 씬’의 적대감이 수면 위로 드러났어요.

“솔직히 말씀드려도 돼요? 요즘에 누가 ‘정통 코스’로 요리 드시나요. 저는 좀 답답했어요. 아이키는 댄스 씬에서 아웃사이더였다는 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길을 만들어 왔고 그래서 증명된 게 많잖아요. 그래서 구구절절 ‘춤은 이래야 한다’ ‘정통 코스는 이렇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같은 말로 그들처럼 반박하고 싶진 않아요. 이미 저는 제가 승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이키다운 정면돌파네요.

“스우파를 계기로 지금 댄스 씬에는 많은 변화가 있어요. 댄서 한두 명이 아니라 여성 댄서 수십 명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무척 잘되었고 새로운 길이 열린 거잖아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댄서들에게 부정적인 분들도 생각을 열어 주었으면 좋겠어요.”

-유명해지는 일련의 과정에 얼마나 고군분투했겠어요. 좌절하고, 절망하고, 혹은 많은 이가 공격하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춤을 추는 동력이 있다면요.

“아이를 낳고 많이 달라졌어요. 멘털이 세졌어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릴 때 ‘내가 아이 낳은 산통만큼 힘들겠어?’ 생각하곤 해요. 너무 아팠거든요. 지난해 큰 인기를 얻은 ‘환불원정대(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한 에피소드로 아이키가 안무 창작을 맡았다)’ 때에도 악플이 많이 달렸었는데요. 그때도 ‘산통만큼 힘들겠어?’ 생각했어요. 누군가가 해준 말인데요. 진짜 응원해주는 사람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대요. 묵묵히 옆에 있어 주는 이들이 있기에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2. “저는 이미 스우파로 증명을 했다고 생각해요.”

"스우파 붐은 언젠가는 끝나겠죠. 저를 비롯해 스우파 댄서들은 그 동안의 것을 잘 정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어요. 저희는 정말 다른 댄서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한지은 인턴기자

"스우파 붐은 언젠가는 끝나겠죠. 저를 비롯해 스우파 댄서들은 그 동안의 것을 잘 정리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싶어요. 저희는 정말 다른 댄서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갈 수 있도록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똘똘 뭉쳐 있어요." 한지은 인턴기자

-스우파 마지막 경연이 훅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컬러 오브 훅’ 무대였죠. 가장 ‘훅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무대였는데, ‘엄마가 딸에게(양희은)’라는 잔잔한 곡에 수어 메시지를 담은 무대를 보여줬어요. 좋아하는 분도 있었지만, 낯설다는 평가도 많았어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하자면, 저는 원래 파이널 무대에서 에어로빅을 하고 싶었어요. 제가 쫄쫄이 에어로빅 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나 이렇게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엔딩은 ‘메롱’ 하는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끝내고요. 재밌지 않나요? 그런데 훅 크루원들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쌤, 저는 파이널을 통해 우리가 무궁무진하게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아이키의 색깔이라면 에어로빅 옷을 입고 춤추는 게 좋겠지만, 그 무대는 아이키가 아니라 훅의 색깔이어야 하는 무대였어요. 그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 뜻을 굽히고 크루원의 의사를 존중한 무대였습니다. 안무는 저희 팀 뤠이젼이라는 친구가 스우파 이전에 혼자 창작한 거예요.”

-굉장히 큰 용기를 낸 거군요.

“진짜 큰 용기였어요. 저는 무대 위에서 맨발로 춤을 춘 적이 없거든요. 그런 작품과 느낌을 표현하는 건 제게도 도전이었어요.”

-파이널 무대였기에 더더욱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요.

“저도 혼자 10번 이상 결정을 반복했어요. 피디님도 ‘이거 진짜 괜찮겠어요?’ 몇 번을 물었죠. 원래 저의 구상으로 가자고 팀원들을 설득해 보려고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자꾸 흔들리니 뤠이젼이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이 옆에서 이렇게 흔들리면, 앞으로 제가 축이 돼야 할 때 잘할 자신이 없어요.’ 그때 이번은 나를 위한 무대가 아니라 우리 친구들도 하고 싶은 무대를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무대를 할 때는 우승을 생각하진 않았어요.”

-평소 안무를 짜고 무대에서 춤을 출 때 결코 잊지 않으려는 딱 한 가지를 꼽자면요.

“독창성이요. ‘아이키스럽게’ 또는 ‘훅스럽게’ 표현해내고 싶은 색깔을 명확히 보이자는 생각이 있어요. 콘셉트가 될 수도 있고, 음악 표현이나 스타일링이 될 수도 있죠. 중요한 건 ‘애매하게 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즐겁고 싶으면 즐겁게, 잘하고 싶으면 잘, 웃기려면 웃기게 하자.”

-훅은 스우파 방영 내내 특히 ‘독창성’이 기대되는 무대를 선보였어요. 무대를 올리기 위해 어떤 고민을 거치나요.

“평소에 저는 계산을 잘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무대를 꾸미는 데에 있어서는 아주 계산적인 사람이에요. 해외 경연 같은 무대 경험을 해보면서 제게는 독창성과 퍼포먼스에 대한 계산된 법칙이 있어요. 그걸 그대로 무대에 적용하고요. 제 무대와 퍼포먼스만큼은 다른 사람이 건드릴 수 없어요.”

-그 법칙은 '대외비'인가요?

“네, '대외비'입니다. 무대 위에서 보이는 모습은 대부분 의도한 거예요. 예를 들면 스우파 초반에 훅을 두고 ‘아이키와 아이들’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말을 듣지 않도록 ‘우리가 하나가 되자’라는 의미로 콘셉트를 잡아서, 일곱 명 전원이 분홍색 가발을 쓰고 춤을 췄어요. 또, 스우파에서 했던 무대 중에 코미디 아티스트 ‘웻보이’를 섭외해 함께한 혼성 미션을 좋아하는데요. 위트나 재치, 해학을 좋아해서 일부러 그런 느낌을 계산해서 구성에 넣었어요.”

-무대를 이루는 여러 요소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공감과 소통이요. 예술, 개인기, 레벨 이런 것도 물론 중요한데요. 무엇보다 보는 분들이 같이 이해하고 공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해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꼭 안무에 넣으려 하고요.”

-안무를 짜는 평소 루틴을 간단히 설명해줄 수 있나요.

“평소 다른 퍼포먼스를 눈여겨보다가 멋있는 건 꼭 제 머릿속에 아카이브처럼 저장을 해놓죠. 언젠가 저의 오마주가 될 수도 있잖아요. 작업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하는 건 음악 선정이에요. 그리고 그 음악의 ‘기승전결’을 생각하고요. 그다음이 구성인데요. 어느 부분이 단체로 보여지면 멋있을까, 어느 부분에 포인트가 들어가야 할까, 동선이나 대형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군무에 들어갈 동작은 무엇이 좋을까 등 굵직굵직한 고민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춤은 가장 마지막에 짜요.”

-관객 반응을 미뤄 볼 때, 계획과 구상이 잘 맞아떨어지나요.

“저는 이미 스우파로 증명했다고 생각해요.”


3. “모두가 앞으로 달릴 때, 우리는 거꾸로 달려요”

그는 아이키로 고유하나, 동시에 훅이 있어 존재한다. 아이키는 6년가량 자신이 가르쳐온 제자들을 이끌고 '스우파'에 나갔다. 이들은 아이키가 동네의 작은 댄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때 만난 멤버들이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안경 쓴 선윤경은 무대 위에서 성숙함을 뽐내는 댄서가 됐다. ‘아직 아기 같아 섹시 콘셉트가 어색하다’는 다른 댄서들의 혹평에, 아이키는 황급히 마이크를 쥐고 팀원을 변호했다. “윤경이, 지금까지 제가 본 모습 중 제일 섹시했습니다.” 아이키는 그런 리더다. 한지은 인턴기자

그는 아이키로 고유하나, 동시에 훅이 있어 존재한다. 아이키는 6년가량 자신이 가르쳐온 제자들을 이끌고 '스우파'에 나갔다. 이들은 아이키가 동네의 작은 댄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할 때 만난 멤버들이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안경 쓴 선윤경은 무대 위에서 성숙함을 뽐내는 댄서가 됐다. ‘아직 아기 같아 섹시 콘셉트가 어색하다’는 다른 댄서들의 혹평에, 아이키는 황급히 마이크를 쥐고 팀원을 변호했다. “윤경이, 지금까지 제가 본 모습 중 제일 섹시했습니다.” 아이키는 그런 리더다. 한지은 인턴기자

-훅 하면 이두박근을 과시하는 시그니처 포즈가 먼저 떠올라요.

“스우파에 나가기로 결정된 뒤, 저희끼리 프로필 사진을 찍었거든요. 제가 민소매를 입고 당당하게 겨드랑이를 보여주자고 제안했어요. 여성들은 겨드랑이를 드러내는 것을 약간 부끄러워하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이것 또한 부끄럽지 않다’고 다 드러내 보이고 싶었죠. 얼굴에 더해 겨드랑이까지 보정 작업을 해야 했던 사진작가 분껜 죄송하지만요.”

-방송 초반 훅에 대해서는 ‘아이키와 아이들’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었어요. 리더로서 편치만은 않았을 텐데요.

“사실 ‘아이키와 아이들’이 맞았어요. 제가 이 친구들보다 춤을 더 오래 췄잖아요. 저로 인해 모였기에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어요. 다만 제가 처음에 그 소리를 듣고 뾰로통했던 건요, 다른 팀은 뭐 사정이 다른가요. 모니카와 아이들, 허니제이와 아이들, 리헤이와 아이들 아닌가요. 마치 저희 크루원이 나이가 어려서 쉽게 그런 말을 하는 것만 같았죠.”

-경연 프로그램에서 열 살 이상 차이 나는 미성년 팀원을 끌고 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아이키 리더십의 핵심을 꼽자면요.

“저에 대한 믿음이 우선 제일 중요해요. 저는 제 자신을 믿고 제가 하고 싶은 걸 무조건 합니다. 제가 하고 싶지 않은 건 애매한 거예요. 그럼 안 해요. 어쩔 수 없이 꼰대 같은 부분이 있어요. 물론 제가 자신 없거나 애매한 부분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고요. 완급 조절을 잘한 것 같아요.”

-스우파를 하면서 무너졌을 때가 있나요. 그때 팀은 어떤 힘이 돼 주었나요.

“스우파 초반 미션에서 제가 안무를 틀린 적이 있어요. 저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어서 멘털이 완전 무너졌어요. 방송으로는 안 나갔지만 혼자 펑펑 울고 성질 내고 머리 때리고요. 그런데 옆에서 친구들이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저를 잡아주더라고요. 그래 놓고 다음 날엔 ‘선생님 그때 막 이러던데요?’ 익살스럽게 흉내내며 저를 놀리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훅이 내는 시너지가 아닌가 싶어요.”

-제자이자 팀인 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아이키와 아이들’ 소리를 들을 때, 제가 크루원들에게 자극제가 되길 바랐어요. 이를 피드백 삼아 저를 뛰어넘길 바랐죠. 크루원 중 한 명은 당돌하게 '10년 후, 제게 일감을 주는 게 꿈'이래요. 그런데 저는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요. 이 친구들이 저보다 더 잘되고, 저만큼 잘돼서 저를 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2021년은 훅을 알린 해잖아요. 앞으로 훅은 어떤 모습이고 싶나요.

“저희 슬로건이 ‘넘버원보다는 온리원’이에요. 모두들 최고가 되고 싶어 앞으로 달릴 때, 저희는 거꾸로 뒤로 달려요. 최고가 못 되어도 되니, 우리만의 색깔을 갖자면서요.”


4. “저는 어떤 틀에 들어갔다 깨부수며 나오는 걸 즐겨요”

아이키의 자유분방함은 타고난 걸까. 그는 "하고 싶은 것을 좇아 하나하나 자신의 것을 찾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남의 시선이나 세상의 편견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지금의 아이키를 만든 내면의 힘이었다. 한지은 인턴기자

아이키의 자유분방함은 타고난 걸까. 그는 "하고 싶은 것을 좇아 하나하나 자신의 것을 찾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남의 시선이나 세상의 편견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것. 그것이 지금의 아이키를 만든 내면의 힘이었다. 한지은 인턴기자

-춤은 언제 처음 시작했나요.

“중학교 3학년 때 충남 당진의 ‘류경희 드림댄스’라는 학원에 수업을 등록했어요. 라틴 댄스, 댄스 스포츠 정식 학원인데요. 거기서 댄스 스포츠로 입문해서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했어요. 원래 축제 같은 곳에서 춤 추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하지만 댄스를 배우고 싶었던 건 아니었고, 살 빼려고 간 거였어요. 그런데 처음 수업을 듣는 순간 첫사랑에 빠지듯이 춤에 확 빠져버린 거예요. 휴일에 수업이 없는지도 모르고 잠긴 학원 문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어요. 일찍 결혼하면서 중간에 쉰 적은 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춤이 싫은 적은 없었어요.”

-25세에 출산을 하고 어떻게 다시 춤을 추게 됐나요.

“결혼을 했다고 꿈은 포기해도 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면 춤은 진짜로 재밌거든요. 결혼 때문에 못하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노력을 했어요.”

-엄마, 댄서, 여성, 며느리 등 많은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세상이 요구하는 고정적인 역할에 갇혀 있지 않는 모습에 또래 여성들이 큰 해방감을 느낀대요.

“원래 갇혀 있는 것에 굉장히 답답함을 느끼는 성격이에요. 전형적인 반항아 스타일이죠. 저는 엄마이고 가정을 이뤘지만 ‘며느리라고 꼭 이래야 돼?’ ‘엄마는 이런 헤어스타일 하면 안 돼?’ ‘댄서인데 새로운 거 도전하면 안 돼?’를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어떤 틀에 들어갔다가 그걸 깨부수면서 나오고, 또 다른 틀에 들어갔다가 그걸 깨부수면서 나오는 걸 즐기는 편이죠.”

-그럼에도 기혼 여성에게 세상이 지우는 한계가 많잖아요. 어떻게 극복하나요.

“피어싱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아이를 맡겼다가 데리고 올 때 시어머니 눈치가 보이는 거예요. 결혼과 출산 이후 막 춤을 다시 추기 시작했을 때였거든요. 사소한 액세서리도 눈치가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몇 주 동안 앞머리로 가리고 다니면서까지 하고 싶은 걸 다했어요. 사회적 책임을 지는 나이이고, 가정을 꾸렸고, 누군가를 책임지는 건 맞아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하고 싶은 최소한의 것을 해소하지 못하는 건 너무 불공평해요. 철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런 생각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드레드 스타일(레게 머리의 일종)을 하고 아이 유치원 체육대회에 가기도 하고요.

“당시 아이가 제 머리 스타일이 보기 흉하다고 했어요. 마치 거미가 머리에 붙어 있는 느낌일 테니 그 마음을 이해했어요. 그렇지만 아이에겐 이렇게 말했죠. ‘너는 너고 나는 나야. 내가 너에게 그 머리를 하라고 하지 않았잖아. 지금 엄마가 이 머리를 하고 싶어.’”


5. “제일 중요한 건 본질을 잃지 않고 도전하는 거예요.”

'앞으로 어디까지 스스로를 확장할지 궁금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키는 "제가 어떤 가능성이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그저 춤 하나 바라보고 매 순간 나답게 결정했는데 지금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한지은 인턴기자

'앞으로 어디까지 스스로를 확장할지 궁금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아이키는 "제가 어떤 가능성이 있나요?"라고 되물었다. 그저 춤 하나 바라보고 매 순간 나답게 결정했는데 지금에 이르렀다는 뜻이었다. 한지은 인턴기자

-TV를 통해 대중들에 자신을 알린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키를 보면 좀 더 자신의 영역과 정체성을 확장할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게 돼요.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요.

“오히려 되묻고 싶어요. 제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요. 그걸 알면서 여기까지 온 건 아니거든요. 하나씩 하나씩 해보다 보니 많은 분이 제3자 입장에서 그 점을 봐주었어요. 저는 정말 춤밖에 몰랐어요.”

-좋아하는 춤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데에 답이 있지 않을까요. 엄마 댄서, 그다음은 ‘할머니 댄서’ 어떤가요.

“좋은데요, 그랜마 댄서. 저는 본투비 댄서죠. 제게 춤이라는 뿌리가 있기에 지금 여러 가지 도전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맞는 거 같아요. 제일 중요한 건 본질을 잃지 않고 도전하는 것. 그래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에 대해서 도전을 많이 해볼게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그랜마 댄서(웃음). 농담이고요. 저는 그냥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사람’이요. 아이키만 보면 재밌대요. 요즘 방송에 되게 많이 나가잖아요. 후기를 봤을 때 ‘아이키 나오면 그냥 절로 미소 짓게 된다’는 말이 제일 좋아요. 계속 그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훅 크루원들을 비롯해서 많은 여자를 돕는 여자이지만, 이런 아이키(강혜인)를 있게 한 ‘나를 도운 여자’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시어머니요. 저와 굉장히 가까이 사시는데요. 결혼 후 춤을 다시 하려고 복귀한 후부터 지금까지 육아를 도와주세요. 만일 시어머니가 없었으면 지금처럼 이렇게 즐겁게 활동을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세상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나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여성이 많은데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여성들에게 한마디를 하자면요.

“글쎄요. ‘저처럼 사세요’라고 하기에는 제가 너무 철없이 사는 것 같아요.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하고 싶은 걸 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성인이 되고 가정이 생기고 엄마가 되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이 생기잖아요. 그러면서 오는 부담감 때문에 계속 눈치 보고 고민하게 되는데요. 사실 저도 항상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매일매일이 평탄할 수는 없겠지만 작은 것이어도 좋으니 하나씩 조금씩 누렸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즐거워야 가족이 즐겁고요. 여자가 즐거워야 세상이 즐겁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 그리고 많은 엄마들, 또 꿈을 가지고 계신 모든 분들이 즐겼으면 좋겠어요. 파이팅!

아이키에게 동세대 여성들에게 나누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슥슥 글씨를 써내려 갔다. "하고 싶은 거 '천천히' 하면서 삽시다." 그가 몸소 증명해 보이는 진심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아이키에게 동세대 여성들에게 나누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슥슥 글씨를 써내려 갔다. "하고 싶은 거 '천천히' 하면서 삽시다." 그가 몸소 증명해 보이는 진심이다. 한지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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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영상=이수연 PD leesu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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