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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운전실 CCTV 설치…인권 침해일까, 안전 강화일까

입력
2021.12.29 04: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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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사 식사, 용변까지 해결하는 '운전실'
국토부 CCTV 설치 추진에 "인권 침해" 반발
국토부 "사고 예방 및 사후 조사 강화 차원"
수술실, 어린이집 등 CCTV 확대 추세도 작용

20일 한국철도공사 소속 기관사 이진영(29·가명)씨가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운행하고 있다. 궤도협의회 제공.

20일 한국철도공사 소속 기관사 이진영(29·가명)씨가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운행하고 있다. 궤도협의회 제공.

지난 20일 광운대역을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는 서울 지하철 1호선 열차 운전실에 한국철도공사 소속 이진영(29·가명) 기관사가 앉았다. 5㎡(1.5평) 남짓한 크기의 운전실은 성인 3명이 들어서면 꽉 찰 정도로 비좁았다. 이 기관사에게 운전실은 '공적인 업무공간'이자 '사적인 생활공간'이다.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길게는 3시간은 운전실에서 보내야 한다. 이 기관사는 새벽부터 자정까지 불규칙하게 배정되는 스케줄 때문에 식사는 물론 용변까지 운전실에서 해결한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근무환경에도 별다른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시민의 발'이라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기관사에게 최근 달갑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일부 의원들과 국토교통부는 열차 운전실 내부의 폐쇄회로(CC)TV 촬영을 의무화하는 철도안전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기관사는 "그동안 CCTV 없는 상황에서도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끼면서 간이 변기를 이용했다"며 "앞으로는 업무 내내 감시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등 "다수 승객의 안전을 위한 조치"

2014년 7월 강원 태백시 상장동 태백역∼문곡역 사이 구간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영동선 열차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견인되고 있다. 태백=연합뉴스

2014년 7월 강원 태백시 상장동 태백역∼문곡역 사이 구간에서 정면으로 충돌한 영동선 열차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견인되고 있다. 태백=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CCTV 설치 의무화에 나선 명분은 안전 강화다. 현행 철도안전법은 CCTV가 운전실 내부를 촬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시행령에 운행정보 기록장치 등 운전조작 상황을 알 수 있는 장치가 있으면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단서 조항'이 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선 운전실 내부를 촬영하는 CCTV가 설치된 열차는 없다.

국토부는 운전실 내부 촬영을 통해 △사고 예방 △사후 조사 강화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재 열차에 장착된 운행정보 기록장치로는 열차의 가·감속과 제동 등의 조작 상황은 알 수 있지만, 이외의 구체적 정황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4년 승객 1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친 '태백선 열차 충돌 사고' 원인도 기관사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병원 수술실이나 어린이집 등에 CCTV 설치가 의무화되고 있는 분위기도 국토부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28일 "열차는 다수 시민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수술실이나 어린이집보다 사고 발생 시 피해가 더 크다"며 "감사원과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기관사들 "인권 침해" 반발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가 3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차운전실 감시카메라 설치 중단 촉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가 3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차운전실 감시카메라 설치 중단 촉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기관사들은 그러나 운전실 내부를 촬영하지 않아도 안전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운행 정보를 초단위로 기록하는 '운행정보 기록장치'가 장착돼 있고, 열차 전방을 촬영하는 CCTV와 DSD(운전자 경계 장치) 등의 시스템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굳이 카메라를 돌려 기관사의 근무 모습까지 촬영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신필용 철도노조 운전국장은 "기관사가 혼자서 장시간 운전해야 하는 열악한 업무환경과 오작동이 잦은 노후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CTV 설치가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더 클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신 국장은 "CCTV를 설치할 경우 오히려 기관사들이 CCTV를 의식해 업무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사고가 발생해도 기관사들이 촬영을 의식해 매뉴얼대로만 소극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술실이나 어린이집 CCTV 확대와도 결이 다르다는 게 기관사들 입장이다. 전국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궤도협의회) 관계자는 "수술실이나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는 여러 명을 촬영하지만, 열차는 기관사 1명만 촬영하기 때문에 사생활 침해 소지가 더 크다"며 "어린이집 CCTV도 아동학대 예방 효과가 있지만 그만큼 종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악용 사례도 많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CCTV 설치 의무화 조치가 가시화하자 기관사들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전국 열차 기관사 1만여 명이 소속된 궤도협의회는 지난달 8일부터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운전실 CCTV 설치 반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승현 사무국장은 "간이 변기까지 사용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CCTV를 설치하는 게 적절한 일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픽=김문중 기자

그래픽=김문중 기자

CCTV 설치를 두고는 전문가들 입장도 엇갈려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경전철 등을 제외하고 유인 운전 방식을 택하고 있는 데다, 기관사 혼자서 운전하는 경우가 많아 CCTV 필요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김영찬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기관사로 인해 발생하는 열차 사고는 지난 10년간 단 2건밖에 되지 않는다"며 "버스에는 '기사 보호 목적'으로 CCTV가 설치됐기 때문에 열차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밝혔다.

우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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