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섹스 로봇이라는 환상
편집자주
젠더 관점으로 역사와 과학을 읽습니다. 역사 에세이스트 박신영 작가는 '백마 탄 왕자' 이야기에서 장자상속제의 문제를 짚어보는 등 흔히 듣는 역사, 고전문학, 설화, 속담에 배어 있는 성차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번갈아 글을 쓰는 하미나 작가는 과학사 전공자답게 2030 여성의 건강문제, 덜 눈에 띄는 여성의 산업재해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간이 삶의 편의를 누린다고 할 때 무엇을 더 상상할 수 있을까. 어쩌면 기계를 통해 성적 욕망을 더 편하게 누리겠다는 발상은 자연스럽다. 여성들도 '반려가전'이라 부르며 여성용 섹스 토이를 사용하니까. 그러나 섹스 로봇을 떠올릴 때마다 의아한 것은 왜 꼭 이토록 기이하게 포르노화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피부는 혈관이 비치고 열선을 깔아 체온을 느끼게 한다. 앱을 이용해 성격을 커스터마이징할 수도 있다. 섹스 로봇이야말로 과학기술과 여성을 떠올릴 때 가장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주제다.
지난 13일 줌을 통해 과학기술여성연구그룹의 구성원들과 함께 섹스로봇을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과학기술여성연구그룹은 과학기술과 여성의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로 구성된 공동체다. 참여자는 백가을(서울대학교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과정 석사과정, 이하 백), 조희수(서울대학교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이하 조), 임소연(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이하 임), 그리고 논픽션 작가인 나 하미나(이하 하)이다. 좌담회 내용을 소개한다.
닮기만 했을 뿐 '로봇'이니 상관없다?
하: 섹스 로봇 이용을 허하라는 입장은 섹스 로봇은 로봇일 뿐 남성이 가진 성 인식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해요. 로봇으로만 소비하지 실제 여성은 다르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오히려 섹스 로봇이 있기 때문에 성적으로 빈곤한 남성의 해결책이 될 수 있고, 노인이나 장애인에게도 쓰일 수 있으며, 성범죄도 줄일 수 있다고요.
백: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성행위를 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하다, 유사 이래 강간은 항상 있어 왔다, 여성 형태의 로봇을 만들어서 사용하면 실제 여성을 대상으로 의사에 반해 성행위를 맺는 강간이 줄어들지 않겠느냐, 이런 말들을 하죠. 그들의 논리를 가져와서 적용해보면요. 인간이 예로부터 자신과 다른 존재에 반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백인이 흑인을 공격하고 싶어 하는 것도 자연스럽다고 하면서 흑인 모양의 마네킹이나 아주 리얼한 형태의 인형을 만들어서 폭력적으로 구는 것을 승인한다고 가정해봐요. 그러면 사회가 인종차별이나 혐오를 줄일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니란 말이에요. 오히려 폭력에 둔감해지게 만들죠. 다른 상황이라면 직관적으로 알 일을 인간 여자일 때는 사람들이 바로 인식을 못 해요. 노인과 장애인에게 폭넓게 쓰일 수 있다는 말도 기만적이죠. 자위기구가 실제 여성의 형태일 필요가 전혀 없고요. 섹스 로봇이 비싼데다가 상당히 무거워요. 씻기고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하: 어려서부터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과 섹스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자는 섹스면 다 된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지만 섹스 로봇 논의를 보다보면 친밀감의 교류를 원하는 것은 오히려 남성 쪽이에요. 여성 섹스토이는 '우머나이저' 같은 것만 봐도 기능에 충실한 기계죠. 남성 섹스토이는 여성, 혹은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닮은 것들이 많아요. 섹스 로봇도 결국 자위기구인데 여성을 닮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피부에 혈관이 비치는 등…. 그런데 살아 있는 여성을 닮기보다는 가슴이 과도하게 크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이하게 어긋난 방식으로 닮았어요. 여성을 닮았으나, 진짜 여성이 아닌 남성이 욕망하는 모습의 포르노화된 여성인 거죠. 거기에 더해 섹스 로봇과 친말감의 교류를 원하죠. 외로움을 해소해주기를요. 영화 '그녀'의 인공지능도 진짜 여성 같으나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남성 이용자 맞춤의 감정 노동을 다하는 가짜 여성이거든요. 저는 '그녀'의 인공지능도 사실상 섹스 로봇이라고 생각해요.
인간은 대체하고 싶은 것에 과학기술을 대입한다
조: 섹스 로봇이 로봇이라는 점에서 흔히 노인 돌봄 로봇인 효돌이나 다른 가사 노동 로봇과 비교돼요. 이게 좀 이상하게 느껴지고요. 제 생각에는 그보다는 섹스 로봇과 섹스 토이를 비교하는 연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사람을 닮지 않은 섹스 토이로도 충분히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는데 왜 그걸 사람의 형상으로 특히 여성의 모습으로 만들까요?
하: 효돌이와 섹스 로봇을 봤을 때 제가 느끼는 공통점은요. 사람들이 과학기술을 통해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체하고 싶은 것들을 본다는 것이에요. 효돌이를 봐도요. 부모님이나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건 고통에 연루된다는 것이고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뿐더러 윤리적인 책임을 느끼게 되죠. 그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기계에게 귀찮고 싫은 것들을 다 맡겨버리는 거죠. 돌봄 노동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 모른다고도 느끼고요. 섹스도 타자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율해 가야 하는 복잡한 의사소통이죠. 그 모든 얽힘을 거부한 채 자기 욕망을 배설하는 간편한 대상이 섹스 로봇인 거죠.
백: 섹스 로봇 논의를 할 때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네크로필리아(시체 애호증)예요. 몸으로서만 존재하는 여성은 사실 시체와 다름없어요. 네크로필리아의 정신 병리적인 분석을 살펴보면, 자신이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절대 거부하지 않는 어떠한 반응도 없는 존재에게 끌리는 거예요. 성이라는 건 사람들이 소통을 하는 방식 중 하나인, 굉장히 상호 작용하는 일이잖아요. 그걸 할 만한 능력이 없고 자기가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섹스 로봇을 욕망하고 옹호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하: 너무 공감하는 게 섹스 로봇을 들여다볼수록 이것은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이용자가 여성에게서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가 더 느껴진 달까요. 성욕 때문에 여성을 강간하거나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통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강간하는 것처럼요. 섹스 로봇은 여성을 닮아 있어 정복감, 전능감, 통제감을 주지만 진짜 여성은 아니어서 나를 거부할 수 없는 존재이죠.
백: 완전 동의해요. 네크로필리아와 맞닿아 있는 것이 나르시시즘이에요. 시체 또는 섹스 로봇을 보면서 그 모든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통제하니까요.
고상한 철학과는 너무 먼 실사용
조: 섹스 로봇을 진짜 쓴다면 너무 귀찮을 것 같아요. 나한테 맞춰서 다 설정을 해야 하고 모든 상황을 내가 통제해야 하니까. 사물인터넷(IoT) 기술이 인간의 삶을 상당히 바꿔줄 수 있을 것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구동하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귀찮아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개만 놔두고 다 없애버리게 되잖아요. 섹스 로봇도 설정 하나하나 맞춰 줘야 하고 어디 코드를 뽑아줘야 하고 다 노동이잖아요.
백: 윤활제를 음부에 직접 발라줘야 하고, 사용을 하려면 콘돔을 써야 청소하기 쉬울 거고, 안 쓴 경우에 뒤집어서 또 세척을 해줘야 하고. 다 관리가 필요한 것들이에요. 이거를 한 번 사용할 때 치러야 하는 노동력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사놓고서 안 쓰는 사람이 되게 많아요. 보면서 차라리 손으로 자위를 하는 게 천만 배 편하기 때문에.
임: 섹스 로봇을 과학기술학으로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네요. 하나의 섹스 로봇을 사서 주문하고 해외에서 배송을 받고 쓰고 관리하는 걸 보는 순간 온갖 남성 철학자들이 섹스 로봇에 대해 고상하게 떠드는 게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지 딱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장애와 기술을 이야기할 때도 기술을 통해 장애를 극복할 것이냐, 아니냐 이런 논의를 하지만 사실 실제 실행을 보면 그게 와장창 깨지잖아요. 그 사소한, 대개 폼나지 않는 일상의 노동을 보고 있자면, 기술이 무언가를 완벽하게 극복하게 해주고 해방시켜 준다는 게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거품이 쫙 빠지는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 더 차분하게 기술의 가능성과 한계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죠.
조: '리얼돌'이라고 하면 나에게 맞춰진 섹스 로봇이 딱 배달되어서 최상의 섹스를 선물해 줄 것처럼 상상하잖아요. 그래서 섹스 로봇을 사면 앞으로 인간끼리는 섹스를 안 할 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실제의 이용을 보면 보이는 거죠. 그거 언제 다 청소하고 있어요.
백: 가벼운 것도 무게가 40~50㎏ 정도 돼요. 여성기 부분만 탈·부착할 수 있게 해놨는데 그것도 생각해보면 너무 웃겨요. 현타 안 오나.
'가짜 여자'가 필요한 이유
임: 재밌는 게요. 섹스 로봇 말고 그냥 안드로이드 만드는 로봇 공학자들 보면 어쩜 그렇게 예외 없이 여자 안드로이드는 가상의 20대 여성을 만들고 남성 안드로이드는 자기를 닮게 만들어요.
백: 그러니까 나르시시즘이라는 거예요. 이 욕망의 원형이 피그말리온 신화 같아요. 자기 이상형인 여성을 조각하고서 너무 사랑한다며 울고 해서 아프로디테가 실제 여성으로 만들어주잖아요. 네크로필리아고 나르시시즘이죠. 조각상의 인격이 온전히 피그말리온의 투영으로만 구성되어 있잖아요. 어린 시절, 성장기, 노년기 등 자신만의 역사 없이 피그말리온이 섹스하기 좋은 청년기만 있죠. 조각상은 피그말리온의 판타지와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또 다른 피그말리온이고, 결국 피그말리온은 자기에게 도취된 거죠.
하: 남자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게 대체로 그런 모양새인 것 같아요. 정말 이 사람이 누군지 알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자기를 기쁘게 해줄 존재로서의 가짜 여성을 만들어놓고 홀로 사랑에 빠지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많은 폭력을 행사해왔고요. 섹스 로봇을 통해 우리가 보는 것은 결국 성적 빈곤에 처한 외롭고 불쌍한 남성이 아니라, 인간과의 상호 작용을 두려워한 나머지 온갖 노동과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시체와 사랑에 빠진 남성인 것이네요. 섹스 로봇 이용자의 성적 욕망이 좌절된 것보다는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에 한둘인가요?) 그들이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단념했다는 것에 더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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