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넷플릭스 '영혼 사냥'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작가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제58회 대만 금마장 시상식에서 장첸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1991년 에드워드 양의 걸작 '고령가소년살인사건'으로 데뷔한 장첸은 그동안 남우주연상 후보에 네 번 올랐고, 데뷔 30여 년 만에 마침내 주연상을 수상했다. 대만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 장첸은 왕가위의 '해피 투게더'와 '2046', '일대종사', 이안의 '와호장룡', 오우삼의 '적벽대전', 허우샤오시엔의 '자객 섭은낭', 천카이거의 '도사하산', 사부의 '미스터 롱' 등 거장들의 영화에 단골 출연했고, 최근에는 드니 빌뇌브의 '듄'에 조연으로 나왔다.
장첸이 남우주연상을 받은 영화는 '영혼 사냥'이다. 어디에서 수입했을까 살펴봤더니, 이미 넷플릭스에 있었다. 대만과 중국 영화를 종종 보고 태국과 필리핀 등 아시아 영화를 많이 보니까 추천에 떴을 법도 한데 '영혼 사냥'이 스트리밍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만, OTT 안에 있는 무수한 작품들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도 쉽지 않다. 세계 각국의 작품이 수시로 올라오는데, 내가 주로 본 작품들의 장르나 감독, 배우 등과 연결되지 않으면 화면에도 제대로 뜨지 않으니까.
'영혼 사냥'을 연출한 감독은 웨이하오 청. 대만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공포영화 시리즈 '마신자' 1, 2편을 연출한 감독이다. 원작은 SF 작가인 장보의 '이혼유술', '영혼 전달 기술' 정도로 해석되는데, 영화에서는 RNA 복원을 통해 인간의 뇌를 복제하는 기술로 나온다. 원제는 '집혼(輯魂)'. 집혼은 '영혼을 모으다'라는 의미인데, '집'에는 붙잡다는 뜻도 있다. 원작을 몰랐을 때는 전형적인 공포영화라고 생각했다. '마신자'의 감독이 연출했고, 제목도 공포영화 같고. SF가 원작인 것을 알았을 때는, '링' 시리즈 비슷한 이야기일까 했다. 영화로 만들어진 '링' 시리즈는 모두 저승의 악령,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이지만, 원작 소설의 3부에서는 SF와 겹쳐지면서 엄청난 스케일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장첸이 '영혼 사냥'에서 연기하는 캐릭터는 암 투병 중인 검사 량원차오다. 아내인 바오는 형사. 휴직을 하고 치료를 받던 차오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듣는다. 아내와 아이의 미래를 생각한 차오는 복직을 결정한다.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해야만, 가족에게 더 많은 재산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복직한 차오는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재벌그룹 회장 왕스충 살해사건 수사를 자원한다.
왕스충은 자택에서 살해당했다. 부인인 이롄은 전 부인의 아들 왕톈유가 죽였다고 주장한다. 하녀도 도망치는 왕톈유를 봤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흉기에는 이롄의 지문이 남아 있고, 피를 보고 정신을 잃었다는 증언도 신뢰하기 힘들다. 이면에는 가정의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며 우울증에 시달린 전 부인은 고대부터 내려왔다는 이상한 주술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 부인은 고대의 신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빌었다. 전 부인이 자살한 후, 완톈유는 동일한 주술에 빠졌다.
고아원에서 자란 이롄은 1년 전 왕스충과 결혼했다. 그런데 이롄의 방에는 모든 행동을 감시하는 폐쇄회로(CC)TV가 있다. 왕스충의 친구이며, 현 회장인 완위판이 이롄의 동의를 받아 설치했다고 한다. 이롄이 왕스충의 집에 살기 시작하고 몇 달 뒤,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가위눌린 것처럼 자면서 기이하게 몸을 뒤틀고, 헛것이라도 보이는 듯 벽을 보며 혼잣말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낯설고 소심하게 행동하던 이롄은 언젠가부터 당당해지고 거칠어진다. 전 부인의 영혼이 이롄의 몸에 들어간 것일까?
왕톈유가 왕스충에게 저주를 내리는 섬뜩한 의식, 빙의한 듯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이롄의 무표정한 얼굴, 전 부인의 잔혹한 자살 장면 등을 보고 있으면 '영혼 사냥'의 초반부는 전형적인 공포물이다. 그러나 중반을 넘으며 '영혼 사냥'은 SF와 멜로, 가족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와 섞이며 다른 길에 들어선다. '영혼 사냥'의 현재 시점은 2032년이다. 왕스충과 완위판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던 것은 RNA 복원기술이다. 암에 걸린 왕스충의 치료를 위해서 직접 임상실험을 하기도 한다. 뇌를 복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트렌센덴스', '채피' 등에서 뇌를 복제하여 인터넷 공간에 업로드하거나 로봇 혹은 다른 인간에게 복제하는 설정은 종종 있었다. '영혼 사냥'도 비슷한 설정을 이용한다. 왕스충의 욕망은 단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뇌를 복제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었다. 뇌를 복제하는 것은, 영적인 강령술과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영혼 사냥'은 공포물에 자주 나오는 빙의를 뇌의 복제, 인격의 전이라는 SF적 상상력으로 능숙하게 대치한다. 그러면서 차오의 암울한 현실과 연결시킨다. 차오는 왕스충 사건을 해결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차오는 발작을 일으키고 병원에 실려간다. 암이 전이됐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차오는 점점 쇠약해진다. 혼자 일어설 수 없고, 몸을 씻을 수도 없다. 언제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대로 차오는 죽어야만 한다. 차오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차오는 곧 죽는다. 기껏해야 2, 3년이 남았을 뿐, 죽음은 예정된 것이다. 차오가 떠난 후, 남은 자가 모든 것을 짊어져야 한다. 죽은 자는 차라리 편하다.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랑했던 사람이 영원히 사라지는 미래를 두고만 볼 것인가. 그를 살릴 방법이 있다면, 악마와의 계약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혼 사냥'의 모든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꺼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을 선택한다. '영혼을 잡는다'는 제목의 의미는, 체포가 아니라 자신의 옆에 사랑하는 이를 붙잡아두고 싶은 욕망으로 읽힌다.
'영혼 사냥'은 애절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니 그것이 주제다. 사랑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 결국은 사랑 때문에 몰락한다는 것. 그런 예정된 파멸의 와중에도 사랑을 위해 마지막 희망을 잃지 않는 이야기. 공포물이라고 생각하며 보기 시작했다가, 차오와 바오의 기구한 사랑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유일한,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먹먹해졌다.
장첸의 연기는 탁월하다. 암 환자이기 때문에 머리를 밀고, 13㎏을 감량했다. 고통의 상태를 드러내는 연기를 리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가장 탁월한 연기는 단지 육체의 변화가 아니다. 요동치는 마음이다. 바오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 희로애락의 모든 찰나, 일상을 초월하는 아득한 절망과 희망의 순간에서 차오는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 그런 차오를 연기하는 장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혼 사냥'은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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