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의 응시] '서울대 10개 만들기' 낸 김종영 경희대 교수 인터뷰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역대급으로 어려웠던 데다 출제 오류로 사상 초유의 정답 결정 보류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입시에 대한 관심이 달아오르고 있다. 수능이 변별을 위해 너무 어려운 문제를 출제한다, 대입을 위한 학력 수준 평가가 아니라 점수 경쟁으로 변질됐다는 오랜 지적이 재등장했다.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을 정하는 수능 체제를 바꾸자는 등 불공정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입시 제도 논쟁을 반복해왔지만 정작 교육 현실이 바뀐 건 별로 없다. 10년간 학령인구가 20% 이상 줄었는데 사교육비는 더 늘었다. 사교육 지출에 따라 입시 성적이 좌우되니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불평등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 낮에는 학교, 밤에는 학원이라는 풍경이 한국 교육의 정상이 된 지 오래다. 학교가 전쟁터라는 학생이 미국은 40%, 일본은 14%인데 한국은 80%를 넘는다. 수능 손본다고 이런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
사회학자인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책을 통해 입시가 아니라 좋은 대학을 늘려 거기로 가는 길을 넓혀야 이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문제 제기를 했다. 그는 이 제안을 대선 후보들의 교육 공약에 반드시 포함해야 할 "선거 승리를 위한 신의 한 수"라고 했다. 그를 만나 지금까지 입시 논쟁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서울대 늘리기 구상이 무엇인지 들었다.
SKY로 가는 고속도로 병목 체제가 문제
-이번 수능의 유일한 만점자는 고려대 합격 뒤 다시 공부해 서울대 가려는 반수생이었다. 대학서열을 좇는 듯한 모습이 씁쓸하다는 사람이 있다.
“우리 대학 체제가 서울대를 정점으로 그 아래 연세대, 고려대가 위치하는 심각한 피라미드 구조라서 그렇다. 미국 같은 경우 서열이 있지만 그렇다고 예일, UC버클리, 프린스턴, UCLA, 스탠퍼드, 칼텍, 존스홉킨스에 합격했는데 재수해서 하버드로 옮기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원화 체제라서 그렇다.”
-교육의 계층 상승 사다리 역할이 무력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균형 선발 등 보완 노력에도 불구하고 격차가 커지는 이유는.
“한국 교육의 핵심 문제는 극단적인 피라미드 구조의 대학 서열 체제인데 지난 75년 동안 이 시스템을 고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체제를 고속도로에 비유할 수 있다. 소위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로 향하는 고속도로 하나만 있으니 거기로 전국에서 모든 차가 몰려 병목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학생부종합전형이니 수능이니 본고사니 입시 제도를 만지는 것으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대입이 아니라 이런 병목 체제가 문제다.”
서유럽엔 대학 서열 없고 미국은 선택 범위 넓어
-대학의 수준 차이나 더 좋은 대학 가려는 경쟁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 아닌가.
“서유럽은 대학 서열이 거의 없는 평준화 체제이고 미국은 서열이 있지만 좋은 대학의 규모가 커서 선택 범위가 넓다. 독일은 대학의 서열이 없어도 훌륭한 대학 체제를 운영한다. 대학사회학을 창시한 미국 사회학자 버턴 클락은 서유럽에서 시작된 900년 대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혁명으로 1810년 독일대학의 개혁을 꼽는다. 그때까지 대학은 성직자 양성이나 상류층 자제 교육 위주로 사회적 지위를 재생산하는 지위권력이었다. 이를 연구 중심으로 바꿔 대학을 지위권력에서 창조권력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39개 소국으로 나뉘었던 독일이 1870년 통일된다. 이미 나라마다 적어도 하나 이상 우수한 대학이 있는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우리 상황으로 비유하면 각 도에 ‘서울대’가 있었다. 그래서 독일대학은 평준화 체제다. 한국 대학 체제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출발해 이름만 바뀌었을 뿐 해방 이후에도 서울대의 독점 지위가 이어져왔다.”
-미국 대학은 유럽과 어떻게 다른가.
“독일 대학이 연구 중심 대학이 되는 동안에도 미국 대학은 고전, 교양 위주로 배우기를 이어가 낙후했다. 20세기 초까지도 독일 대학들이 세계 최고였고 미국 학계에는 독일 유학파가 1만 명이나 됐다. 이런 분위기를 바꾼 인물이 35세에 하버드대 총장이 된 화학자 찰스 엘리어트였다. 독일 등 유럽 사정을 돌아본 뒤 ‘새로운 교육’이라는 글을 발표해 미국 대학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 그는 총장이 된 뒤 연구 중심 대학으로 하버드 개혁에 시동을 걸었다. 하버드가 보잘것없는 지방대에서 세계 일류대학으로 성장할 토대를 만든 것이다. 존스홉킨스가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며 독일 대학을 닮아간 것도 그즈음이다. 2차 산업혁명을 독일 대학이 선도했다면 3차 산업혁명은 20세기 중반 급격히 연구 중심 대학으로 바뀐 미국 대학이 이끌었다. 한국은 여전히 대학을 학벌을 주는 지위권력으로만 본다. 대학을 새로운 사회와 경제를 만드는 창조권력으로 보는 인식이 부족하다.”
지위경쟁만 벌이는 한국의 대학교육
-문재인 정부에서 대학 입시 정책이 혼란을 겪었다.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논란이 대표적이다. 무엇이 문제였나.
“교육 개혁의 방향타를 잘못 잡았다. 공론화까지 거치며 정시·학종 논쟁을 벌였지만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한국의 교육 문제는 대학 병목 때문에 생긴 것인데 입시만 만지고 있으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정부를 포함해 역대 어느 정부도 교육지옥으로부터 우리 사회를 구하지 못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면 이런 문제도 해결될 것으로 여겼던 때가 있었지만 여전히 헬조선이라고 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모두 SKY 가려고 하고 강남에 살고 싶어 한다. 대학교육의 독점화 체제로 지위 경쟁만 벌이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 이대로라면 이번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교육지옥은 계속될 것이다.”
-교육 문제는 입시를 손대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인가.
“교육 문제를 가능한 한 공정한 시합으로 만들어 풀어보려는 사람들이 소위 입시파이다. SKY라는 고속도로는 하나밖에 없어 거기에 들어갈 확률은 2%에 불과하다. 유럽은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다. 10개 대학이 네크워크로 형성된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는 12.5%가 들어간다. 이렇게 고속도로를 넓힐 생각은 하지 않고 하나뿐인 고속도로에서 공정하게 달리려고 애써봐야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교육 관료나 개혁가들의 접근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교육 공무원들은 대학에 대한 전문성이 약하다. 수직적 의사결정구조 때문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와도 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관료들이 서울 중심 의사결정에 익숙한 것도 문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교육개혁이 힘들다. 교육학에서도 사회학에서도 따로 가르치지 않으니 교육 전문가들도 사실 대학 체제를 잘 모른다. 19세기 후반 미국 사례를 보더라도 하버드, 예일 같은 학교들이 바뀐 것은 망하기 직전이라는 위기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위기감인가.
“2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물결로 독일이 최강국이 되자 이러면 미국은 망한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지방대를 비롯해 국내 대학의 지금 처지가 이와 비슷할 수 있다. 세계 100위 대학에는 칭화대, 베이징대 등 중국 대학이 7개 있다. 이들 대학은 5, 6년 전만 해도 한국 대학과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치고 나오면서 세계적인 수준이 됐다.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투자한 결과다. 한국 대학은 글로벌 경쟁력이 없다. 세계의 대학을 놓고 보면 서울대도 2류에 불과하다. 학문 자본의 양과 질에서 한국의 대학은 미국 대학과 비교 대상이 안 된다.
이런 대학 간 인프라 격차가 국내에서는 서울대와 지방대 간에도 발생한다. 인프라 누적의 이점이 100년 가까이 쌓인 서울대를 부산대, 전남대가 넘어서기는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개선하려면 적어도 서울대 수준의 예산을 지방대에도 투자해야 한다. 미국 대학도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명문이 된 게 아니다. MIT를 본떠 만든 칼텍이 지방 무명 공대에서 발돋움하는 데 10년이 걸렸다. 스탠퍼드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만 해도 변방이던 실리콘밸리가 3차 산업혁명의 중심이 된 것은 이런 대학의 연구 성과 덕분이다. 이런 거대한 물결을 보고 장기적으로 대학에 투자해야 한국의 교육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갈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 200년 늦었지만 64명이 노벨상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모델로 삼은 대학통합네트워크 구상을 제기했는데.
“캘리포니아 대학 체제는 1960년에 만들어졌다. 동부 아이비리그 대학에 비하면 200년 이상 늦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이 10개 대학을 연구 중심 대학으로 만들어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해갔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노벨상을 받은 학자가 64명이다. 세계 대학 랭킹 100위에 드는 미국 대학이 40개인데 이 중 7개가 캘리포니아 대학들이다. 후발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올바른 방향성으로 탁월함을 성취했고 여러 지역에 걸친 네트워크 체제로 기회 균등이라는 공공성, 민주성도 보여준 모델이다.”
-대학통합네트워크는 새로운 구상은 아니다. 과거 총선, 대선 공약에도 반영됐지만 대중의 관심도 정책 입안도 없었다.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통합네트워크는 대학 서열을 타파할 획기적인 구상이지만 대중에게 얼른 다가오지 않았다. 의미로는 서울대 같은 질 높은 대학을 여럿 만들자, 지방대를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해하기 쉽도록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바꿨다. 과거의 네트워크 구상은 설득력도 부족했다. 연구 중심 대학으로 가자, 지위권력에서 창조권력으로 대학이 탈바꿈하자는 방향으로 잡았어야 했는데 공동학위를 주려는 지위권력의 민주화에만 중점을 두었다.
캘리포니아 모델은 이미 그 대학들이 단기간에 이룩한 성과가 입증한다. 대선을 앞두고 이 화두를 던진 것은 이 방안으로 교육지옥 완화는 물론이고 지역 균형 발전, 부동산 문제, 청년 세대 복지, 4차산업혁명 전진기지 건설, 사교육 문제 등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교육청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주도해 관련 포럼도 열었고 주요 후보 진영에 공약해달라고 제안도 해 놓은 상태다. 대선에서 논의되어야 차기 정부에서 실행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거점국립대 9개, 서울대 수준으로 키우자는 것
-정책 추진 과정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대학이나 교수, 학생, 학부모의 반발이 작지 않을 것 같다.
“서울대 폐지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지방의 거점국립대 9개를 서울대 수준으로 키우자는 것은 뺄셈이 아니라 덧셈의 정치다.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상황에서 지방에 교육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투자하는데 반대하는 여론은 크지 않으리라 본다. 서울대 폐지가 아니니 기득권 세력이 저항할 이유도 없다.
지방대는 매년 정원 미달 사태가 전해지는 고사 위기 상황이다. 지방대끼리는 예전부터 총장 협의체를 통해 살리자는 토론과 소통을 해왔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초기부터 있었다. 그러나 보수, 진보 막론하고 대학체제 개혁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동안 지방대는 정부 지원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서울대 수준으로 해달라는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울대와 같은 수준의 대학을 목표로 그만한 지원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입의 병목 현상도 제거된다.”
막대한 예산? 유럽이 수십년 전에 한 일
-이 구상에는 과감한 예산 배정과 대학 간 구조조정이 필수다. 함께 제기한 대학무상교육까지 동시에 하자면 10조 원대 중반의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넘기 어려운 문턱 아닌가.
“지방대에 서울대 수준의 지원을 하자면 한 대학에 매년 3,600억 정도를 추가 투입해야 한다. 대학무상교육에 11조 원이 필요하다. 지금 사교육비 규모가 40조 원에 이른다. 재난지원금 100조 원 이야기도 나온다.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대학무상교육에 드는 돈은 국내총생산의 0.8% 규모다. 우리 경제로 감당하기 어렵지 않다고 본다. 지금 우리보다 1인당 소득이 낮았던 유럽 여러 나라가 수십 년 전에 한 일이다.”
-대선 경쟁이 뜨겁지만 교육 정책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 것 같다.
“추문이 판치는 선거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려는 고민이 필요하다. 정시나 학종 같은 공정성 논의에 매몰되는 것은 대학을 여전히 지위를 얻는 곳으로만 보는 편협한 인식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화이자 백신을 만든 것은 독일의 과학자와 의사들이다. 독일, 미국 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보기술, 바이오기술을 결합하는 창조권력을 갖기 위해 대학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어떤 대학 체제에서 그것이 가능한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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