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줄기 같기도 하고, 신체 장기 같기도 한 형상.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루이스 부르주아는 생애 마지막 10여 년간 이 같은 것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제목은 ‘내면으로(Turning inward)’.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자기 성찰에 관한 작업이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루이스 부르주아의 개인전 ‘유칼립투스의 향기’가 개최된 가운데, ‘내면으로’ 연작이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내 작업은 고통과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를 위해 존재한다’는 작가의 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미술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고자 했다. 실제로 과거의 분노와 상처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아버지의 외도와 이를 묵인한 어머니를 지켜봐 온 작가의 작품은 초기에는 날이 서 있지만 노년에는 기조가 바뀐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어머니는 남편의 불륜을 지켜보다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작가는 트라우마를 겪어야 했다.
전시 제목인 ‘유칼립투스의 향기’는 또 다른 작품의 개별 제목이다. 1920년대 후반 프랑스 남부에 거주하며 병든 어머니를 간호했던 작가는 유칼립투스를 태워 약으로 사용했다. 유칼립투스는 작가에게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이자, 치유를 의미한다.
작가의 작품에서 어머니는 빼놓을 수 없는 소재다. 작가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각인 ‘마망(프랑스어로 엄마를 뜻하는 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현재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 야외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 앞마당에 있던 것이 호암미술관 재개관에 맞춰 용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망은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상징한다.
거울 역시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이번 전시에서는 1998년 작 ‘거울(The mirror)’을 볼 수 있다. 깨지기 쉬운 연약한 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내면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시장에서는 무의식에 관심이 많았던 작가의 초현실주의 풍의 작품도 볼 수 있다. 1967~68년에 제작된 조각 ‘무의식의 풍경(Unconscious Lanscape)’이다. 크고 작은 둥근 것이 올록볼록 솟은 형태인데, 신체의 일부를 떠올리게 한다.
같은 제목이지만 다른 느낌을 주는 조각 작품도 있다. 두 점 다 ‘여성(Femme)’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지만, 상반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하나는 부드럽고 연약한 느낌을, 또 다른 하나는 일그러져 고통 받는 느낌을 준다. 전시는 1월 30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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