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국정농단' 사태 수사 장본인
중앙지검장 땐 형집행정지 거부
朴 메시지, 지지율 위협 가능성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을 감옥에 넣은 장본인이 과거 그가 이끌던 당의 대선후보가 됐고, 대통령은 대선 목전에서 풀려났다. 24일 단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은 박 전 대통령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정치적 갑을관계’를 완전히 바꿔놨다. 4년 전 박 전 대통령을 겨누던 칼이 마치 부메랑처럼 윤 후보를 위협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두 사람의 악연은 2013년 시작됐다. 윤 후보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그해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의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가 2012년 대선 승리를 목적으로 온라인에서 조직적으로 댓글 등을 조작한 사건이다. 수사를 담당한 윤 후보는 두고 두고 회자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정권 차원의 수사 외압을 폭로한 대가로 검찰 핵심부에서 밀려났다. 2016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꺼져가던 윤 후보의 검사 생명을 극적으로 소생시켰다. 그는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팀장으로 발탁된 뒤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을 줄줄이 구속시켰고, 2017년 3월 탄핵의 근거를 마련한 1등 공신이 됐다.
악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윤 후보가 2019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일할 때 박 전 대통령의 형집행정지 요청에 퇴짜를 놓은 것. 박 전 대통령은 2019년 허리통증이 악화돼 외부 진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에 걸쳐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윤 후보는 이날 “전문가들이 집행정지의 사유가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발을 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그때라도 형집행을 멈췄으면 건강이 이토록 나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윤 후보를 향해 강한 적의를 보인다.
8년간 지속된 구원의 굴레는 정계 입문 6개월 차에 불과한 윤 후보가 단숨에 보수정당의 대선후보로 부상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정권에 항명한 올곧은 검사 이미지를 만들어 준 이가 박 전 대통령이었고, 시간이 흘러 문재인 정부에 같은 이유로 반기를 든 윤 후보는 어느덧 보수세력의 구세주가 됐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은 두 사람의 질긴 악연의 시효를 연장시킬지도 모른다. 대구ㆍ경북(TK) 지역은 그간 윤 후보의 절대 우군이었지만, 이번 사면으로 유권자들이 기억에서 윤 후보의 과거를 새삼 들추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혹여 윤 후보를 비난하는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기라도 하면 보수 분열을 가속화시켜 지지율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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