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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논란 속 애물단지 사극, 정말 '역사왜곡' 자체가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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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논란 속 애물단지 사극, 정말 '역사왜곡' 자체가 문제였을까

입력
2021.12.26 09:00
수정
2021.12.2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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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 '설강화' 이전에도 사극 '역사왜곡 논란'
'용의 눈물' '불멸의 이순신'에도 각색·논란 있어
역사적 사실 변경 자체보다는 대중 인식이 중요


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

JTBC 드라마 '설강화'의 한 장면.


'역사왜곡 논란'.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그리고 JTBC 드라마 '설강화'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역사를 다루는 사극 혹은 시대극에 제기되는 질문을 묶기 위해 등장하는 표현이다. 대중문화 작품이 명백한 과거 역사를 뒤집는다는 여론은 작품의 성패는 물론 방영 자체 여부까지 좌지우지하는 데 이르고 있다.

하지만 과거 높은 평가를 받아 온 사극도 실제로는 많은 부분에서 현대 상황에 맞는 각색이 이뤄지고, 심지어 비슷한 논란까지 겪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사왜곡 논란'이란 표현은 엄밀하지 않다. 사극에 있어서 역사왜곡이란 결국 상대적 개념이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변경했다는 점 자체보다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태도가 각색의 '허용 가능한 수준'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조선구마사' '설강화' 역사왜곡 논란...왜


'역사왜곡 논란' 끝에 편성이 취소된 '조선구마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에서 '권고' 조치를 받았다. SBS 방송 캡처

'역사왜곡 논란' 끝에 편성이 취소된 '조선구마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에서 '권고' 조치를 받았다. SBS 방송 캡처

3월 SBS '조선구마사'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중국풍'을 포함시켰다는 지적으로 인해 강한 비판을 받고 방송사에서 조기 종방을 결정했다. 대중의 비판을 온전히 수용한 것이지만, 실제 이 결정은 학계와 방송가에선 반성의 대상이었다.

지난 8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조선구마사'에 대해 행정지도 '권고'를 냈다. 논란의 규모에 비하면 비교적 가벼운 조치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한 심의위원은 "역사는 사회적 갈등 소지가 많지만 사극은 기본적으로 사실과 허구의 조합"이라는 점을 적시하면서 "방송사가 드라마의 허구성에 대해 철저히 고지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물론 방송사 스스로 조기종영을 결정했다는 점도 고려됐다.

같은 달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주창윤 서울여대 교수는 "'조선구마사'는 판타지 사극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과는 무관한 작품이고 역사를 왜곡하려는 동기나 목적이 없기 때문에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대중의 분노와 폐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실제의 문제는 '역사왜곡'이 아닌 다른 데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설강화' 상황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가 있다. '조선구마사' 논란 당시 이를 역사왜곡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한 기경량 가톨릭대 교수는 이달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을 통해 드라마 '설강화'에서 "안기부 미화나 민주화 운동 폄훼의 의도성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는 "시대를 다루는 태도나 방식이 부박하고 낭만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은 가능하지만 음험한 의도나 역사 왜곡의 혐의를 들이대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①'명품 사극'에도 각색은 있다: 용의 눈물(1996∼1998)


KBS 드라마 '용의 눈물'은 한국 사극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정통사극'으로 꼽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은 한국 사극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정통사극'으로 꼽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극 혹은 시대극을 보는 팬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가능한 한 정확한 역사적 묘사를 원하는 쪽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 속에서 낭만적인 판타지를 원하고, 현대적 해석을 긍정하는 쪽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하게 가름하기는 어렵다. 최근 등장한 '퓨전사극'과 비교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사극을 '정통사극'이라 부르는데, 그런 정통사극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현대적 해석을 곁들이기 떄문이다.

역대 인기 사극을 보면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다양한 묘사가 가능하다. KBS '용의 눈물(1996∼1998)'과 '정도전(2014)' SBS '육룡이 나르샤(2015∼2016)' 등은 고려 멸망에서 조선 개창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시점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다뤘지만, 모두 큰 인기를 모았다. 심지어 뒤의 두 드라마에서는 가상 인물이 크고 작은 역할을 맡아 역사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정통사극'에 가장 가깝다 할 수 있는 '용의 눈물'조차도 기록상으론 "술을 마시다 자객에 습격당한" 정도전의 죽음을 역사적인 기록과 다르게 드라마의 주인공 격인 이방원과 정치적 노선 차이에 관한 대화를 마치고 비장하게 죽는 것으로 묘사했다. 하지만 이런 묘사가 있었기에 정도전과 이방원의 노선 대립이 더욱 의미있고 극적으로 포장된 측면이 있다. 이는 훗날 드라마 '정도전'이나 '육룡이 나르샤'에서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계승됐다.

현재까지 한국의 사극은 정도전과 이방원의 대립을 '신권과 왕권'의 대립으로 보지만 정작 역사학계에서는 정도전이 신권 정치의 옹호자가 아니고 오히려 도덕적인 왕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봤다는 해석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사극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용의 눈물'에서 만들어진 정도전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고, 그가 주장한 신권 정치가 현대적 의회주의나 민주주의와 연결될 여지가 커서 오늘날의 대중도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②각색에는 논란 뒤따른다: '불멸의 이순신'과 '영웅시대'(2004∼2005)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지만 '숙적' 원균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은 구국의 영웅인 충무공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로 인기를 끌었지만 '숙적' 원균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과 어긋나는 모든 각색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구마사'나 '설강화' 이전에도 과거사를 다루는 대중문화 작품은 크고 작은 역사왜곡 논란을 겪어 왔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된 KBS '불멸의 이순신'은 드라마 초반 충무공 이순신의 라이벌로 그와 적대적 관계였던 원균을 용맹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 묘사했다. 이는 이순신의 관점이나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원균의 성격과 다르기 때문에 드라마는 '원균 명장론'을 채택했다는 집중 비판을 받았다.

비록 '조선구마사'나 '설강화'만큼 압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당시 드라마에 대한 '안티 카페'가 운영될 정도였다. 결국 진행 중에 비판을 일부 반영해 원균에 대한 묘사를 대폭 고쳤기에, 결과적으로 드라마는 높은 인기를 누리며 마무리됐다.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박정희(독고영재) 대통령이 천태산(최불암) 회장에게 조선소 건설을 주문하는 장면. 천태산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암시하는 인물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박정희(독고영재) 대통령이 천태산(최불암) 회장에게 조선소 건설을 주문하는 장면. 천태산 회장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암시하는 인물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같은 시기에 등장한 MBC '영웅시대'는 역사적 왜곡 논란을 넘어 특정인에 대한 미화 논란까지 연결됐다. 이 드라마는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과 삼성 이병철 명예회장을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대기업 수장을 맡은 가상 인물과 그 일가,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주요 배역으로 내세워 현대사를 다뤘다. 하지만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특정인의 개인사와 영웅담에 초점을 맞추면서" 박정희 정권의 독재정치와 사카린 밀수 사건 등 문제적인 장면에서 주역급은 미화하고 비판받아야 할 사건의 책임은 주변인물로 돌렸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 드라마는 왜곡과 미화 논란 외에도 인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도 있었기에 당초 계획과 달리 조기종영됐다. 다만 당시 정치적 지지를 얻었던 이명박 서울시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등을 염두에 두고 정치권에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있었다. 두 정치인은 훗날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영웅시대'가 영향을 미쳤는지는 불분명하다. 인기가 없었던 두 기업인의 유년·청년기와 달리 장년기로 접어들어 시청률이 점차 상승하던 시점에 이른 조기종영을 결정한 점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③해외서도 '사실'과 다른 역사극: '더 크라운'과 '보헤미안 랩소디'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4에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을 연기한 배우 에마 코린. 넷플릭스 제공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4에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을 연기한 배우 에마 코린. 넷플릭스 제공


사극의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논란은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영화만 겪는 것이 아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더 크라운'은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애를 다루는 드라마인데, 시즌 4에 접어들어 영국 왕실이 민감하게 여기는 찰스 왕세자와 전 부인으로, 훗날 이혼 후 비극적으로 숨지게 되는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결혼 생활을 불안하게 묘사했다. 이 떄문에 영국 타블로이드지 '데일리 메일' 등으로부터는 '지나치게 다이애나 입장에서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국 정부에서는 "드라마 내용이 허구임을 내부에 명시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넷플릭스는 "우리는 '더 크라운'을 항상 드라마로 소개해 왔고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허구의 작품임을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며 이를 거부했다. '더 크라운'은 여전히 넷플릭스의 인기 영상물 중 하나다. 영국 내에서 찰스 왕세자의 인기가 없고 다이애나 빈에 대한 향수가 여전한 상황에서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됐다는 지적까지도 나왔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하고 있다.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제공


2018년 '퀸 열풍'을 불러 일으킨,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역시 많은 '사실'이 스토리 전개를 위해 개작됐다. 대표적으로 영화 내에서 퀸이 '위 윌 록 유'를 작곡한 시점이 실제 사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팬들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이 영화 자체가 퀸의 멤버들이 참여해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역시 '극적 허용'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당사자들이 판단했을 수 있다.

결국 '역사 왜곡' 논란의 핵심은 사극 드라마나 영화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느냐에 있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과거보다는 현재다. 사극의 내용이 오늘날의 대중이 납득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영국의 여론이 다이애나 빈에게 동정적이지 않았다면, 퀸의 밴드 멤버들이 보헤미안 랩소디의 제작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논쟁의 크기는 더 커졌을 수도 있다.

주창윤 교수는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역사왜곡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조선구마사의 제작진이) 지나치게 과도한 표현방식을 사용했고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중 정서를 간과한 측면도 있다"며 "역사에 대한 진지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에서 비평가로 활동한 언론인 가레스 매클린은 "청중은 바보가 아니다. 결코 사극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라며 "사극은 역사적 사건을 통해 현재를 조명하는 목적이 있는데, 그게 성공적이라면 왜 비판을 받겠는가"라고 논평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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