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복수심은 정의를 실현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감정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규정하고 있는 함무라비 법전의 동해(同害) 복수방식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도덕과 윤리의 핵심으로 똬리를 틀어 왔다.
□ 법과 도덕이 구분되지 않던 고대사회에서는 ‘피의 보복’으로 불리는 사적 보복(vendetta)이 용인됐다.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자에 대해서 피해자 가족이 행하는 보복 살해가 묵인됐다. 사적 보복의 관습은 끈질기게 남아 12, 13세기 귀족가문 간 복수의 형태로 중세 유럽에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이 관습이 지속될 수는 없었다. 보복의 악순환은 공동체 존속을 위협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간 사회적ㆍ물리적 힘의 불균형 때문에 보복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적 복수를 인정하는 단계에서 국가가 법을 정해 피해자의 복수를 대신하는 식으로 인류의 사법체계는 발전해왔다.
□ 우리의 법률도 사적 보복을 금지하고 보복 범죄는 가중처벌한다. 강자의 자의적 약자 처벌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적 보복은 금지돼야 한다. 하지만 최근 부쩍 사적 보복을 옹호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의 집을 찾아가 폭행한 20대 남성이 지난 18일 구속되자 그를 응원하는 이들이 늘어난 건 징후적 현상이다. 관할 경찰서에는 그를 돕겠다는 전화가 끊이지 않고 그의 구속을 다룬 기사에는 ‘후원 계좌가 있으면 정성을 보태고 싶다’, ‘정의를 아는 사람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 사적 보복 범죄자는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왜 사적 보복 옹호자들이 늘어나는지, 왜 사적 보복 범죄자가 영웅시되는지 대중들의 감정 저류에 흐르는 불만을 살필 필요가 있다. 법원은 반사회적 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을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하고 수사기관은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자발찌를 끊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성범죄자가 활개치고 신변보호를 요청한 여성이 스마트워치로 신고해도 경찰이 위치를 찾지 못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는 한 ‘사적 보복’이라는 이름의 유령은 언제라도 출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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