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혁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릿터32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한 해 있었던 일을 돌아보게 되는 시기다. 올해 있었던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떠올려본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당연한 일인 것만은 아니다. 어김없이 내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올해도 운 좋게 살아 남은 덕분이니까. 2021년에서 2022년으로 향하는 다리를 무사히 건넜기 때문이니까.
릿터 32호에 실린 문지혁의 단편소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를 읽으며, “다리가 무너질 확률”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의 할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주인공인 ‘나’는 일본인 친구 ‘아야’와 함께 미국 뉴저지의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는 중이다. 굳이 걸어서 다리를 건너고 있는 까닭은 내가 '다리'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 나는 “그날 아침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이기도 하다. 강북에서 강남으로 등하교를 하는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날 아침 성수대교를 지나는 버스가 아니라 동호대교를 건너는 지하철을 선택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그들이 무사히 건넌 것은 성수대교뿐만이 아니다. 2001년 9월 11일 월드 트레이드 센터 두 개가 무너졌을 때 나는 군대에서 당직을 서고 있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쓰나미가 민가를 덮쳤을 때 아야는 시카고의 한 카페테리아에서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우연히 지구 건너편 누군가의 다리가 무너졌을 때, 그들은 그 다리에 있지 않아서 살아남았다.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 확률만큼이나 스스로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지지 않을 확률도 중요하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선고’와 조지 워싱턴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선고'는 주인공이 다리 아래로 뛰어내리는 장면에서 끝난다. 카프카의 개인사와 얽혀 자전적 이야기로 읽히는 이 소설은 그러나 실제로는 카프카가 주인공처럼 다리 위에서 몸을 던지지 않았기에 쓰일 수 있었다. 조지 워싱턴 브리지는 1931년 개통 이후 자살 사고가 속출했고 매년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2017년 11피트 높이의 영구 방벽이 세워지며 자살은 그쳤다.
주인공은 다 쓴 소설의 초고를 강에 던져 버리겠다는 생각을 되돌리고 다리를 끝까지 건넌다. "다리가 무너질 확률"과 "다리에서 몸을 던질 확률"을 뚫고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기록의 의무를 다하기로 결심한다.
전세계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는 500만명을 넘어섰다. 2월 미얀마 쿠데타가 발발한 이후 지난달 27일까지 숨진 사람은 1,295명에 달한다. 7월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 등 서유럽 지역에 쏟아진 100년 만의 폭우로 최소 200여명이 숨졌다. 6월 9일 광주 동구 학동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며 정차 중이던 54번 시내버스를 덮치는 사고로 9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까지 산재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790명이고 10월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714명이다. 지면이 부족해 미처 다 적지 못하는 목숨까지 포함해, 함께 다리를 건너지 못한 이들을 애도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게 다리를 끝까지 건넌 사람으로서 내 할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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