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 경제적 침체로 모스크바에 반발심 증가
푸틴, 극동 개발 카드로 위기 넘으려고 해
한국, 극동과 북극 개발의 전략적 파트너 될 수도
편집자주
오늘날 세계경제는 우리 몸의 핏줄처럼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지구촌 각 나라들의 역사와 문화, 시사, 인물 등이 ‘나비효과’가 되어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곤 합니다. 인문학과 경영, 디자인, 사회문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의 눈으로 세계 곳곳을 살펴보려는 이유입니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번씩 화요일 연재합니다.
<31> 우크라이나 못지않은 러시아의 고민 '극동'
최근 국제사회의 관심은 온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부에 쏠려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이 구소련 이후 해체된 국가들을 다시 모아 30년 만에 소련 연방 2.0의 건설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푸틴의 이러한 움직임에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서방국가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도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유럽이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가 공급한다. 만약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지 않을 경우,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취약해진 유럽 경제가 더 큰 어려움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러시아와 유럽의 접경 지역에 고조되는 관심과는 대조적으로, 러시아의 정반대 쪽인 극동지역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변화상에 대해서는 세계의 이목이 덜 쏠리고 있다. 정작 러시아 내부에서는 유럽 못지않게 극동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임에도 말이다.
러시아의 더 큰 고민은 '극동'
러시아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 난제들 가운데에서도 남한 면적의 75배가 넘는 광활한 지역인 러시아 극동지역에서의 인구 감소와 낙후는 인접한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점차 안보적 위기로 다가왔다. 러시아 내부에서의 극동지역에 대한 고민은 최근 극동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2020년 러시아 극동의 중심지인 하바롭스크(Khabarovsk)주에서 반정부 시위가 한 달 넘게 지속되었다. 극동지역 주지사를 러시아 중앙정부에서 체포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러시아 중앙정부가 특정 지자체장을 체포할 때는 오히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러시아 국민들이 주지사 체포를 중앙정부의 지방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신호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최근 극동지역에서 전개된 시위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의 집권을 2036년까지 연장 가능케 하는 개헌 국민투표가 완료된 뒤부터 한동안 매주 전개되었다. 60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최대 10만 명이 참여하는 등 시위 참여율마저 매우 높은 상황이다. 국민투표로 개정된 헌법은 푸틴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방안 이외에도 현재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 푸틴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의 옵션을 담고 있다.
권한이 강화된 개정 헌법에 따르면, ‘국가위원회’ 의장직이나 국회 의장직도 얼마든지 수행 가능한 선택지에 포함되어 있다. 즉, 푸틴이 어떤 자리로 가든 현 집권 세력 체제는 2036년까지 바뀌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통상적으로 러시아와 같이 광활한 영토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지역마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상이한 특수성을 갖고 있어, 각 지역마다 구분되어 장기간 운영되어 왔던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국가가 통합할 경우, 높은 수준의 연방제를 유지한다. 일례로 익히 알려진 미국은 물론이고, 독일 역시 독일연방공화국(Bundesrepublik Deutschland)의 줄임말로 높은 수준의 연방제를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식 명칭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구소련 체제 이후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각 지방을 운영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대통령이 지방 수장들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방 수장에 대한 ‘실질적 해임권’뿐만 아니라 ‘주요 보직에 대한 임명권’을 가지고 있다.
모스크바의 식민지로 표현되는 '극동'
경제적 측면에서도 푸틴 체제 20년간 모스크바로의 경제력 집중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에 ‘지방은 모스크바의 식민지’라는 자조적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 즉, 지방의 자원을 중앙으로 최대한 끌어다가 중앙에서 배분하는 구조인데, 이 과정에서 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인식이 지방에 팽배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극동지역에서 특히 심각한 것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러시아 통계청 자료 ‘러시아 지방 사회·경제 지표’에 의하면, ‘1인당 지역총생산(gross regional product per capita)’을 러시아 지역 평균과 비교한 지표에서 하바롭스크주는 2000년 평균 대비 11.7%가량 높았으나, 2020년에는 평균 대비 -7.3%로 내려왔다. 극동관구의 다른 대표적 주인 연해주의 경우, 같은 지표에서 2000년 -26.3%에서 2020년 –24.5%로 나타나, 20년 동안 꾸준히 지역 평균을 한참 밑돌았는데, 이는 극동지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음을 보여준다.
임금 부분에 있어 지난 20년간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2000년에는 지역 평균 대비 26% 높았던 하바롭스크주의 평균임금이 2020년에는 4.9%로 낮아졌다. 반면 2020년 하바롭스크주의 물가는 러시아 지역 평균보다 18% 높은 것으로 나타나 주민들의 실질 소득은 현저히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러시아의 극동지역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흐름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 가까운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러시아 내부에서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러시아 정부는 낙후된 극동지역 개발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인구 유출을 방지하려는 정책 목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한국, 일본과의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2012년 국정연설에서 러시아의 나아가야 할 방향은 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의 개발을 중심으로 한 동방에 있음을 천명한 바 있다.
2012년 극동개발부를 신설하는가 하면, 2015년부터 매년 9월 ‘동방경제포럼’을 개최하며 한·중·일 삼국의 투자 유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같은 해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 지정, 2016년 극동헥타르 프로그램 시행, 2017년 극동지역 인구확대 정책 2025 등 지속적인 발전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북극 개발로 위기 돌파 노려
러시아의 극동지역에 대한 관심은 2014년 크림반도 사태 당시에도 더더욱 높아진 바 있다. 당시 크림반도의 병합으로 서방국의 경제제재를 받자, 신동방정책을 통해 아태지역 국가와의 협력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2019년 ‘극동개발부’를 ‘극동북극개발부’로 개편하면서 극동개발과 북극전략을 연계해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또 다른 관심 지역으로는 북극해 연안 지방을 꼽을 수 있다. 과거 소련 해체로 러시아의 지정학적 상황이 급변하자 러시아는 북극을 대양으로 나가는 새로운 출구로 인식하고 과거와는 다른 관점에서 북극을 바라보게 되었다. 또한 지구 온난화 등으로 인해 북극해를 덮고 있던 두꺼운 얼음이 녹으면서 북극해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라 선박들이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북극해에 존재하는 막대한 에너지 자원과 이곳을 지나는 새로운 항로의 개발은 러시아에게는 오랜 숙원 사업인 시베리아를 비롯한 극동지역 발달의 새로운 활로가 모색되는 것이다. 러시아는 최근 이러한 변화상을 반영하기 위해 2035년을 목표로 하는 ‘북극정책 기본원칙’, ‘북극항로 및 인프라 개발계획’, ‘북극개발 및 안보전략’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역시 북극해 연안 항로가 확보되면 물류 시스템에 커다란 이점이 있다. 세계 제조 공장 역할을 담당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극동지역에 위치한 한중일 삼국이 그간 유럽과 북아프리카로 수출하기 위한 교역로는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2만2,000km의 항로를 지나야 했다. 하지만 북극해 항로가 개설될 경우 1만4,000km만 이동하면 되기 때문에 물류 비용이 30% 이상 절감된다.
한국, 중국, 일본 모두 북극해 항로가 개발될 경우 커다란 이점을 갖게 되는 상황에서 정작 러시아가 극동지역과 북극해 개발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는 단연코 우리나라인 듯하다. 극동지역의 경우 중국 투자를 전적으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것은 극동지역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갈등의 골이 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극동지역 내 양국 간 국경 문제를 일단락한 연도가 2008년이다.
극동지역에 위치한 헤이샤즈섬은 원래 청나라 영토였으나 1929년 소련이 점거했다. 중국은 1954년부터 이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이 섬은 러시아 하바롭스크와 접해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통일한 뒤 여러 차례 소련과 국경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 섬의 반환을 요청해왔으나 매번 소련 측이 반환을 거부해 국경분쟁의 불씨가 돼 왔던 지역이다. 해당 지역의 영토 분쟁을 마무리한 것이 바로 2008년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북방 4개 도서를 둘러싼 영토 분쟁을 겪고 있어 북극해 개발을 비롯한 극동지역 개발에 도움을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유럽과 접경한 지역에서 갈등의 골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반대편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상생 협력을 도모하고 있는 최근의 형국이 향후 러시아의 미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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