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현장 대응에 필수적 호신 장구인데도
8명당 1벌꼴로 보급돼 여럿이 돌려 입어
"대응력 높이려면 1인 1벌 수준 보급돼야"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등을 계기로 경찰의 현장대응 능력 강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지만, 현장 경찰관의 핵심 호신 장비인 방검복(칼, 송곳 등의 공격을 막는 옷) 보급은 8명당 1벌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경찰관 여러 명이 방검복을 돌려 입거나, 사비를 들여 구매하는 경우가 적잖은 상황이다.
28일 한국일보가 확보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경찰이 보유한 방검복은 이달 기준 1만7,139개다. 전국 경찰관 수가 14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8명이 방검복을 함께 쓰는 셈이다. 외근 조끼용 방검패드는 더 적어 1만3,065개에 불과했다.
현장 경찰관 각자가 전용 방검복을 상시 착용해야 한다는 일선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현실이다. 정학섭 경찰민주직장협의회 공동대표는 "사건이 발생하면 순찰차 트렁크에 실린 방검복을 꺼내 입어야 해 일분일초를 다투는 긴급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1인 1방검복 지급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으로 아직까지는 미흡한 상황"이라며 "다만 실제 방검복을 필요로 하는 경찰관은 파출소 근무자, 형사 등 5만여 명인 점이 감안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경찰 현장에선 사비를 들여서라도 방검복을 마련하려는 수요가 많다. 현직 인증을 받은 경찰관만 가입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방검복 공구(공동구매)합니다"라는 글이 여럿 게시돼 있다. 방검복 업체 관계자는 "사시미(회칼) 수준의 흉기를 막을 수 있는 방검복은 60만~70만 원 수준으로 가격이 높아 여러 명이 함께 구매하면서 할인받으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성별이나 체격 때문에 공용 방검복을 입기 곤란해 맞춤형 제품을 주문하는 수요도 있다고 한다.
방검장갑 또한 '사제'를 찾는 수요가 상당하다. 보급품인 방검복·방검패드와 달리 방검장갑·방검토시는 소모품으로 분류돼 개인이 구비해야 한다. 경찰청은 자체 온라인 쇼핑몰에서 복지포인트를 이용해 이런 물품을 구입하라고 권하지만, 일선에선 성능 때문에 외부 판매처를 이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보다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하려는 현장 경찰관들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경찰청과 특수섬유업계에 따르면 경찰은 유럽 안전인증 기준 D등급이던 방검장갑 성능을 지난해부터 F등급으로 높였다. 또 다른 장갑 안전기준인 컷레벨로 환산하면 D등급은 컷4~5, F등급은 컷 6~7이라고 한다. 컷6은 길이 20㎜ 칼로 3,000번 베여도 견딜 수 있는 수준이다. F등급 장갑을 경찰청에 납품하고 있는 공진우 성진글로벌 대표는 "한국 경찰에 신규 도입된 방검장갑은 컷6인 반면, 미국 FBI(연방수사국)는 더 좋은 등급인 컷9 장갑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컷9은 칼로 6,000번 베어도 견딘다.
일선 경찰과 전문가들은 방검장비가 경찰과 국민 안전에 직결되는 만큼 성능 개선과 보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학섭 대표는 "인천 사건 이후 현장 경찰관들 사이에서 따로 방검장비를 구입하는 분위기가 생겼다"며 "든든한 치안을 위해선 모든 경찰관이 방검복을 상시 착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9년 경찰 방탄·방검복 개선 작업에 참여했던 최미교 부산대 의류학과 교수도 "얇고 가벼워 착용이 편리한 방검 소재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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