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우리 고장 특산물 : 양구 시래기
청정자연이 품은 해안면 펀치볼 시래기
분지 칼바람 맞아 질기지 않은 식감 완성
이젠 무 이파리 아닌 '웰빙나물' 로 대접
'6차 산업' 추진 지역명품화 사업도 박차
한국전쟁 당시 움푹 패인 분지 탓에 '펀치볼'(Punch Bowl)이란 이름이 붙여진 강원 양구군 해안면. 가칠봉과 도솔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에 둘러싸인 이곳 특산물은 무의 잎을 말린 시래기다. 들기름에 볶은 반찬으로 식탁에 오르기도 하고 된장국, 감자탕, 생선찜에 들어가 감칠맛과 영양을 더해주기도 한다. 해안면 주민들에게 시래기는 없어서는 안 될 '웰빙나물'이다.
지난달 말에 찾은 양구군 해안면 만대리 비닐하우스 덕장엔 초록빛 무청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지난여름 파종한 무에서 수확한 이파리를 자연 건조시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석균(53) 해안면 시래기생산자협의회장은 "질기지 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인 펀치볼 시래기를 만나려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해안면 농가에선 보통 8월쯤 시래기용 무를 심는다. 3개월 뒤 무를 뽑아 이파리를 잘라내 그늘진 덕장에 널어 말린다. 이후 대한민국 최북단의 칼바람을 40일 넘게 견뎌야 펀치볼 시래기로 거듭난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바람에 몸을 맡겨야 하는 운명이 황태와 비슷하다.
이렇게 험한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휘감아 도는 분지 특성 덕분에 나물이 바짝 말라 상품성이 더 좋아진다"는 게 해안면 주민들의 얘기다. 한때 원망을 늘어놓기도 했던 해안면의 기후가 명품 시래기 생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예전엔 무를 수확한 뒤 얻는 부산물 정도로만 인식되던 시래기는 최근 들어 몸값이 훌쩍 뛰었다. 맛과 향이 좋을뿐더러 비타민B·C와 미네랄, 철분, 칼슘 등이 풍부한 영양의 보고로 알려지면서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자연건조돼 질기지 않은 펀치볼 햇시래기를 으뜸으로 친다. 이젠 양구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각인돼 대형마트는 물론 홈쇼핑에서도 겨울철 단골 메뉴로 등극했다.
해안면 주민들이 시래기에 주목한 건 2007년부터다. 이석균 회장은 "겨울철 소득이 없어 고민하던 중 수확이 끝난 감자 밭에 무를 심어 시래기 농사를 시작했다"고 당시 기억을 떠올렸다.
이 회장을 비롯한 몇몇 농가가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최적의 건조 조건을 찾아내자, 수확량이 눈에 띄게 늘었고, 품질도 인정받았다. 양구군은 농촌진흥청과 함께 잎이 풍성한 시래기 전용 무를 개발해 농민들에게 보급했다. 군 관계자는 "농민들의 절실한 마음을 알기에 파종과 수확시기, 건조방법 등을 두루 고려해 개발된 품종"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2007년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기 전까지 매년 펀치볼 시래기 축제를 열어 전국에 특산물을 홍보하기도 했다.
농민들과 양구군의 관심과 투자로 2013년 30억 원을 갓 넘던 시래기 매출은 2017년에는 100억 원으로 늘었다. 2020년 긴 장마 탓에 매출이 76억 원으로 잠시 주춤했으나, 이번 겨울에는 247개 농가가 900톤 이상을 출하해 135억 원이 넘는 판매액을 기록할 것으로 양구군은 기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펀치볼 시래기 명품화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종에서 수확, 온라인 홍보 및 판매, 체험 관광이 어우러진 '6차 산업화'를 서두르고 있는 것. 올해는 495㎡(약 150평) 규모 가공공장을 지어 즉석 식품도 선보인다.
앞서 지난해 2월 '지리적 표시'를 마쳐 시래기가 지역 특산물임을 공식 선언한 양구군은 펀치볼 시래기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로 했다. 조인묵 군수는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고품질 시래기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기반을 확대하고 판매망을 구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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