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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학대범이 집행유예 받은 이유 "범행 이후 동물 보호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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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학대범이 집행유예 받은 이유 "범행 이후 동물 보호 활동"

입력
2022.01.02 10:00
수정
2022.01.0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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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전문방 등 동물학대 판결문 보니]
동물판 n번방 '고어전문방'에 집유
'증거인멸 시도' 푸들 살해범 영장 기각
유사 사건도 판사마다 실형, 벌금 갈려
"양형기준 마련해 엄벌" 미루는 동안
'학대 모의·전시'하는 범죄 계속돼

동물 살해를 모의하고 실행한 동물판 n번방 '고어전문방' 참여자 이모씨가 석궁으로 고양이를 맞춘 후 그 사실을 '고어전문방'에 공유하고 있다. 이씨는 불법 소지한 단도로 이 고양이를 참수한 다음 머리뼈도 채팅방에 공유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홈페이지 캡처

동물 살해를 모의하고 실행한 동물판 n번방 '고어전문방' 참여자 이모씨가 석궁으로 고양이를 맞춘 후 그 사실을 '고어전문방'에 공유하고 있다. 이씨는 불법 소지한 단도로 이 고양이를 참수한 다음 머리뼈도 채팅방에 공유했다. 동물권행동 '카라' 홈페이지 캡처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범행 이후 동물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 피고인의 가족들이 건전한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는 점, 초범인 점 등에 비추어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

'고어전문방' 사건 피고인 이모씨의 1심 양형이유 중

동물판 n번방이라 불렸던 '고어전문방' 사건의 피고인 이모씨의 양형 이유입니다. 법원은 이같은 이유로 지난달 이씨에게 징역 4월 및 벌금 100만 원을 선고하되 형의 집행을 2년 유예했습니다.

이씨는 동물 살해를 모의하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어전문방 참여자였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고양이를 화살로 쏴 죽이고, 토끼 등을 잔인하게 참수한 혐의 등(동물보호법·야생생물법·총포화약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한국일보가 확보한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동물보호법의 목적에 비추어 죄책이 가볍지 않다", "평소 대화 내용까지 더하여 볼 때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식이 미약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의 연령, 환경, 범행의 경위와 범행 후의 정황 등을 고려해 기회를 부여하는 게 타당하다"며 집행유예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피고인들에게 고래 포획 행위가 중대하고 심각한 위법 행위에 해당한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이들이 본 건으로 처벌받은 후 재차 고래 포획 범행에 나아가려는 의사나 의도를 확실하게 제지하여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피고인들에게는 다른 사건에서의 일반적인 양형을 뛰어넘어 더 엄한 처벌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밍크고래 불법 포획 사건 1심 양형이유 중에서

두 번째 인용문은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야생생물법 위반)한 선원 9명에 대한 양형이유입니다. 통상 벌금형이 선고되는 사건임에도 재판부는 피고인 모두에게 징역 8월~2년의 실형을 선고합니다. 재판부는 고래 보존의 과학적·도덕적 이유를 상술하며, 피고인들에게 행위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추가 범행을 예방하기 위해선 보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잔혹한 범행 수법에도 '초범이고 반성하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법원과 인간이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근본 목적을 짚으며 실형이라는 엄벌을 내리는 법원이 공존하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이처럼 판단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는 사법부가 '동물 학대엔 엄벌'이라는 국민의 동물권 감수성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담당 판사에 따라 판결이 제각각이다 보니 권위도 서지 않습니다. 때문에 날로 잔혹해지는 동물학대 범죄의 고리를 끊으려면 동물학대죄의 양형 기준을 정해 법원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동물 살해'라는 용어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살해'는 '사람을 해치어 죽이다'는 뜻으로 통상 사람을 죽인 경우에 사용합니다. 다만 국립국어원은 "사람이 아닌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 대상을 사람처럼 인식한다면 비유적으로 확장하여 쓸 수는 있어 보인다"며 '동물 살해'가 명백히 틀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동물을 죽이다'는 뜻의 단어가 마땅히 없는 탓에 국립국어원의 의견을 준용, 이 기사에서도 '살해'로 씁니다.

※ 국립국어원 참고 링크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201026


'동물학대는 엄벌' 국민 감수성과 괴리된 판단들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어전문방' 대화 중 일부. 동물권단체 '카라' 홈페이지 캡처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고어전문방' 대화 중 일부. 동물권단체 '카라' 홈페이지 캡처

고어전문방 사건은 올해 알려진 것 중 가장 잔혹했던 동물 학대 사건이었습니다. 참여자 80여 명은 길고양이, 새, 토끼 등의 살해를 논의했고, 그중 일부는 실제 동물을 살해하고, 인증 사진과 영상을 채팅방에 공유했습니다.

20대 남성 이씨는 참여자 중 가장 극악무도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자신이 쏜 화살에 맞아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고양이 사진를 공유하면서 "총은 펑 쏘면 걍 툭 쓰러지는데 활은 쏘면 표적에 꽂히는 소리도 나고 바로 안 죽고 폐에 피차서 숨 못 쉴 때까지 소리지르면서 뛰어다니는데 쫓아가는 재미도 있고"라고 썼습니다.

고어전문방의 반인도적 범행이 알려진 후 이들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참여자를 수사하고 처벌해 달라"는 국민청원엔 무려 27만5,492명이 동의했습니다.

재판부에 엄벌을 촉구한 탄원인은 1만748명에 달했습니다. 검찰이 동물보호법 위반 범죄의 최고 형량인 징역 3년을 구형했을 때는 '감형 없이 선고해야 한다'는 30통의 수기 탄원서가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해 드린 것처럼 대전지법 서산지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전북 군산시 소재 공기업에서 근무했던 40대 A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푸들들. 군산길고양이돌보미 인스타그램 캡처

전북 군산시 소재 공기업에서 근무했던 40대 A씨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푸들들. 군산길고양이돌보미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군산 푸들 등 19마리 살해' 사건에서도 사회 인식과 괴리된 법원의 판단이 나와 논란이 됐습니다. 피의자 A(41)씨는 지난해부터 올해 10월까지 약 1년간 푸들 16마리 등 개 19마리를 입양한 후 자신이 근무하는 공기업 사택에서 학대해 죽인 혐의(동물보호법 위반)로 입건됐습니다.

A씨는 개를 물속에 담가 숨을 못 쉬게 하거나 불에 닿게 하는 등 극심한 고통을 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범행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개들에게 수면제를 먹인 것으로도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지난달 2일 A씨가 아파트 화단 곳곳을 파헤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한다고 보고 3일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아파트 화단은 A씨가 죽인 개들을 묻었던 장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기각했습니다.

동물 전문 매체 동그람이에 따르면 A씨의 자백을 이끈 차은영 군산길고양이돌보미 대표는 "A씨가 입양했다고 확인된 개들만 19마리"라며 "다른 사체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증거인멸을 시도한 범인을 불구속한다는 법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차 대표가 A씨의 엄벌 및 신상공개를 촉구하며 게시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지난달 30일 기준 20만5,000여 명이 동의,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한 상태입니다. 한국일보는 29일 전주지법 군산지원에 보다 상세한 영장 기각사유를 물었지만 알려진 기각 사유 이상의 설명은 불가하다는 취지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판사 감수성 따라 '벌금', '실형' 판단 갈려

2019년 7월 경의선 숲길 길고양이 '자두'를 잔혹하게 살해한 정모씨의 범행 당시 모습. 'cd_cafe' 인스타그램 캡처

2019년 7월 경의선 숲길 길고양이 '자두'를 잔혹하게 살해한 정모씨의 범행 당시 모습. 'cd_cafe' 인스타그램 캡처

한국 법원은 아직까지 동물 살해를 포함, 동물 학대 범죄에 대체로 미온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는 사건들에는 늘 '이례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2019년 경의선 길고양이 '자두'를 살해한 정모(41)씨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이 선고(2019고단2803)됐을 때 '고무적인 판결'이라며 각 동물단체들이 긴급 성명을 냈던 게 대표적입니다. 법원은 정씨가 자두의 꼬리를 쥐고 들어 올린 후 수차례 땅바닥과 테라스 벽에 내리찍는 등 잔혹하게 살해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에서 정씨가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동물보호법 위반과 함께 재물손괴죄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입니다. 길고양이 돌보미가 자신이 돌보던 고양이라는 사실을 끈질기게 입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유정우 부산고법 고법판사는 6개월간 강아지의 목을 밟거나 각목으로 때리는 동물학대 사건에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이례적으로 선고했다. UBC울산방송 캡처

유정우 부산고법 고법판사는 6개월간 강아지의 목을 밟거나 각목으로 때리는 동물학대 사건에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이례적으로 선고했다. UBC울산방송 캡처

앞서 소개드린 밍크고래 불법 포획 사건(2020고단3057)도 이례적으로 실형이 선고된 경우입니다. 사건을 맡았던 유정우(42·사법연수원 35기) 부산고법 고법판사가 판결문 26장 중 13장을 양형이유에 할애한 이유도 유사 사건보다 형량이 컸기 때문입니다.

유 고법판사는 법률신문과 인터뷰에서 "유사 사안에서의 기존 양형 범위를 상당히 벗어난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 3자가 봤을 때 제가 내린 형벌을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그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 고법판사는 지난해 다른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2019고단3906)에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판결문 7장 중 5장에 양형이유를 썼습니다. 시공사에 앙심을 품은 조합장 이모(41)씨가 약 6개월 동안 건설 현장에 묶여 있던 생후 4, 5개월 된 진돗개의 목을 밟거나 각목으로 때려 학대한 사건인데요. 당초 검찰은 벌금형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습니다.



솜방망이 처벌에 제2, 제3의 '고어전문방' 범죄 이어져

디시인사이드 '길고양이 이야기 갤러리' 이용자가 학대 과정을 중계하며 올린 사진 중 하나. 고양이 한 마리는 아예 목이 꺾여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디시인사이드 '길고양이 이야기 갤러리' 이용자가 학대 과정을 중계하며 올린 사진 중 하나. 고양이 한 마리는 아예 목이 꺾여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법원의 판단이 국민 법 감정과 동떨어진 사이 동물 학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생중계하며 과시하는 범죄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7월 디시인사이드 '길고양이 이야기 갤러리' 이용자는 생후 3개월도 되지 않은 고양이를 감금, 학대하는 행위를 게시했고, 그중 한 마리가 사망합니다. 국민청원에도 올라 25만여 명이 엄벌을 촉구했으나,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수사가 중지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 이용자가 돌로 길고양이 방한집을 부수고 게시한 인증 사진. 디시인사이드 게시물 캡처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 이용자가 돌로 길고양이 방한집을 부수고 게시한 인증 사진. 디시인사이드 게시물 캡처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 이용자가 길고양이 학대를 위해 준비했다며 올린 새총 사진. 디시인사이드 게시물 캡처

디시인사이드 '야옹이 갤러리' 이용자가 길고양이 학대를 위해 준비했다며 올린 새총 사진. 디시인사이드 게시물 캡처

길고양이 이야기 갤러리는 폐쇄됐지만 '야옹이 갤러리'에서 학대 범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 이용자는 길고양이 방한집을 돌로 부수거나 괴롭히기 위해 새총을 샀다는 등의 학대 인증사진을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해당 갤러리의 다른 이용자들도 길고양이 돌보미들은 여성, 저소득층, 중국 동포일 것이라고 단정하며 혐오 발언을 내뱉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특정 돌보미의 거주지까지 파헤치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동물판 n번방 '고어전문방' 사건에 관한 국민청원에서도(왼쪽 사진), 디시인사이드 '길고양이 이야기 갤러리' 사건에서도 정부는 동물학대 범죄의 양형기준 마련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상의해보겠다고 답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동물판 n번방 '고어전문방' 사건에 관한 국민청원에서도(왼쪽 사진), 디시인사이드 '길고양이 이야기 갤러리' 사건에서도 정부는 동물학대 범죄의 양형기준 마련을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상의해보겠다고 답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동물학대 사건이 국민청원에 오를 때마다 정부는 "강화된 벌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대법원 양형위원회와 변화된 인식에 부합하는 양형기준 마련을 지속 협의해 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열린 113차 양형위원회 회의에서도 동물학대 범죄의 양형기준은 논의되지 않았습니다.

최민경 카라 정책실 부팀장은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양형기준이 없기 때문에 재판부가 어떤 감수성을 가졌나에 따라 판결이 천차만별"이라며 "국민들의 기대나 사건의 참혹함에 비해 가벼운 판단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 부팀장은 특히 고어전문방에 대해 "성폭력 가해자가 여성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아동학대자가 아동을 위해 보호활동을 한다는 것이 감형 이유로 온당하나"고 되물으며 '범행 이후의 동물 보호 활동'이 감형 이유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동물은 스스로 피해를 입증하기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에 아동학대 범죄와 유사하다는 논의가 이뤄지기도 한다"며 "가해자의 사정을 고려하기보다는 법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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