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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1월 5일 37년 만에 되찾은 '24시간'의 자유, 야간 통행금지 해제

입력
2022.01.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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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월 5일
미군정에 의해 첫 실시, 군사 정권 유지에 이용
서울올림픽 유치 계기로 전두환 정권 없애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82년 1월 6일 자 한국일보 11면 기사. 4천만의 밤이 살아났다, 37년 만의 ‘되찾은 자유’ 첫날… “다시는 통금 없기를”

1982년 1월 6일 자 한국일보 11면 기사. 4천만의 밤이 살아났다, 37년 만의 ‘되찾은 자유’ 첫날… “다시는 통금 없기를”


1982년 1월 5일 자 한국일보 10면 기사. 마지막 통금의 밤

1982년 1월 5일 자 한국일보 10면 기사. 마지막 통금의 밤


'야간 통행금지'가 사라진 첫날 밤 많은 시민들은 제약 없는 새벽 거리를 활보하며 37년 만에 되찾은 '자유'를 만끽했다. 그것은 '잃었던 4시간'을 찾은 게 아니라 '24시간'의 자유를 음미하고 '밤'을 되살릴 수 있었던 역사적 순간이었다.

1982년 1월 6일 자 한국일보 기사

1982년 1월 5일 36년 3개월 30일 만에 야간 통행금지가 사라졌다. 당시 한국일보는 통금이 사라진 첫날 밤의 풍경을 이렇게 기록했다. 그 전만 해도 야간 통행금지 때문에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의 시간은 정부 통제 아래 있었다. 이날부터 시민들은 온전한 24시간의 자유를 갖게 된 것이다.

(※ 1982년 1월 6일 자 지면 보러 가기 ☞ www.hankookilbo.com/paoin?SearchDate=19820106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정부 통제 → 국가 이미지 개선 위해 통금 해제

1979년 10월 18일 통금 연장에 따라 열차운행 시간이 변경됐음을 알리는 공고문이 나붙은 부산역 대합실. 역에 나온 시민들이 공고문을 읽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부마항쟁으로 부산지역의 통금 시간을 연장했다. 1979.10.18. 한국일보 자료사진

1979년 10월 18일 통금 연장에 따라 열차운행 시간이 변경됐음을 알리는 공고문이 나붙은 부산역 대합실. 역에 나온 시민들이 공고문을 읽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부마항쟁으로 부산지역의 통금 시간을 연장했다. 1979.10.18. 한국일보 자료사진

통금은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7일 서울과 인천에 처음으로 실시됐다. 주한미군사령관이 '한국 국민의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고 질서 유지를 위해 공포된 맥아더 장군의 군정포고 제1호에 의거한다'며 통금을 선포했다. 첫 통금으로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이동이 제한됐다. 서울과 인천을 대상으로 적용된 통금은 1950년 7월 8일 한국전쟁으로 전국으로 확대 시행됐다.

1954년 4월에는 아예 통금 조항이 들어간 '경범죄처벌법'이 제정되어 이전까지 군사적 조치로 시행된 통금에 사법적 근거가 부여됐다.

1956년에 성난 민심을 달래고자 이승만 정권이 통금 폐지를 검토하겠다 했지만 정권은 사회 통제를 이어가기 위해 오히려 '풍기 문란 단속'이란 근거를 달며 통금을 강화했다.

1960년 4월 14일 경남 마산 시내 모습. 통금 위반자들을 버스에 실어 이송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60년 4월 14일 경남 마산 시내 모습. 통금 위반자들을 버스에 실어 이송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통금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며 더 강력해졌다. 1961년 5·16 쿠데타로 등장한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통금을 실시했다.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1962년 5월 5일부터 16일 동안 야간 통행을 허용하고, 같은 해 12월 24일부터 10일 동안 잠시 통금을 해제하는 유화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1972년 10월 유신 선포로 비상계엄령이 또다시 선포되며 통금 시간은 오후 10시가 됐고,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는 부산의 통금 시간을 연장했다.


1982년 1월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을 탄압하면서도 개방정책과 자율화ㆍ자유화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1981년 11월 집권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이 정부에 통금 해제를 건의하고, 같은 해 12월 15일 국회에서 ‘통금해제안’이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 개정으로 1982년 1월 6일 0시부터 36년 4개월 동안 시행된 통금은 완전히 해제됐다. 야간 통행금지 해제는 국민 기본권을 위한 조치인 것처럼 포장됐지만 실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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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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