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A중학교 학생회장 출마 자격에
'교사 6명 추천' 규정 신설에 의견 분분
"최소한의 장치" vs "자율 분위기 역행"
서울 시내 A중학교는 이달 14일 학생 및 학부모에게 '학생 생활에 관한 규정'이 개정됐다고 공지했다. 평소라면 별다른 주목을 끌지 않았을 이 규정은 그러나 새롭게 삽입된 조항 때문에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학생회 임원 출마 자격에 '담임교사, 해당 학년부장, 생활지도부장을 포함한 6명 이상의 교사와 재학생 20명 이상의 추천을 받은 학생'이라는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학교 구성원들과 교육계에선 학생자치기구인 학생회 선거에 학교가 교사 추천 명목으로 간여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3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학교는 지난달 해당 규정 개정에 착수해 이달 초 마무리했다. 해당 규정 개정권이 있는 '학생회 운영 규칙 제·개정위원회'가 절차를 진행했다. 이 기구는 교감을 위원장으로 학생 대표, 학부모 대표, 교사 대표(학년부장 생활지도부장) 등 10여 명이 참여한다. 위원회는 11월 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마련했고, 이후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달 초 개정을 의결했다. 새 규정은 내년 12월쯤 열릴 차기 학생회장 선거부터 적용된다.
학부모들은 규정을 왜 바꿨는지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한 학부모는 "신설 조항이 교사가 학생들을 보이지 않게 차별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학생회 활동 경력은 고교 입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민감한 부분"이라며 "학교가 학생회 임원 추천권을 갖게 되면 차별이나 학생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 측은 이번 개정으로 학생 인권을 높였다는 입장이다. A학교 관계자는 "종전 규정은 징계나 벌점이 있으면 학생회 임원 출마에 제한을 뒀지만, 새 규정엔 해당 조항이 삭제돼 출마 가능한 학생이 더욱 늘어났다"고 말했다. 학교 개입을 우려하는 지적엔 "교사 추천권은 (출마) 허가제가 아니라 기본적 절차 중 하나일 뿐이며, 학생회장과 학부모 대표가 참여한 제·개정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된 사항"이라고 밝혔다.
교육계도 "학생자치 침해" 우려
하지만 교육계에선 A학교의 개정 규정이 학생들의 자유로운 자치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교사들이 고분고분한 출마 희망 학생만 추천하거나 이를 빌미로 학생회 활동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이면 누구나 학생회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원칙에 동의한다면, 교사 추천 규정은 필요없고 타당하지도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위한시민모임 상임활동가는 "학생 스스로 정한 규칙인지 학교가 정한 규칙인지부터 따져 볼 문제"라며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충분히 토론하고 투표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선 교사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모(34) 교사는 "자율과 자치를 중요시하는 교육 분위기에 역행할 우려가 있다"며 "불필요한 규정으로 논란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반면 중학교 교사 나모(38)씨는 "(출마 부적격자를 걸러낼)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수준이고, 직접적으로 출마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서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개선권고 조치한 전례도
학생회 출마 과정에 교사 추천을 받도록 하는 교칙 개정은 2017년에도 학생 인권 증진에 반한다는 판단을 받았다.
당시 전북 지역 B학교는 학생회장에 출마하려면 교사 3명 이상과 재학생 100명 이상, 학부모로부터 추천서를 받아 제출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후 출마 희망자가 보충수업 등에 무단으로 빠졌다는 이유로 교사가 추천서 작성을 거부하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전북교육청 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해당 규정에 대해 "학생 자율 의사에 따라 출마하는 일반적 선거가 아닌 허가제 선거로 전락할 우려가 있고, 학생 인권조례에도 어긋난다"며 폐지를 권고했다.
박남기 교수는 "학생 인권을 침해하는 규정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만큼 합리적인 방향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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