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좋은 이웃'(창작과비평 2021 겨울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새해가 되었으니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다 제쳐놓고 목록의 가장 첫 번째에 적어둔 다짐은 '잘 살자'다. 다만 이때의 '잘 사는 것'이 일신의 영달을 의미하진 않는다. 내가 바라는 ‘잘 사는 것’은 ‘다같이 잘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내가 먼저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이다. 쉽지는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같이 잘 살겠다는 소망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니까.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실린 김애란의 단편소설 ‘좋은 이웃’은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라고 고백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어디까지일지” 묻는다.
주인공 부부도 한때는 ‘좋은 이웃’이고자 했다. 신혼 초 “우리의 시작을 이웃과 함께하자”며 유니세프에 정기 후원을 다짐했고 “우리가 잘살게 되면 남을 돕고 살자”고 약속했다. 그런데 문제는 ‘잘살게 되는’ 일이 영 요원하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산다’는 것은 부동산 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살고 있지 못하다’는 자각은 남의 잘사는 모습과 비교될 때 더욱 선명해진다. 전세 만기로 새로 이사 갈 집을 알아봐야 하는 주인공 부부의 윗집에 신혼부부가 이사 온다. 주인공 부부와 달리 번듯한 ‘자가’를 마련한 이들은 한 달간 인테리어 공사를 하겠다며 양해를 구해온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과 여유가 묻어 나오는 신혼 부부는 아파트 게시판에 이렇게 써 붙인다.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공동체, 이웃, 연대 같은 단어는 힘을 쓰기가 어렵다.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적힌 “제발 베란다나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아달라”는 호소에 “억울하면 비싼 아파트 살아라. 내가 내 돈 주고 산 내 집에서 담배도 마음대로 못 피우냐”는 답글이 달리는 식이다. 내 집 마련이 힘든 지방 청년이나 사회 초년생들의 좌절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인공 아내의 말에 남편은 “그 신입이 나보다 부자”라고 대꾸할 뿐이다.
그런 세계에서 나 홀로 좋은 이웃이 되고자 애쓰는 일은 당연히 손해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윗집 내부가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형태를 잡아갈수록 우리 생활은 천천히 부서지고 망가지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이유다. 주인공은 쓸쓸히 자문한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지 않고, 노동가치니 화폐가치니 하는 것들이 이렇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저 윗집 부부처럼 밝은 얼굴로 이웃을 환대할 수 있었을까?”
물론 손해일지 모른다. 모두가 영리하게 자신의 이득을 챙기고 있는데 나 혼자 공공을 위한 선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은. 무주택자를 위해 집값 안정을 바라기보다는 나 역시 부동산 광풍에 올라타 집값 상승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산’이 아닌 ‘사람’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는 사람들 덕에 세상은 조금씩 나아져왔을 것이라고 믿는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 주인공이 오래전 밑줄 그은 책 속의 한 문장을 나도 따라 읽어 본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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