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최성철 소방위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2015년 6월 20일
난 119안전센터 구급대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과 말다툼하다가 어머니가 쓰러졌다는 신고를 받고 구급차 1대, 구급대원 2명과 출동했다. '심정지'라는 신고는 없었지만,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에 심장충격기와 응급처치 장비 등을 갖고 현장에 도착했다.
환자상태를 확인하던 후배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선배님! 의식 호흡 맥박 없습니다, 심정지 추정입니다.”
즉시 심폐소생에 들어갔다. 심장충격기를 부착하고 정맥을 확보한 뒤 나와 후배는 교대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오랜 시간 구급대원으로 일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서 몸이 자동적으로 반응한다.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고 양팔이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심장충격기에서 ‘전기 충격이 필요합니다’는 메시지가 울렸다. 즉시 전기충격 1회를 실시했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계속 소생술을 시행하던 중 ‘전기충격이 필요합니다’는 메시지가 떴다. 또 한 차례의 전기충격. 심폐소생술은 계속 병행됐다.
다행히 얼마 후 환자 호흡과 맥박이 확인됐다. 나와 후배는 즉시 들것을 이용해 3층 집에서 1층까지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와 환자를 구급차에 태웠다. 운전석에 앉아 “휴~살렸다”는 감정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병원까지 가는 게 문제였다. 전문소생술이 가능한 시내 대학병원까지는 환자집으로부터 30㎞ 이상 떨어진 거리였다.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이 과연 그때까지 버텨줄 수 있을까.
이송 중 2차 심정지가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 때문에 한시도 환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다행히 병원에 무사히 도착했고, 응급실에 환자를 인계했다. 우리의 역할은 거기까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는, 말할 수 없이 뿌듯한 감정을 갖고 우린 사무실로 돌아왔다.
# 2017년 3월 7일
구급대원에겐 흔히들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내 경우엔 간식을 주문하면 꼭 출동이 걸린다. 그날도 간식을 주문하자 얼마 후 어김없이 구급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지령서를 확인하니 우리 관외 지역 환자였다. 이미 구급차 2대와 소방차가 출동 중인 상황이었다. '주택 3층 내 여성, 의식 없고 쓰러져 있다'는 내용을 확인하고는, 즉시 구급차에 올라탔다.
환자가 발생한 건물 인근에는 이미 구급차와 화재진압 소방차가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심장충격기와 응급처치 장비를 들고 3층으로 이동했다. 출입구와 계단 화분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지만, 자세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3층에선 먼저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환자 상태평가와 생체징후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심정지 상태가 아니었다. 구급대 팀장인 나는 신고자 가족들로부터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며 발생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내 눈에 낯익은 환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2년 전 우리가 출동해 살렸던 바로 그 환자였다. 처음부터 이 건물과 계단이 낯설지 않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그 순간 환자에게 심정지가 왔다. 난 생각했다. '이 환자는 내 운명이다. 무조건 살려야 한다.'
신속하게 심장충격기를 부착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소생술 시행 중 심장충격기에서 전기충격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울리기 시작했다. 즉시 전기충격 1회를 실시하면서 계속 소생술을 시행했다. 다행히 환자 호흡과 맥박이 뛰기 시작했다. 곧바로 환자를 들것에 싣고 구급차로 이동했다.
모든 게 2년 전 상황과 똑같았다. 전문소생술이 가능한 병원까지 30㎞ 이상을 가야 했다. 과연 이번에도 심장이 잘 견뎌줄까?
다행인 건 2년 전엔 구급차 1대와 대원 2명만 출동했지만, 이번엔 구급차 2대와 충분한 구급인력이 확보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환자 이동과 병원 이송 중에도 세심한 모니터링과 응급처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우린 무사히 응급실에 도착했고, 환자를 인계했다.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정말 내가 저분을 또 살린 건가. 같은 사람을 두 번이나 살리다니!”
정말로 모든 게 운명처럼 느껴졌다. 모쪼록 건강히 지내시길, 특별한 인연이지만 그래도 세 번째 만남은 없기를 바라며, 사무실로 귀환했다.
그 후 우리 구급대원들은 모두 '하트세이버(Heart Saver)'를 수상했다. ‘생명을 소생시킨 사람’이라는 뜻으로 심정지로 인해 죽음의 위험에 놓인 환자를 적극적 심폐소생술 및 신속한 응급처치를 통해 살려낸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하트세이버는 구급대원의 자부심이자, 가장 소중한 명예다.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라면 누구든 원고를 보내주세요.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