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2019)의 제작사 바른손 이앤에이는 지난해 9월 사업 확장 발표를 했다. 봉준호·김성훈·이용주·엄태화 감독 등과 영화 제작 협업을 하는 한편 드라마 사업에 진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인기 드라마 ‘마인’(2021)의 백미경 작가와 두 작품을 함께하기로 계약했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2016)의 제작자 서우식씨를 대표로 영입해 드라마 제작 자회사 바른손씨앤씨를 설립했다. 조선시대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소재로 한 ‘피어올라’, 한 여성이 바람 피운 남편에게 복수하는 ‘정원식 살인사건’ 등을 제작 중이다. 2020년 오스카 4관왕이라는 역사를 일군 영화사의 변신이라 영화계는 바른손 이앤에이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극장에서 돈 벌 수 없는 현실
요즘 한국 영화계 주요 트렌드는 드라마 제작이다. 유명 영화사들이 앞다퉈 드라마 제작에 나서고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등 여러 화제작들을 선보였던 충무로 명가 명필름은 드라마 제작 작업에 최근 착수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명필름은 이전 제작한 영화 42편의 지식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고, 이들 IP를 바탕으로 드라마 각색을 한창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영화 ‘터널’(2016)과 ‘범죄도시’(2017)의 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는 드라마 ‘장미맨숀’과 ‘호구악녀’를 공동 제작하고 있다. 이달 개봉할 영화 ‘킹메이커’의 씨앗필름은 전도연과 설경구 이솜 구교환 주연 넷플릭스 드라마 ‘길복순’을 제작한다고 4일 발표했다.
영화사의 드라마 진출은 넷플릭스 등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 이용자 급증과 연계돼 있다. 영화사들은 영상산업의 주축으로 부상한 OTT에서 새 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드라마는 OTT가 시청자를 화면 앞에 오래 붙들어 놓기 유리한 영상 포맷이다. 여러 화를 만들 수 있고 시즌제가 가능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영화사들의 드라마 제작을 부추기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극장 관객이 75%가량 급감하면서 영화사들은 극장에서 제작비조차 회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반면 OTT는 코로나19로 활황을 맞으면서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고, 드라마 제작 기회는 더 많아졌다.
오징어 게임’ ‘갯마을 차차차’ 성공에 고무
영화사들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021)의 성공을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오징어 게임’의 제작사는 싸이런픽쳐스로 ‘남한산성’(2017)과 ‘뷰티풀 뱀파이어’(2018), ‘도굴’(2020) 등 영화만 제작했던 곳이다. 첫 드라마로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사례는 영화사들의 드라마 제작 의욕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하다.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2021)가 큰 인기를 끈 점 역시 영화사들에는 고무적이다. ‘갯마을 차차차’는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극장에서 83만 명을 불러 모은 작품이다. 신통치 않은 흥행 성적에다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옛 영화를 밑그림 삼은 ‘갯마을 차차차’는 최고 시청률 12.7%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킹덤’ 시리즈의 김성훈 감독,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 ‘지옥’(2021)의 연상호 감독,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2021)의 윤성호 감독 등 영화감독들이 드라마 연출로 각광받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영화사들은 감독들과 관계를 오래 유지해 왔고, 의사소통이 원활해 드라마 협업을 할 경우 시너지 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사와 영화감독이 작업한 드라마 현장에서 불협화음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감독을 중시하는 영화계 문화와 달리 드라마 제작사가 작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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