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가 된 경제, 21세기 세계대전]
<3> 덫에 걸린 수출 코리아
편집자주
경제가 국가생존을 좌우하는 시대다. 자원 무기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안보의 우선순위가 뒤바뀌고 있다. 폭주하는 건 중국이다. ‘첨단산업의 비타민’ 희토류를 움켜쥐었다. 미국은 동맹·우방을 끌어들여 핵심전략물자 조달 압박을 노골화하고 있다. 일본은 ‘식량안보’를 내세워 쌀 자급률을 높이던 경험을 되살리고 있다. 한국의 대응전략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지나친 일본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한편,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도 강화되는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5일 산업통상자원부의 ‘소재·부품 종합정보망’에 따르면, 지난해 1~6월 기준 한국의 소재ㆍ부품 누적 수입액(982억7,000만 달러) 중 일본 제품(143억1,000만 달러) 비중은 14.5%로, 2019년(15.8%)보다 1.3%포인트 낮아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특히 100대 핵심품목만 보면 대일 의존도는 지난 2년간 6.5%포인트나 급감했다”며 “2019년 이후 감소 추세가 3배가량 빨라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19년 7월 3대 반도체 핵심소재(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이후 일본의 조치가 소·부·장 전체로 확산될 우려가 커지면서 우리 정부와 국내 기업들은 대일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데는 '정경 분리'가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가 정치적인 확전을 자제하면서 경제적인 자립안 마련에 주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무역보복 성격이어서 우리 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대응은 차분했다. 일본이 수출 규제 강화 이유로 지적한 한국의 수출 통제 제도 문제점을 모두 수용해 개선했고, 종료를 검토했던 한일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도 연장하며 맞대응 수위를 낮췄다.
대신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한 달 뒤인 8월 ‘대외의존형 산업구조 탈피를 위한 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소부장 1.0)’을 마련하며 경제적 자립 방안에 주력했다. 이에 일본의 수출 규제가 한국의 중장기 공급망 안정화 정책을 마련하는 예방주사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부장 1.0에선 ‘탈일본화’가 목표였지만, 다음 해인 2020년 7월 발표된 ‘소부장 2.0’ 전략에선 코로나19 팬데믹 대비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정책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일본발 위기는 국내 기업 간 협업체계를 강화하는 촉매도 됐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이 일본 기업에만 제공했던 생산라인을 국내 중소기업에도 개방해 상용화에 참여한 건수가 2018년 0건에서 2020년 74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포토레지스트 시장의 46%를 점하는 일본 도쿄오카공업(TOK)이 한국 내 생산을 결정하는 등 해외기업 23곳의 한국 진출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의 소·부·장 산업이 ‘탈 일본’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 규제 3대 품목 중 불화수소 수입 비중은 2018년 42.5%에서 지난해(1~11월) 13.6%로 크게 감소했지만 포토레지스트는 같은 기간 93.2%에서 80%로, 폴리이미드는 44.4%에서 35.5%로 줄어드는 데 그쳤다.
특히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우리 정부는 벨기에로 수입처를 바꿔 대일 의존도를 낮췄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벨기에는 일본 JSR의 자회사에 포토레지스트 구매를 의존하는 실정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대일 무역적자가 계속 확대되는 걸 보면 한국의 구조적인 한계는 여전하다”며 "정부 주도를 넘어, 향후 민간 기업 간 협업을 통한 공급망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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