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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월북' 생활고 때문?… 탈북민들 "사회적 고립감이 더 컸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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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책 월북' 생활고 때문?… 탈북민들 "사회적 고립감이 더 컸을 것"

입력
2022.01.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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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늘씨 "귀순 후 3년까지 고비… 많이 외로웠을 것"
백요셉씨 "DMZ 넘어온 젊은 남성들, 특히 고립 심해"

2일 오후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파주=뉴스1

2일 오후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파주=뉴스1


"귀순 후 1~3년이 제일 힘든 시기입니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그랬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2012년 탈북 정하늘씨


DMZ(비무장지대)를 넘어오는 이들은 대부분 한국에 연고가 없는 젊은이입니다. 보통 그런 친구들이 (탈북 후) 어려움을 많이 겪지요.

2008년 탈북 백요셉씨

새해 첫날 북한이탈주민(탈북민) A씨가 탈북한 지 1년여 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재입북한 사건을 두고, 먼저 한국에 들어와 정착한 탈북민들은 사건 경위를 이렇게 짐작했다. 군과 경찰은 A씨가 월북한 결정적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사회 부적응'을 지목했지만, 한국일보와 만난 탈북민 다수는 "외로움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이 더 컸을 것"

2012년 8월 DMZ를 넘어 귀순했던 정하늘(28)씨는 5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A씨 사건에 대해 "나보고 다시 DMZ를 넘어가라고 하면 못 넘어갈 것"이라며 "(A씨가) 그만큼 절박했던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북 후 3년까지를 남한 정착의 고비로 보는 정씨는 A씨가 청소용역업체 직원으로 일했던 점을 언급하면서 "매달 100만 원 후반에서 200만 원 초반을 받았을 걸로 짐작되는데, 혼자 살기에 부족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외로움이 더 컸을 것 같다"고 추정했다.

정씨가 이렇게 단언하는 건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11년째 살고 있지만 고향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며 "(A씨도 나처럼) 사투리를 교정하는 것도 어렵고, 문화 차이 등으로 이성친구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냉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등이 A씨의 이탈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거란 짐작이다. 정씨는 "나는 처음 1년을 견뎌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집에 들어가면 날 반겨줄 핏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가정이 있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다"고 토로했다.

합동참모본부가 5일 동부전선 최전방 지역에서 발생한 탈북민 A씨 월북사건에 관한 군 당국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모습이 찍힌 A씨의 모습을 공개했다. 뉴스1

합동참모본부가 5일 동부전선 최전방 지역에서 발생한 탈북민 A씨 월북사건에 관한 군 당국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민간인출입통제선 인근 폐쇄회로(CC)TV 카메라에 모습이 찍힌 A씨의 모습을 공개했다. 뉴스1


"DMZ로 탈북한 독신 남성, 고립감 심해"

탈북민 중에서도 A씨처럼 DMZ를 넘어온 이들이 사회적 고립에 빠지기 쉽다는 증언도 많다. A씨는 2020년 11월 육군 22사단 일반전초(GOP) 철책을 통해 귀순했다가 같은 경로로 월북했다. DMZ를 통한 탈북은 중국 등 제3국을 거치는 경로에 비해 훨씬 위험한 방식이라, 한국에 별다른 연고 없이 우발적으로 북한을 탈출하려는 이들이 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북한군 경계 등을 뚫고 와야 하는 특성상 혈혈단신의 젊은 남성이 많은 점도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조건이다.

2008년 군 복무 중 탈북한 백요셉(38)씨는 "DMZ를 넘어왔다면 대부분 젊은 사람이 돌발적 선택을 했다고 보면 된다"며 "한국에 오니 그렇게 넘어온 군인 출신 친구들이 많더라"고 말했다. 그는 "별다른 사전준비 없이 그렇게 탈북하고 나면 대부분 한국에 의지할 데가 없어 정착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여파로 국경 단속이 대폭 강화돼 탈북자가 현저히 줄어든 것도 A씨의 고립을 가중시켰을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통일부에 따르면 국내 입국한 탈북민은 2019년 1,047명, 2020년 229명, 2021년(1~9월) 48명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정하늘씨는 "나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동기들이 10여 명 있어서 그나마 외로움이 덜했다"며 "지금은 넘어오는 사람들이 없어서 동기가 없을 테니 (사회에) 나오면 혼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손정훈(58) 전 북한인권제3의길 정책위원은 이런 탈북민 문제에 대한 여론을 환기하려 2013년 재입북을 선언해 주목받은 바 있다. 손씨는 "자기 처지를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한국에 왔는데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술자리에 가보면 '나도 윤택하게 살지도 못할 거면서 (북한에 있는) 일가친척을 다 망쳐놨구나'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고 전했다. 그는 "남한 정착 과정에서 느끼는 냉소에 탈북민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며 "북한에 남은 가족들이 피해를 보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여기에 머물러야 되나 고심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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