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삼봉에서 옥순봉까지 단양팔경 여행
전국의 지자체마다 8경, 9경을 내세우지만 손 대지 않은 경관으로 단양팔경 만한 곳이 있을까.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의 걸작, 단양팔경에는 예로부터 시인과 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 명성은 현재도 여전하다. 세월이 흐르며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져 실패 없는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단양 여행은 철도와 렌터카 이용이 효율적이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로는 2시간 30분가량 걸리는데, KTX-이음을 타면 막힘없이 달려서 1시간 20분 만에 단양역에 도착한다. 현지에서는 렌터카를 권한다. 드물게 다니는 농어촌버스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양팔경의 으뜸 도담삼봉과 석문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을 단양팔경이라 한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이야기가 서린 제1경 도담삼봉으로 향한다.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내려와 현재의 도담삼봉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선군은 강을 따라 흘러들어온 삼봉에 대해 단양군에 세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때 어린 정도전이 기지를 발휘했다. 정선군수에게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도로 가져가시오'라고 항의해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도전은 훗날 자신의 호를 '삼봉'으로 지을 정도로 이곳에 애정을 보였다. 남한강의 푸른 물결을 비단처럼 두른 도담삼봉은 조망 장소에 따라 마술을 부리 듯 1~3개의 섬으로 보인다.
도담삼봉에서 200m 거리에 제2경 석문이 있다. 오래 전에 석회암 동굴이 무너진 후 동굴 천장의 일부가 남아 현재의 구름다리 모양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돌기둥의 뛰어난 조형미와 다리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의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비단무늬 기암절벽, 사인암
단양팔경 중 상선암·중선암·하선암은 단양천 계곡에 위치하고 있어 여름이 제격이다. 인근의 사인암으로 이동한다. 하늘 높이 치솟은 기암 절벽이 서로 다른 색상의 비단으로 무늬를 짠 듯 독특한 색깔과 모양을 지니고 있다. 사인암은 수직·수평의 절리면이 차곡차곡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추사 김정희가 하늘에서 내려온 한 폭의 그림이라고 예찬했다니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자연의 걸작이다.
고려 후기 유학자 역동 우탁(1263~1342)이 지냈던 사인(舍人)이라는 벼슬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단양이 고향인 그가 이곳을 유난히 사랑해서 자주 찾았으며,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를 지낸 임재광이 그를 기리기 위해 사인암이라 지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바위마다 수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자연 속 서예전시관이라 해도 될 정도다.
유람선으로 만나는 옥순봉과 구담봉
다음은 옥순봉과 구담봉을 만날 차례. 두 곳은 육로에서 완벽한 형상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인근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충주호(청풍호) 뱃길을 따라 이동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제비봉을 시작으로 신선봉(투구봉), 두향 무덤, 강선대를 지나면 구담봉이 나타난다. 마치 커다란 거북 한 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는 형상이다. 물속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어서 구담(龜潭)이라 한다는데, 자세히 보면 거북의 큰 코와 정상으로 기어오르는 모습이 연상된다.
퇴계 이황은 구담봉의 풍광을 두고 팔경의 원조라 할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이보다 나을 수 없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조선 명종 때 문신인 이지번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머물며 구담 양안에 칡넝쿨을 매고 비학(飛鶴)을 만들어 탔다고도 한다.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그를 신선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구담봉의 신비로운 모습을 보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뒤이어 옥순봉이 등장한다. 희고 푸르스름한 바위 군상이 마치 죽순처럼 힘차게 솟아 봉우리를 이룬 모습이다. 병풍을 펼치듯 웅장한 광경에 유람선 승객의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다. 배도 옥순봉이 잘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니 사진 찍기에도 그만이다.
옥순봉은 행정구역상 단양이 아니라 제천 땅이다. 그럼에도 단양팔경에 이름을 올린 사연이 있다.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인 퇴계가 청풍(현 제천시 청풍면)에서 배를 타고 단양으로 거슬러 오르며 시를 지었다. 구담봉과 마주보는 바위 봉우리의 아름다움에 반해 옥순봉이라고 명명했다. 그 자태가 어찌나 탐이 났는지, 청풍부사에게 이 산을 단양으로 넘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퇴계는 단양이 시작되는 문이라는 의미의 ‘단구동문(丹邱洞門)’ 네 글자를 바위에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삼았다. 옥순봉이 단양팔경에 포함된 된 이유다.
옥순봉과 구담봉에서 내려다보는 청풍호 비경
옥순봉과 구담봉에 오르면 청풍호의 비경이 펼쳐진다. 등산로는 총 5.8㎞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땀 꽤나 흘려야 하는데, 정상에서 보는 풍광은 그 고생을 보답하고도 남는다. ‘내륙의 바다’라 불리는 드넓은 충주호(청풍호)를 바라보고 있으면 별세계의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는 옥순봉 자락에 출렁다리가 놓였다. 좌우로 요동치며 호수를 건너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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