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원의 질문]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 선택을 두 달 앞둔 지금 유권자들은 사상 초유, 기상천외, 예측불허의 선거정국을 보고 있다. 한심한 후보라 한탄하지만 더 싫은 후보를 떨어뜨리려 찍어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복이 반복되고 여야 간, 지지층 간 적대감은 높아진다. 유권자들이 심판하고 응징해도 결국은 거대 양당이 주고받으며 같은 행태를 반복한다.
그렇다면 비난하고 혐오하기만 할 게 아니라 거대 양당이 지배하는 구조를 깨뜨려야 하지 않을까. 2022년 대선의 한심한 수준은 역설적으로 정치 개혁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을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6일 추가 인터뷰)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게 던졌다. 지 교수는 “지금 한국 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관용의 규범”이라며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다시 추진해 승자독식의 정치제도를 연대의 정치체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선 퇴행은 탄핵 후 쇄신 미완의 결과”
-이번 대선은 퇴행적이다. 거대 양당 후보들의 도덕성·자질에 문제가 많아 보이고 검증은 네거티브 공세에 치우쳐 시대에 필요한 의제와 정책, 비전이 뒷전이다. 어쩌다 이렇게 후퇴하게 됐을까.
“국민의힘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몰락했다가 재정립하는 중이고,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 절대 우위를 확보한 가운데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본다. 보수 정당은 안에서 인물을 찾는 데 실패해 외부 인사를 영입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당내 잠재력이 있는 홍준표 의원, 합리적 인물로 꼽히는 유승민 전 의원이 있지만 정권을 가져올 수 있느냐가 결정적 기준이 됐다. 호남처럼 대구·경북(TK) 유권자들도 전략적 판단을 한다. 누가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을까 따져서 윤석열 후보로 귀결됐을 것이다. 민주당 지지층 역시 이재명 후보가 흠이 있어도 비호남 출신으로서 경쟁력이 있다고 봤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대위에서 쇄신 시도를 했다. 그런데 최근 역행하는 추세다. 왜 이렇게 달라지기 어렵나.
“과거 보수 정당을 묘사하던 말이라면 친일·친미 친권 위주의 반북·반개혁 반민주 등이 꼽히는데 지금도 이상하지 않은 수식어다. 역사의식의 부재 또는 편향성이 여전히 극복 과제라는 뜻이다. 윤 후보가 ‘외국에서 수입’ ‘주사 이론’ 등을 언급했는데 79학번 세대로서 할 소리인가.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토론회를 주최했던 김진태 전 의원을 선대위에 불러 쓴 게 정상인가. 김종인 비대위가 정강정책에 5·18을 인정하고 보수 가치를 재정립하는 시도를 한 것은 긍정적이었는데 지금 회귀하고 있다.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 인식을 부정한다면 그 정당이 한국 정치를 책임질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인적 청산, 역사 재정립이 필요했는데 윤 후보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기 주변 사람으로 인적 재편을 할 텐데 서울대 법대·검찰 출신의 형님 동생 그룹이라면 비슷한 문제를 노출할 것이다. 보수 정당의 재구성은 매우 중요하다. 보수 진영뿐 아니라 민주당과 그 지지층의 변화도 불러온다. 국민의힘 대통령 당선을 막는 게 호남의 제1가치가 되는 그런 상황을 끊어야 한다.”
“인물 영입 비정상… 그래도 사퇴 요구는 야만”
-윤 후보와 이준석 대표가 돌이킬 수 없이 갈등하고, 후보교체 여론과 퇴진 요구를 맞닥뜨린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이다. 정당·정치인 수준이 너무 낮다. 둘 다 국민과 당원이 뽑은 대표자들인데 도대체 유권자가 문제인가, 선출제도에 맹점이 있는 건가.
“우선 정당의 인물 영입 과정이 문제다. 정치 경력이 전무한 검찰총장 출신이 야당 후보가 된 것도, 그토록 낯을 가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하게 된 것도 이상하다. 딕 체니는 럼스펠트의 인턴으로 정치경력을 시작해 부통령이 됐는데, 그런 기저가 국회와 정당, 지역에 있어야 한다. 사실 정당을 바꾸는 데에 가장 중요한 건 공천이고, 2002년 대선 때 민주당이 도입한 국민참여 경선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다만 언제부턴가 국민선거인단 투표를 여론조사로 대체하는 등 후퇴했다. 인지도, 당선 가능성 높은 후보에게 기회를 주는 셈인데 바꿔야 한다.
그렇더라도 민주 절차를 통해 선출된 후보를 교체하자는 요구는 정치적 술수에 가깝다. 집권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영혼도 팔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야만의 시대에나 통하는 것이다. 집권이 정당의 존재 이유라며 이를 정당화하는 이들은 절차적 정의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당대표에게 물러나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양극화, 즉 동지가 아니면 적이고 뜻이 다르면 배제하는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민주당 역시 기득권, 내로남불 등을 노출해 정권교체 여론을 스스로 높였다.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적대적 공생 관계, 즉 실체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존재라 볼 수 있다. 민주당이 기득권이 아닌 적이 없다. 조국 사태 이후 표리부동이 노골적으로 표출됐을 뿐이다. 지난 총선에서 벼락부자가 돼 감당할 능력 없는 권한을 행사하느라 좌충우돌한 측면도 있다. 상임위원장 독식이 그렇다. 민주당 가치를 지키는 정책 추진에 다수 의석을 행사하고 그 외엔 권력을 나눴어야 했다. 토크빌의 ‘다수의 독재(Tyranny of the majority)’를 자제하려는 노력이 없었다.”
“독자 가치 없는 安, 지지율 지속 어려워”
-대안을 원하는 요구는 늘 있다. 문국현·안철수 신드롬 등 새정치를 외친 정치인에 열광했고 국민의당·바른정당 시도가 있었으나 결국 흐지부지됐다. 제3지대 세력화가 가능하려면.
“제3정당의 등장을 설명할 때 동원 정당(Mobilizing Party)과 도전자 정당(Challenging Party)의 개념을 사용한다. 동원 정당이란 지지층에 새로운 균열이 발생해 균열 지점을 중심으로 유권자가 재편되는 것이다. 예컨대 탈물질주의 가치관이 새롭게 부상해 환경을 중시하는 이들을 지지층으로 동원한 녹색당이 탄생하는 것이다. 도전자 정당은 기성 정당이 잘 못 하는 걸 함으로써 지지층을 확보한다. 국민의당이 그랬다. 그러나 안 후보도,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도 안정적으로 제3지대를 창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추구하는 자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탈자들을 끌어모은 거라 기성 정당 문제가 사라지면 다시 빠져나간다. 원론적으로 한국 사회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3지대 가능성이 열렸다고 볼 수는 있다. 청년, 젠더, 노인, 환경 등의 이슈가 커지고 있어 그 해법과 가치를 제시하는 정당이 성장할 수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가령 SNS 문화의 가치를 반영할 정당이 나올 수도 있다.
제3정당이 실패한 것은 지지율이 좀 높아지면 기성 정당과 거래해 입지를 키우려 했기 때문이다. 안 후보의 가장 잘못된 선택이 2014년 민주당과 통합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한 것이라고 본다. 고생하더라도 독자 정치세력화를 꾀했어야 했다. 기성 정당 품에 안기면서 ‘새정치’가 질식했다. 2018년 바른정당과 통합할 때도 1년만 더 뜸을 들였다면 호남 유권자들이 그렇게 돌아서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안 후보 지지율 상승은 윤 후보의 지지율 변화에 의존하는 종속변수일 뿐이다.”
“정원 늘려 연동형 비례대표제 제대로 해야”
-결국 거대 양당의 대안이나 견제가 될 정당들이 더 많아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 입장에선 양당이 간과하는 요구는 무시되고 만다. 일단 다양한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들이 의회 진입부터 해야 한다. 선거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양당제와 다당제는 늘 논쟁되는 주제다. 효율적으로 정당 간 협의를 거쳐 국정을 운영하는 데에는 양당제가 낫고, 표심을 반영하는 대표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다당제가 선호된다. 우리나라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취약하고 소수 정당이 생존을 못 하는 문제가 크다. 나 역시 제대로 대표되지 못 하는 집단, 사회적 약자가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례성을 확대하는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1등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단순다수제는 맹점이 분명하다. 지난 국회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던 것도 정치권의 합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정당 수만 아니라 정당 간 관계도 중요하다. 지금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심화·공고화하는 단계에서 절실한 것이 관용의 문화다. 정당 간 관용은 가장 혐오하는 집단에 당연한 권리를 용인하는지(예컨대 매카시즘이 불었던 때 공산주의자가 교단에 서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로 측정되는데 우리나라 관용 수준은 굉장히 낮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혐오의 정치가 강화한다. 온라인 정치 활성화가 숙의과정을 생략하고 감정 대립을 부추긴다. 정치인이 상대를 대하는 규범도 그렇다. ‘집권하면 공수처에 책임 묻겠다’ ‘확정적 중범죄자’ 등 윤 후보의 수사가 매우 적대적인데 자신이 희생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정치가 작동하게 한다. 승자독식의 제도가 정치적 양극화를 재생산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연대를 해야만 다수당이 되는 구조를 만들기 때문에 이런 두려움을 없애는 데에 도움이 된다. 의원내각제나 100% 비례대표제도 그런 효과가 있지만 너무 급격한 변화는 무리일 수 있다.”
“대패할 텐데 연동형 비례제 안 하면 손해”
-20대 국회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으나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세우는 바람에 취지를 훼손하고 오히려 양당제를 강화하고 말았다. 여론이 안 좋은데 다시 추진할 수 있을까.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은 비례성을 높이고 사회적 약자 대표성을 강화하는 게 기본이어야 한다. 위성정당을 막고 비례성 강화 취지를 달성하려면 비례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 단 비례대표를 늘려놓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정당 공천 과정이 중요하다. 국민의 반(反)국회 정서를 감안해 비례 의석을 100석 정도로 늘리고 지역구 의석은 유지해 총 정원 360명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단계적으로 더 증원할 수 있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줄이자고 하지만 처리 법안이나 보좌진 부담을 냉정히 보자. 의정을 더 잘 하게 하려면 의원을 늘려야 한다. 대신 세비 등 국회 운영비를 동결한다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 언론이 필요성을 제기하고 국민이 국회를 압박해야 선거제 개혁이 가능하다.”
-이를 실행할 주체가 국회의원인데, 증원하고 세비 깎는 비례제 개혁을 추진하겠나.
“지난 정개특위 논의 때 국민의힘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반대한 건 바보 짓이었다. 21대 총선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자기들만 몰랐던 탓이다. 총선 결과 지역구 득표율이 민주당 49.9%,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 41.5%였고 의석은 각각 64.4%(163석), 33.2%(84석)를 가져갔다. 확실한 불비례로 (위성정당이 없었다면) 손해 아닌가. 다음 총선은 어떻게 될까. 권력 균형을 맞추려는 선거 흐름상 민주당도 대패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양당이 모험하지 말고 완전한 실패를 막기 위해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게 나쁘지 않다.”
"대통령 권한 분산? 지금도 의회 역할하면 가능"
-대선에서 이긴 쪽이 권력과 자리를 독식하는 구조가 적대 정치를 부추기고, 그래서 대통령제 권한을 분산시키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책임총리제, 분권형 대통령제는 일부 대통령 권한을 의회에 맡기는 것인데, 한국에선 국회가 미덥지 않고 그래도 똑똑한 대통령을 뽑아 국민이 통제하는 게 낫다는 정서가 많다. 의원내각제는 장점을 발휘하려면 정당들이 믿을 만해야 하는데 양대 정당이 기득권 카르텔처럼 국회 권력을 장악하지 않을지, 실효성에 확신이 안 든다. 차라리 권력분립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는 게 낫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견제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여당이 청와대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아서다. 권한이 없는 게 아니라 행사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공수처나 검찰이 아니라 의회가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한국의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릴 만큼 권한이 막강한 부분을 축소하는 방안은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과반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2차 투표를 하는 결선투표제, 순위를 매겨 득표율에 반영하는 선호투표제는 어떤가. 역시 소수 표심을 반영하고 적대적 정치문화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결선투표는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는 장점이 있고, 결선에서 후보들이 연합해야 하니 합의적 정당체제가 형성될 수 있다. 3, 4등을 끌어안기 위해 다른 정당의 정책을 도입하거나 각료로 임명하는 협상을 하게 되고 통합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선호투표제는 너무 복잡하다는 고민이 있다. 계산이 복잡하고 개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동개표가 가능하겠지만 신뢰성 시비가 있을 것이다.”
“설립기준 완화, 다양한 정당 출현 가능케”
-정당 설립을 쉽게 할 필요도 있을 듯하다.
“광주에 부임한 이후 지역 정당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국민의힘 후보는 없고 매번 민주당만 찍어야 하냐는 정서다. TK도 같은 상황이다. 그러려면 5개 이상 시도당, 각 1,000명 이상 당원이 있어야 정당 설립이 가능한 현행 규정은 너무 강하다. 기준을 완화하면 지역 정당이나, 앞서 말한 청년·환경·SNS가치 정당 등이 등장하기 쉽고, 기성 정당이 대변하지 못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무엇이 필요한가.
“정치 개혁 못지않게 중요한 건 정치기반을 키우고 교육하는 것이다. 지금 당원 당직자 간부를 모집·육성하는 과정은 주로 의원들이 지역 후배를 보좌관으로 거느리다 지방선거에 내보내는 하향식 구조다. 당원을 재생산하고 리더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작동하지 않는다. 시의회에 인턴프로그램 운영을 건의했지만 무관심하다. 지난 총선 때 투표권이 주어진 고3을 위한 교육 교재를 만들었는데 교육부가 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있다며 승인하지 않아 배부하지 못했다. 민주시민을 키우기 위한 교육조차 견제되는 현실이다.”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실망과 혐오가 크다. 정작 정치 개혁에는 큰 관심이 없다. 정치 개혁이 왜 필요한가.
“지긋지긋한 정치 현실을 바꾸려면 정당을 개혁해야 한다. 정당의 민주화, 정당 간 협력체제 구축이 필수다. 하지만 정당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하고 개혁하기는 어렵다. 결국 국민이 나서서 변화를 모색하고 강제해야 한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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