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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 공화국의 잇단 비극

입력
2022.01.1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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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지진 전후의 아이티

지난해 10월 소총을 휴대한 채 수도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순찰 중인 아이티 경찰. 포르토프랭스=AP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소총을 휴대한 채 수도 포르토프랭스 거리를 순찰 중인 아이티 경찰. 포르토프랭스=AP 연합뉴스

16세기 이래 유럽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아 온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는 무력으로 프랑스를 물리치고 1804년 독립한 대륙 최초의 흑인공화국이자, 법으로 노예제를 폐지한 북미 첫 국가다. 하지만 1차대전 이후부터 2차대전 직후까지 미국의 준식민지처럼 존립했고, 공화제 정부 역시 헤아리기도 힘들 만큼 잦은 쿠데타를 겪었다. 1957년 집권한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14년 군사독재, 바통을 이은 아들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만 15년 집권과 1986년 쿠데타 축출 이후에도 테러리스트들의 투표장 공격으로 대통령선거가 취소되는 등 정치·행정적 공백상태가 거듭됐다. 서반구 최악의 빈국으로 꼽히는 아이티의 시민들은 열대성저기압 허리케인의 자연재해까지 연례행사처럼 감당해야 했다.

거기에 20세기 이래 최악의 지진이 2010년 1월 12일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강타, 약 30만 명이 숨지고 수십만 명이 부상당하고 약 150만 명이 이재민이 됐다. 북미판과 카리브해판의 단층선 지각 변동이 지진의 원인이었지만, 외신들은 무능한 정부의 행정 부재야말로 최악의 피해를 낳은 주범이라 지적했다.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국제 원조에도 불구하고 10년이 지난 아직도 지진의 상처가 여전한 이유도 그것이라 꼬집었다.

또 거기에 코로나 팬데믹이 덮쳤고, 지난해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마약조직원들로 추정되는 괴한들에 의해 암살당했고, 8월 새 지진이 수도 인근을 강타해 1,3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헌법상 대통령직 승계 1순위인 대법원장은 대통령보다 먼저 코로나19로 숨졌고, 2순위인 총리는 지명만 받고 임명장은 받지 못해 임시직 정부수반인 상태다. 권력투쟁은 더 심화하고 있고, 수도의 거리는 범죄조직들이 장악하다시피 해서 지난해에만 몸값을 노린 납치 사건이 600여 건이나 발생했다. 기약 없는 무정부 상태를 견뎌 온 아이티 시민들도 새해를 맞이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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