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개봉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다. 상품 구매자가 극소수이고,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 역시 극소수다. 구찌는 1921년 이탈리아 기업가 구찌오 구찌(1881~1953)가 피렌체에서 설립한 이래 부침을 겪으며 명품의 대명사 중 하나가 됐다. 설립자의 이름을 내걸고 가족 기업으로 운영됐으나 지금 구찌에는 구찌가 없다. 1993년 구찌가(家) 일원이 완전히 축출되면서부터다. 한때 일가가 쥐락펴락했던 구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 ‘하우스 오브 구찌’는 20세기 후반 구찌가에서 벌어졌던 막장 드라마 같은 실화를 통해 인간의 덧없는 욕망을 들여다본다.
가업에 관심 없던 아들과 며느리
중심 인물은 파트리치아(레이디 가가)와 마우리치오(애덤 드라이버)다. 파트리치아는 평범한 젊은 여성이다. 고교 졸업 후 아버지가 경영하는 운송회사에서 경리로 일한다. 우연히 친구랑 파티에 갔다가 멋들어진 한 남자를 만난다. 마우리치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의 성에 파트리치아의 귀가 솔깃해진다.
마우리치오는 패션명가 구찌의 자손이다. 할아버지가 일으킨 사업에 아버지 로돌포(제레미 아이언스)는 큰 관심이 없고, 작은아버지 알도(알 파치노)가 실질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마우리치오 역시 패션업 쪽에 마음을 두지 않고 변호사가 되려 한다. 파트리치아는 우연을 가장해 마우리치오와 만남을 이어간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결심하나 로돌포는 완강히 반대한다. 파트리치아는 근본 없는 집안 여성으로 구찌가의 돈을 노리고 마우리치오에게 접근했다는 이유에서다. 마우리치오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웨딩마치를 울린다.
갑작스러운 욕망, 뒤틀린 인연
로돌포가 죽기 직전 부자는 화해한다. 수완 좋고 가족애가 남다른 알도가 가교 역할을 한다. 알도는 매사 덜 떨어져 보이는 아들 파올로(재러드 레토)보다 마우리치오를 더 살갑게 대한다. 자신이 계속 경영을 하기 위해 구찌 지분 50%를 가지게 된 조카에게 애정을 쏟는 듯하다. “지금 하는 일로도 행복”한 마우리치오는 구찌 경영에 여전히 큰 뜻을 두지 않는다.
파트리치아는 다르다. 마우리치오가 목소리를 제대로 못 내는 게 불만이다. 카드 점쟁이 피나(셀마 헤이엑)가 그런 파트리치아를 부추긴다. 어느 순간 파트리치아는 욕망의 불나방이 되고, 욕망은 마우리치오에게 전이된다. 구찌 경영권을 둘러싼 권모술수가 오가고, 핏줄로 맺어진 인연은 뒤틀린다.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됐을 정도로 믿기 힘든 비극이 이어진다.
명품 연기 흥미로우나…
‘하우스 오브 구찌’는 여러 미덕을 지닌 영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유려한 화면에 펼쳐진다. ‘에이리언’(1979)과 ‘글래디에이터’(2000), ‘마션’(2015) 등 숱한 화제작들을 쏟아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세공술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명품 배우들의 명연기가 돋보인다. 알 파치노와 제레미 아이언스는 명불허전이다. 애덤 드라이버 역시 이름값을 한다. 누구보다도 레이디 가가의 연기를 주목할 만하다. 여러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스타 이즈 본’(2018)으로 연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연기 신예답지 않게 원숙한 면모를 보인다. 파트리치아를 순정하게 또는 표독하게, 때론 애절하게, 어떨 때는 우스꽝스럽게 표현한다.
냉소가 영화 전반을 관통한다. 등장인물들은 욕망을 좇으며 종종 인성을 드러낸다. 금력 앞에 피가 차가워지고, 돈으로 적과 동지를 구분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나, 돈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명품 회사를 배경으로 하니 모든 게 화려하다. 등장인물들은 온통 명품에 둘러싸여 있다. 몇 차례 스크린을 수놓는 패션쇼도 볼거리다. 흥미로운 소재와 배우들의 호연, 풍성한 눈요깃거리에 158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으나 수작이라 하긴 어렵다. 공감하지 못할 대목들이 있어서다. 파트리치아는 돈 때문에 마우리치오에 접근하지 않은 듯한데, 급작스레 욕망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이유를 알 수 없다. 마우리치오가 왜 급변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두 사람의 과거 삶이나 심리 묘사가 부족하니 마음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대가의 범작이라고 해야 할까.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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