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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유혈 사태, 권력투쟁 비화… 러시아 영향력 확대·중국도 개입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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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유혈 사태, 권력투쟁 비화… 러시아 영향력 확대·중국도 개입 조짐

입력
2022.01.09 19:20
수정
2022.01.09 23:5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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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 정보 수장 반역 혐의 체포
"현 대통령, 전 정권 축출 나선 듯"
러시아 파병, 중앙亞 영향력 확대
美 "러시아 발 쉽게 안 뺄 것" 비판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 시청사가 6일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모습니다. 청사 앞에는 전소된 차량도 방치돼 있다. 알마티=로이터 연합뉴스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 시청사가 6일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검게 그을린 모습니다. 청사 앞에는 전소된 차량도 방치돼 있다. 알마티=로이터 연합뉴스

카자흐스탄에서 연료가격 폭등으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대규모 사상자를 내며 일주일 만에 강제 진압됐다. 그러나 정국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전ㆍ현직 대통령 간 권력투쟁이 불거지면서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치안 유지 명목으로 카자흐스탄에 군을 투입한 러시아로 인해 중앙아시아 정세까지 요동치기 시작했다. 카자흐스탄 사태가 10일(현지시간)로 예정된, 우크라이나 안보 관련 미국과 러시아 간 고위급 협상에 미칠 파장에도 이목이 쏠린다.

9일 카자흐스탄 정부는 최근 일주일간 이어진 시위로 164명이 숨지고 5,800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 집무실은 “시위대가 점거했던 정부 기관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고 알마티 공항은 10일부터 운항을 재개한다”며 “국가 질서가 안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시위와 관련해 카림 막시모프 국가보안위원회(KGB) 위원장을 국가 반역 혐의로 6일 체포했다. 막시모프는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시절인 2007~2012년과 2014~2016년 두 차례 총리를 지내고, 2016년부터 KGB를 이끌어 왔으나 5일 내각 총사퇴와 함께 해임됐다.

정보기관 수장 체포를 두고 외신들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에 맞서 권력투쟁을 벌이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이 옛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장기 집권하다 2019년 권좌를 넘겼지만,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유지하면서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토카예프 대통령으로선 전 정권 그늘에서 벗어나 불안정한 입지를 공고히 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이번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전 정권 세력 축출에 나섰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카자흐스탄 재계 소식통은 “지난 몇 개월 동안 두 권력자 간 다툼이 늘어 의사결정이 마비되다시피 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폴 스트론스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토카예프 대통령이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으려 대담한 조치를 취했다”고 짚었다.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7일 대국민 TV 연설을 하고 있다. 알마티=AFP 연합뉴스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와 관련해 7일 대국민 TV 연설을 하고 있다. 알마티=AFP 연합뉴스

베테랑 외교관 출신답게 그간 온화한 통치 스타일을 보여 온 토카예프 대통령이 권력욕을 노골화했다는 점도 이러한 추측에 무게를 싣는다. 반정부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지자 군경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심지어 “경고 없이 발포하라”는 명령까지 내렸다. 루카 안체스치 영국 글래스고대 유라시아학 교수는 “토카예프 대통령은 3년 전 취임하면서 ‘경청하는 국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으나 이제 그는 진정한 권위주의 지도자가 되려 한다”고 평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앞서 내각 총사퇴와 함께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을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에서 쫓아냈다. 며칠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해외 도피설’도 파다했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측은 9일 스스로 의장직을 이양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현재 국내에 머물고 있다고 반박했다. 두 세력 간 알력 다툼이 토카예프 대통령 승리로 끝났다고 단정하기엔 이르다는 방증이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러시아를 등에 업고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미 러시아는 자국 공수부대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ㆍ옛 소련 국가 안보협의체) 평화유지군으로 카자흐스탄에 파견한 상태다. 두 정상은 사태 수습을 위해 10일 CSTO 정상회의 개최에도 합의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정치적 생존을 위해 러시아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왼쪽) 러시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카자흐스탄은 옛 소련 국가이긴 하지만 그동안 이웃 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 경제 분야 투자 큰손인 미국 사이에서 비교적 균형 외교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중앙아시아 정세가 빠르게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에리카 마라 미국 국방대 교수는 “푸틴 대통령에게 카자흐스탄 파병은 저비용 고효율 계약을 의미한다”며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에 더욱 순종적이고 충성스러운 동맹으로 서방국에 맞서 긴밀히 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카자흐스탄이 완전히 러시아 쪽으로 기우는 건,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미국과 서방에는 거슬리는 일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안보 협상을 코앞에 두고 원색적인 신경전도 펼쳤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7일 “최근 역사에서 얻은 교훈은 러시아가 한 번 다른 국가에 발을 들이면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그러자 러시아 외무부도 즉각 “미국이야말로 한 번 다른 나라에 들어가면 그 나라 시민들은 강도나 강간 피해를 당하지 않고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중국도 가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7일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대규모 소란으로 중대한 인명 사상과 재산 손실이 발생한 데 대해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는 구두 메시지를 보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도 9일 “중국은 카자흐스탄의 이웃으로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카자흐스탄 사태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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