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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무시한 골든글로브의 콧대,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가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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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무시한 골든글로브의 콧대,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가 꺾었다

입력
2022.01.10 20: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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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을 연기한 오영수가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 오일남을 연기한 오영수가 9일(현지시간) 미국 LA 베벌리힐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골든글로브 홈페이지 캡처

윤여정의 미국 아카데미 수상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가 증명했다. 아카데미보다 보수적이고 지역적인 골든글로브마저 한국의 노장 배우에게 경의를 표했다. 할리우드의 대대적 보이콧으로 시상식 중계가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오영수가 차지한 트로피의 가치에 흠집을 내진 못했다.

오영수는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오징어 게임’은 TV드라마 작품상과 남우주연상(이정재) 후보에도 올랐으나 두 부문 모두 HBO의 ‘석세션’에 내줬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 샌드라 오 등이 골든글로브에서 연기상을 받은 적은 있지만 국내 배우가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 배우 중엔 드라마 ‘쇼군’의 시마다 요코가 1981년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는 영화와 TV드라마로 나눠 시상하며 영화만 다루는 아카데미상, 방송 부문을 다루는 에미상과 함께 각 분야 양대 시상식으로 꼽힌다. 지난해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며 강력한 여우조연상 후보였던 윤여정을 후보에서 제외시켜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역사적인 수상이었지만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 넷플릭스가 보이콧 대열에 동참하면서 오영수는 황동혁 감독, 이정재와 마찬가지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수상자 발표 후 뒤늦게 수상 소식을 전해 들은 그는 취재진의 쏟아지는 전화에 “그저 기분이 좋고 기쁠 뿐”이라며 허허 웃었다. 넷플릭스를 통해선 “수상 소식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내가 나에게 '괜찮은 놈이야'라고 말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면서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오영수의 수상은 현지 관계자들에게도 뜻밖의 소식이었다. 미 일간 뉴욕포스트는 이날 온라인 기사에서 이번 시상식의 이변 중 하나로 오영수의 수상과 ‘석세션’의 키에란 컬킨의 수상 불발을 꼽았다. 두 배우는 같은 부문에서 경쟁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의 참가번호 001번, 깐부 할아버지로 뒤늦게 대중의 관심을 받았지만 그는 1963년 극단 광장 입단을 시작으로 연기 경력 60년에 이르는, 배우들이 존경하는 정상급 배우다. ‘리어왕’ ‘파우스트’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하며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한국연극협회 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선덕여왕’ 등에도 출연했다.

김명화 연극평론가는 “카리스마 있는 연극적인 외모에 선 굵은 연기부터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연기까지 두루 소화하는 배우”라고 평했다. 연극 ‘3월의 눈’을 함께한 배삼식 극작가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연기를 하는 배우, 진심을 믿고 중심을 지키는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끈 뒤 치킨 프랜차이즈 광고 모델 제안을 받고도 드라마에서 중요한 뜻을 지닌 '깐부'라는 대사를 이용해 광고를 찍는 것은 작품의 의미를 훼손한다며 거절한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받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 이후 선택한 작품도 연극이었다.

그는 지난 8일 막을 올린 연극 ‘라스트 세션’에 출연 중이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배우 신구는 그를 가리켜 “뒤에서 연극을 받치며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이번 수상을 가장 반기는 건 연극계다. 이성열 전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한국 공연계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배우들이 많다”면서 “지난해 윤여정 선생님에 이어 또 반가운 소식이 들려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한국 공연계가 세계 무대에서 계속 좋은 성과를 얻을 거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배우 오영수가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 연극 ‘라스트 세션’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밝게 웃고 있다. 뉴스1

배우 오영수가 지난달 8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스테이지에서 열린 연극 ‘라스트 세션’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밝게 웃고 있다. 뉴스1

정치권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문재인 대통령은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배우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 수상을 국민과 함께 축하한다”면서 “반세기 넘는 연기 외길의 여정이 결국 나라와 문화를 뛰어넘어 세계무대에서 큰 감동과 여운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은 우리 문화의 저력을 보여줬다”면서 “다양성과 창의성을 앞세운 ‘K문화’가 더 큰 미래 가치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가치가 옛날과 같지 않은 오늘날, 그래도 진심은 통한다는 깨달음을 일깨워 주셨다”며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적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원내대표는 “오영수 배우의 연기에는 헤아릴 수 없는 삶의 깊이가 묻어난다"면서 “58년, 연기를 위해 깊이 침잠했을 무수한 시간에 존경의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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