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결식 뒤 망월묘지공원에 안장
"한열아! 엄마가 네 곁으로 가셨다."
아들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대중 속으로 들어갔던 어머니가 아들 곁으로 떠났다. 고(故)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 "세월이 간다고 잊혀지는 게 아닙디다." 평소 그가 입에 올리던 말이었다.
35년 역경을 모질게 이겨 내며 오매불망했던 그는 아들이 내고자 했던 '민주(民主)의 길'을 텄고, 그 길을 따라 떠났다. 그 길에 남은 이들은 "하늘나라에서 한열이를 꼭 껴안아 달라"고 눈물로 배웅했다.
11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동구 5·18민주광장. 배 여사의 노제가 시작되자 광장 하늘을 뒤덮었던 구름이 걷히며 햇빛이 내려앉았다. 새벽부터 불어대던 눈바람도 거짓말처럼 멎었다. 앞서 발인식이 엄수된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서부터 상여(운구차량)를 뒤따라온 유족과 추모객 등 300여 명이 자리한 광장은 이내 숙연해졌다.
"내 이름은 배은심입니다." 잠시 후, 이인숙 연세민주동문회장의 연보 낭독 등에 이어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는 배 여사의 생전 마지막 인터뷰 영상이 노제 무대 스크린에 상영되자 광장 곳곳에선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추도사에서 "한평생 비바람 몰아치는 거리에서, 민주와 인권 투쟁 현장에서 불의 앞에 목소리를 높이셨던 어머니는 시대의 이정표였으며 광주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며 "민주열사·가족의 명예회복과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녀인 이숙례씨는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아낸 세월 35년, 어머니는 한열이를 애가 타게 보고 싶어 가슴 찢어지게 울부짖었지만 이젠 그 피맺힌 절규도 들을 수 없게 됐다"며 "그런 어머니가 만인의 어머님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고,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울먹였다.
50여 분간 진행된 노제가 끝난 뒤 고인의 유해는 동구 지산2동 자택을 들른 뒤 이날 오후 북구 망월동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있는 남편 이봉섭씨 묘지 옆에 안장됐다. 이한열 열사가 잠들어 있는 민족민주열사 묘역과 멀리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배 여사가 영면에 든 이날은, 82년 전 그가 세상에 나온 날(음력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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