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집은 ‘사고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금요일 격주로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놀이터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린 집. 충남 예산의 단독주택 '동동재(대지 면적 334㎡, 연면적 156.64㎡)'는 집 앞 놀이터를 향해 디귿(ㄷ) 자로 열려 있다. 집에도 표정이 있다면 동동재는 놀이터를, 놀이터가 상징하는 아이다움을 반기는 집이다. 아이들의 본성대로 신나게 떠들고 폴짝폴짝 뛰어도 된다고 품어주는 집이다.
강현직(40) 백하영(38) 부부와 여덟 살 아들, 다섯 살 딸이 이 집에 산다. 맞은편 놀이터의 소음이나 시선을 꺼릴 법도 한데, 이들은 집과 놀이터 사이에 벽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놀이터 쪽으로 큰 창을 냈다. 흐릿한 경계는 놀이터와 집을 넘나들며 노는 아이들에게도, 창밖으로 고개만 돌리면 아이들을 살필 수 있는 부모에게도 묘한 해방감을 준다.
문턱·계단 없는 배리어 프리 단층집
동동재는 단층집이다. 이층집에 대한 낭만 혹은 좁은 대지 탓에 대다수 단독주택은 다층집의 형태를 띤다. 건축주도 처음에는 이층집을 고려했지만 건축가가 단층집을 제안하며 지금의 안이 낙점됐다. 설계를 맡은 신현보 소보건축사사무소 소장은 "문을 열면 바로 땅을 디딜 수 있다는 게 전원 생활의 가장 행복한 점 같은데, 굳이 계단을 내려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위해 한옥처럼 집 안에서 바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출입구를 여러 개 두었다"고 설명했다. 가족은 현관을 거치지 않고도 주방, 거실, 안방 옆 세탁실에 설치된 문을 통해 중정으로 나갈 수 있다.
특수학교 교사로 '배리어 프리'에 익숙한 아내가 계단, 문턱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동동재가 단층집이 되는데 주효하게 작용했다. "이 집에 오래 살 생각인데, 2층은 아이들이 커서 독립하면 사용 빈도가 줄어들잖아요. 2층에 방이 있으면 항상 오르내려야 하는데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그 대신 단층집을 지어 구석구석 돌아다니자고 생각했어요." 이층집을 원했던 큰아이의 아쉬움은 거실 위에 조그마한 다락을 올리는 것으로 달랬다. 가족들은 다락에 TV를 놓고 종종 함께 영화를 본다.
동동재는 일반 주택에서 잘 쓰지 않는 라멘 구조(Rahmen structure·벽 대신 층을 수평으로 지지하는 보와 수직으로 세워진 기둥이 건물 하중을 버티는 구조) 방식으로 지어졌다. 기둥과 보는 철근콘크리트, 지붕은 경량목구조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구조와 상관없는 벽으로, 치장 벽돌로 마감했다. 라멘 구조는 이처럼 벽으로 하중을 지탱하지 않아 건물 외피를 만드는데 유용하다. 그래서 창이 작은 일반 주택보다는 큰 쇼윈도가 필요한 상가 건물을 짓는데 많이 이용된다.
건축가는 "건축주가 콘크리트에 대한 우려가 있어, 콘크리트 구조로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은 가져가면서도 콘크리트 양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했다"며 "기둥식 구조 덕에 중정을 향해 유리창을 넓게 배치하기 수월했다"고 설명했다.
ㄷ자 집... 방은 동향, 주방은 서향으로
건축가는 당초 미음(ㅁ) 자 형태 집을 제안했다. 남측에 놀이터, 북측에 도로, 좌우에 집이 들어올 택지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감안해서였다. 그런데 건축주가 되레 "놀이터와 왔다 갔다 적극 소통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면서 놀이터 쪽이 열린 디귿 자 집이 됐다. 집 이름 동동재도 디귿 자 모양과 관련이 깊다. 동동이라는 단어에 디귿이 두 번 들어가기도 하고, 같을 동(同)을 써서 중정을 중심으로 집의 모양이 대칭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디귿 자 형태는 공간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는데 효율적이다. 집은 3개의 매스에 주방, 거실, 3개의 방이 각기 자리하는데, 손님은 동선상 대개 공용 공간인 주방과 거실까지만 머물다 간다. 두 아이의 방, 안방이 있는 건너편 사적 공간까지는 발길이 잘 닿지 않는다. 공용 공간인 주방과 거실 사이에도 문과 커튼을 달아 서로의 소음을 차단하도록 했다.
서로를 자주 마주 보게 되는 것은 네모난 집에서 살 때는 못 느꼈던, 디귿자집만의 재미다. 아내는 "퇴근할 때 현관으로 들어서면 창문을 통해 맞은편 방에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며 "아이들이 손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고 말했다.
각 실은 시간마다 달라지는 빛의 각도와 일과에 따른 쓰임을 계산해 배치했다. 방은 서측에 놓고 창을 동쪽에, 주방은 동측에 두고 창을 서쪽에 냈다. 중정에 면해 있는 안방과 아이 방은 이른 아침부터 동쪽 창을 통해 햇빛을 듬뿍 받는다. 아침 이용 시간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건축가는 "동선이 길어져 방 크기가 작아지더라도 복도 대신 방을 중정 쪽으로 배치해 중정형 주택의 이점을 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가족이 저녁 시간에 주로 이용하는 주방은 중정 방향으로 서쪽에 창을 내 해가 오후 늦게까지 들어오도록 했다.
문만 열면, 손만 뻗으면... 이웃·자연과 맞닿은 집
가족은 직전까지 이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20평대 아파트에 살았다. 식구가 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야 할 때가 되자, 부부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아파트 투자 행렬에 동참할 것이냐, 오랜 꿈인 단독주택을 지을 것이냐. 집값 상승률이 높은 대전과 세종에 자리 잡은 친구들과 비교하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던 때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부 모두 지금 사는 곳에서 5~15분 거리에 있는 직장과 너무 멀어졌다. 그 지역 아파트를 매입해 전세를 주고 직장과 가까운 이 동네에 전세로 살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이재를 따진다면 방법이야 있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이 동네는 땅값이 싸니까 여기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집을 지어서 재미있게 살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행복하면, 아파트값도 안 부럽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가족이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 생활권이 그대로라도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의 삶은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제일 먼저 체감한 건 이웃의 존재다. 이웃끼리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일이 자연스럽다. 부침개를 많이 했다고, 핼러윈데이라고 서로의 집을 스스럼 없이 오간다. 아이들도 예고 없이 '○○야 놀자~'라고 말하며 친구 집 초인종을 누른다.
무엇보다 문만 열면, 손만 뻗으면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이 더 많아졌다. 땅과 가까운 집에서의 삶은 전보다 분명 다채롭다. "창문이 낮으니까 아이들이 자기 방 창틀에서 중정으로 뛰어내려요. 며칠 전 눈이 왔을 때도 아이가 창문을 열더니 바로 눈을 만지더라고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고 건강해보여 좋은 것 같아요." 고층 아파트에 살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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