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제주 제주시 애월읍 경마공원에서 말 도축장까지 걷는 방식으로 진행된 '퇴역 경주마를 위한 도축장 가는 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다녀왔다. 새벽 6시 전 김포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미 공항은 북새통이었고,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한라산 입장권마저 온라인 중고사이트에서 거래되고 있다던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 속에서도 관광지로서 제주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 해 제주를 찾는 관광객이 1,20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국내 대표적 관광지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연환경과 오락거리를 즐긴다. 하지만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동원되는 이곳 동물들의 삶은 어떨까.
먼저 퇴역 경주마가 처한 상황은 몰라서 그렇지 알고 나면 안타까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경기에서 죽어라 뛰지만 경기에서 지거나, 부상을 당해 '쓸모'가 없어지면 바로 도축되는 게 현실이다(▶관련기사보기: 죽어라 달렸어도 다치면 도축… 경주마는 살고 싶었다). 아무리 혈통이 좋은 말이라도 국내에선 상관이 없었다. 2019년 제주도 내 경주마 산업 실태를 폭로했던 국제 동물보호단체 페타(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PETA)가 "국제사회에서 한국 경마산업은 정육점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말의 평균 수명이 25~35세라는데 국내 경주마의 도축 시기는 평균 3, 4세다.
제주는 전시동물에게도 가혹하다. 지난해 8월 제주 돌고래 체험시설 마린파크에서 12년 동안 체험에 동원됐던 큰돌고래 '화순이'가 숨을 거뒀다. '돌고래의 무덤'으로 불리던 마린파크는 2008년 문을 연 후 들여온 돌고래 8마리가 모두 죽고 나서야 결국 문을 닫았다. 호반그룹이 운영하는 또 다른 돌고래 체험시설인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에도 남방큰돌고래 '비봉이'와 큰돌고래 '태지', '아랑이'가 남아 있다. 이들을 방류하겠다는 의지만 비공식적으로 밝혀놓고 지난해 말부터 돌고래쇼 공연을 중단해 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알 수조차 없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제주 안덕면에 위치한 코끼리 쇼장 '점보빌리지'에서는 코끼리들이 사람의 수신호에 맞춰 두 발로 서고, 쓰러지는 연기를 하고, 좁은 의자에 올라가고, 그림을 그린다. 돈만 내면 코끼리에게 바나나를 주면서 실컷 만지고 등에 올라타 걸어볼 수도 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할 정도로 자아의식이 있는 코끼리가 이 공연을 20년 넘게 반복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한다.
반려동물의 사정은 나을까.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발표한 '2016-2020 유실·유기동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1만 명당 유실·유기동물 발생 건수가 가장 많은 곳은 제주였다. 최근엔 제주 중산간 지역 유기견 문제가 떠오르기도 했다.
동물이 쇼에 동원되는 건 결국 이를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즐기러 왔다며 야생동물이 겪어야 할 아픔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제주의 유기동물 문제 역시 관광객과 연관이 없는 건 아니다. 관광객 중에는 제주에 반려견을 버리고 간 이들도 있겠지만 이보다는 풀어 키우는 개들을 보면 유기견이라고 지자체에 신고를 하는 경우가 많아 이 역시 유기동물 증가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관광지라는 이유만으로 제주 동물들의 복지를 뒷전으로 미뤄서는 안 된다. 제주를 찾는다면 최소한 동물들의 '고통'을 즐기러 가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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