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경찰관 7700명… 지원 예산은 연 2.5억원뿐
병원비 30%만 지원… 이마저도 복직 후 쉽게 끊겨
"피소될 때만 지원" 가해자 항소해도 법률지원 전무
"일하다가 다치면 저처럼 되니까요."
이달 5일 만난 최지현(34) 인천중부경찰서 경장은 최근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때 현장을 이탈했던 경찰관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16년 지명수배자 특별검거기간 100일 만에 23명을 잡아들여 1계급 특진했던 민완 경찰은 이듬해 현장 출동 때 중상을 입고 5년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공무상 재해(공상) 인정 기간에도 병원비 수천만 원을 스스로 부담해야 했는데 1년 전부터 공상 지원도 끊겨 빚이 빠르게 붇고 있다.
최 경장처럼 범인 피습으로 공상을 입은 경찰관은 최근 5년간(2017년~2021년 11월) 2,209명에 달한다. 최 경장은 26세 때 순경 임용 교육을 받으며 중앙경찰학교에서 봤던 '젊은 경찰관이여, 조국은 그대를 믿노라'는 문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경찰관의 사명감은 '내가 일하다 다치더라도 국가가 뒤에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인천 흉기난동 사건을 계기로 급물살을 탄 경찰관의 현장 대응 강화 논의에 공상자 처우 개선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호소로 읽힌다.
술집 난동 대응하다 중상
중학생 때부터 경찰관이 꿈이었던 최 경장의 삶은 2017년 2월 어느 날 인천 송도 소재 호프집으로 야간 출동을 한 뒤 송두리째 바뀌었다. 최단 시간 출동을 요하는 '코드 제로' 신고 현장에서 최 경장은 맥주병으로 가게문을 깨고 여성 손님들을 추행하던 김모(49)씨를 연행했다.
'수갑은 채우지 말라'는 상사 지시를 지키느라 술에 취해 발길질을 하는 김씨에게 무방비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순찰차에 태운 후에도 뒷좌석에선 발길질이 욕설과 함께 계속 날아들었다. 정신없이 김씨를 경찰서에 인계하고 서류를 작성할 때서야 어깨 통증이 느껴졌다. 병원에선 어깨관절이 찢어졌다고 진단했다. 두 차례 수술대에 올랐지만 후유증은 심했다. 순찰차를 운전할 때 생기는 진동만으로도 고통이 온몸에 퍼지는 지경이라 최 경장은 3년간 휴직해야 했다.
지난해 2월 복직했지만 상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최 경장이 최근 처방받았다며 기자에게 보여준 패치와 알약은 중증 통증에 사용하는 마약성진통제였다. 그의 공식 병명은 '어깨관절와순 파열에 따른 섬유근육통과 경추상완증후군'이다. "진통제가 없으면 전신에 신경통이 밀려와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병원비 지원, 복직하자마자 끊겨
최 경장에게 통증보다 더 괴로운 건 장기 치료로 쌓여 가는 빚이다. 최근 한 달간 부담한 병원비만 200여만 원이고, 부상 이후 자부담으로 지출한 병원비를 모두 합치면 8,000만 원이 넘는다. 공상 인정을 받아 휴직하던 기간에도 병원비의 70%가 본인 부담이라 제3금융권 대출까지 끌어 써야 했고, 복직한 후에도 200만 원가량의 내근직 월급으로는 치료비가 온전히 충당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얼마 전부터 진통제 처방 외에 다른 치료는 포기했다고 한다.
더구나 매년 공상 인정 재신청을 통해 병원비의 30%를 요양급여로 받아 왔지만 복직하자 지원이 끊겼다. 경찰청 담당 부서에서 "복직했으니 완치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재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3년 이상 휴직하면 직권면직 대상이 된다'는 공무원법상 규정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복직한 최 경장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는 공무원재해보상심의위원회에 공상 인정 연장을 요청했지만, 심의위는 지난달 '추가적 요양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설상가상으로 가해자 김씨는 지난해 10월 최 경장에게 항소장을 보내왔다. 최 경장이 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손해액의 30%(4,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하자 이에 불복한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가해자는 항소와 함께 법원에 5,500만 원의 공탁금을 냈다. 최 경장은 변호사 선임을 하려 했지만 경찰에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은 없었다. 경찰청 소송지원단 관계자는 "현행 소송 지원 제도는 경찰관이 직무 집행과 관련해 피소된 경우에 한한다"고 말했다.
최 경장은 생활고와 통증에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을 걱정한 지인의 신고로 경찰이 집 창문을 깨고 들어왔던 날, 출동한 이들이 자신과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사실을 안 순간은 그에게 수치로 남았다.
5년간 공상 7700명 발생, 예산은 2억원대
공상 경찰관 지원이 넉넉지 않은 근본 이유는 예산이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공상 경찰관은 지난해 646명을 포함해 7,759명(순직 63명 미포함)이지만, 올해 편성된 지원 예산은 2억5,000만 원에 불과하다. 경찰관이 다른 공무원에 비해 공상이 많은 점을 감안해 2018년 별도의 지원 제도를 마련했지만, 예산은 지원 대상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마저 지난해까지 연간 예산은 올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최 경장도 지원 연장을 거부당했을 때 경찰청에서 "예산이 없다. 공상 불승인에 불복하려면 행정소송을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이학영 경찰·소방자공상자후원연합회 회장은 현행 공상 지원제도에 대해 "현장 경찰관에게 사명감을 요구하기엔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직무 과정에서 다친 경찰관들이 국가로부터 치료비조차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다가 결국 퇴직하는 경우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경찰관이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뛸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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