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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내습

입력
2022.01.18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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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호주 산불(부시 파이어)

2020년 1월 인공위성이 약 일주일간 촬영한 호주 부시 파이어 발화 지도. NASA

2020년 1월 인공위성이 약 일주일간 촬영한 호주 부시 파이어 발화 지도. NASA

무심코 버린 생수병, 투명 합성수지가 돋보기 렌즈처럼 빛을 모아 낙엽 등에 불을 낼 수 있다. 태양 복사선이 모여 일으킨 화재라고 해서 '수렴 화재'라 불리는 이 현상의 원인물체(집속물체)는 부탄가스의 오목한 하부, 다양한 스테인리스 주방용품, 빗물이 고인 비닐하우스, 자그마한 유리구슬 등 다양하다. 자연 발화는 그 밖에도, 음식물 쓰레기 등 유기물이 발효·산화해서 일으키는 불, 페인트나 잉크, 튀김 기름 찌꺼기 등의 산화중합반응에 의한 발화, 성냥 원료로도 쓰이는 황린처럼 상온에서 불안정한 물질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낙뢰다.

인류는 불을 통제하고 이용하게 되면서 일상에서 불의 난폭함을 경험하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지만, 문명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 예컨대 미국 캘리포니아나 호주 아웃백 초원지대에서 불은 지금도 내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리고 조건과 전망은 문명 자체가 낳은 재앙, 즉 극단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문명에 점점 불리해지는 중이다.

2019~20년 연쇄적으로 발생한 호주 대형 산불은 29명의 인명과 10억 마리 이상의 야생동물을 희생시키며 5,900여 채의 가옥을 포함 뉴사우스웨일스 해안지역을 초토화했다. 발화의 원인은 번개였지만, 불을 키운 것은 가뭄으로 인한 건조한 날씨와 섭씨 40도를 웃도는 열기였다. 호주 산불, 엄밀히 말해 '부시 파이어(bush fire, 미개발 초원관목지대 화재)'는 근년 들어 40% 이상 빈도가 늘고 규모도 커져 시드니 등 문명의 공간에 위협적으로 다가서는 추세다.

2003년 1월 18일 호주 수도 캔버라에 들이닥친 대형 산불도 스트롬로 포리스트 공원 등 인근 자연보호지역을 숯더미로 만들고 480여 채의 가옥과 4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8일 번개로 자연 발화한 불은 여름 고온과 시속 150㎞의 건조한 열풍을 타고 도시를 덮쳤고, 불의 위세에 호주 소방당국은 수도를 온전히 방어하지 못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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