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7일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에 대해 대국민 사과하면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해 6월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학동 재개발 참사도 언급하면서 "두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안전 점검에서 문제 있다면 분양 계약 해지는 물론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함께 맡은 지주사 HDC 그룹 회장직은 유지할 뜻을 표시했다.
우선 도의적 책임이라도 지겠다는 정 회장의 사퇴를 폄하할 이유는 없지만 사고 원인 규명은 제대로 시작도 못 했는데 회장직부터 던지는 행태는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다. 사고당한 현장 노동자 6명 가운데 1명은 숨진 채 발견됐고 5명은 아직 생사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들이 최고경영자의 사과를 TV로 마주하는 것 또한 억장이 무너질 노릇이다. "물러날 게 아니라 책임진 뒤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사고 현장은 타워크레인 철거가 늦어지는 바람에 수색과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양생 불량 같은 인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 아파트 층수를 올릴 때는 보통 2주 정도 콘크리트 굳기를 기다리는데 사고 현장에서는 지난달 평균 5.2일 만에 한 개 층을 올렸다고 한다.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쳤다"는 현대산업개발의 해명과 다르다. 최상층 타설 하중이 설계를 초과한 줄도 모르고 지지 기둥을 철거한 아래층이 슬래브가 제대로 굳지 않은 상태에서 무너졌을 가능성도 있다.
콘크리트 성분 불량, 편법 재하도급 의혹도 제기된다. 광주 학동 사고 원인 중 하나도 불법 하도급에 따른 공사 현장 안전 관리 미비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대산업개발은 유해·위험방지 심사 대상 업체가 아니었다. 민원이 잇따랐지만 동절기 안전 점검 대상에서도 빠졌다. 정 회장은 "고객과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회사의 존립 가치가 없다"고 했다. 그 신뢰를 회복할 길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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