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선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의 ‘7시간 통화’가 16일 공개된 뒤 국민의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걱정했지만, 문제 될 게 없다"는 게 국민의힘의 대체적 반응이었다. 이준석 대표는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지적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김씨 발언을 짚어보면, 역풍을 부를 만한 악성 요소가 군데군데 깔려 있다. 공개된 김씨 발언 수위가 정치권의 '예상보다' 낮았을 뿐, 국민의힘이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얘기다.
①안희정 편 들며 “미투, 돈 안 챙겨줘서 터져”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 관계자와의 지난해 11월 통화에서 김씨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삶을 거는 투쟁인 미투 운동을 깎아내렸다. “(미투는) 돈을 안 챙겨주니까 터지는 것”이라며 "사람이 살아가는 게 너무 삭막하다”고 했다. 강간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옹호하기도 했다. 안 전 지사의 피해자인 김지은씨는 17일 입장문을 통해 “당신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이 결국 2차 가해의 씨앗이 됐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국민의힘은 20대 남성 위주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우호적 반응에 반색했다. 그러나 쉬쉬할 뿐, “대선후보 배우자로서 부적절한 인식을 드러냈다”는 당내 우려도 적지 않다. 여성과 중도층 표가 더 이탈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다.
윤 후보의 사과는 애매했다. 그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어찌됐든 많은 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만 했다. 김씨의 미투 발언에 대해선 “따로 드릴 말씀이 없다”며 사과하지 않았다.
②최순실 어른거리게 하는 정치 개입 논란
김씨가 윤 후보의 선거캠프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정황도 발언 곳곳에 묻어난다. 김씨는 서울의소리 관계자에게 캠프 합류를 제안하며 “내가 시키는 정보업을 하라. 잘하면 1억도 줄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학력 위조 논란을 언급하며 “내가 정권을 잡으면...”이라고 한 대목은 보수진영의 아킬레스건인 최순실 사태와 오버랩됐다. “영부인은 폐지하겠다"던 윤 후보 입장과도 배치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최순실 시즌2”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으로 공개되지 않은 내용 중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에 김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을 시사하는 대목도 있다고 한다.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씨는 ‘조 전 장관 부부가 가만히 있었으면 우리가 구속시키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며 윤 후보 부부가 수사 내용을 상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과장했을 수도 있지만, 검찰 권력을 희화화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③짙어진 ‘무속의 그림자’
윤 후보를 따라다닌 ‘무속’의 그림자도 짙어졌다. “나는 영적인 사람이라 도사들과 삶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는 김씨 육성이 기름을 부었다. 윤 후보는 지난해 10월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 손바닥에 '왕(王)'자를 쓰고 나온 데 이어 '천공 스승'과 인연을 강조한 것 때문에 "무속인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17일엔 ‘건진법사’ 명칭을 쓰는 무속인 전모씨가 선대본부에 상주하며 메시지와 일정, 인선 전반에 관여했다고 세계일보가 보도했고, 윤 후보 측은 부인했다. 전씨가 지난 1일 선대본부 직원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윤 후보의 어깨를 툭툭 칠 정도로 관계가 막역해 보이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까지 공개됐지만,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친근감을 표현하며 다가선 전씨를 윤 후보가 거부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④멀어진 '원팀'… 홍준표는 돌연 침묵 선언
아군에 대한 김씨의 부정적 언급은 ‘원팀’ 전략에 악재가 될 수 있다. 김씨는 대선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을 공격할 것을 서울의소리 관계자에게 주문했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에 대해선 “먹을 것 있는 잔치판에 오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보수진영 전체를 향해서도 “박근혜를 탄핵시킨 건 보수다. 보수는 챙겨주는 게 확실해 미투가 별로 안 터진다” 등 거침없는 평가를 내놓았다.
방송 직후 불쾌감을 내비친 홍 의원은 17일 “더 이상 이번 대선에 대해 의견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며 묵언수행을 선언, 윤 후보 지원에 거듭 거리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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