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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경조사, 축의금인가 뇌물인가

입력
2022.01.18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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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정형근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편집자주

판결은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판결이 쌓여 역사가 만들어진다. 판결에는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주목해야 할 판결들과 그 깊은 의미를 살펴본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정부합동민원센터에서 청탁금지법 바로알리기 홍보활동에 임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해 9월 서울 종로구 정부합동민원센터에서 청탁금지법 바로알리기 홍보활동에 임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1974년부터 철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해온 원고는 수도권 전철화 서울전차공장 신축공사 등을 도급받아 시공한 건설사로부터 직무와 관련하여 돈 1만 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아 파면됐다. 원고는 이 돈을 장녀의 결혼축의금조로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배척하면서 파면처분이 적법하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1977년 원고가 이 돈을 축의금으로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원심으로선 그것이 의례적인 것의 범위를 넘어서는, 축의금을 빙자한 뇌물수수인지 여부를 가려 원고에 대한 파면처분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했어야 했다고 판단해, 파기환송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또는 부조의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가액 범위 안의 금품등은 받도록 허용한다. 헌법재판소도 공직자가 이런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을 받는 것은 합헌이라고 했다. 현재 축의금·조의금과 선물 가액은 5만 원(농수산물은 10만 원)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국회는 작년 12월 21일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국내 농축수산물의 판매가 크게 감소하고 있음을 감안, 청탁금지법에 따라 수수가 허용되는 선물 가운데 농수산물 및 농수산가공품에 대해 설날과 추석 기간에 한하여 그 가액 범위를 두 배로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그래서 설날·추석 전 24일부터 설날·추석 후 5일까지는 농수산물 선물 가액은 20만 원으로 높아졌다.

사실 우리나라 공직자가 받을 수 있는 선물 가액은 외국에 비하여 높다. 미국은 공직자가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가액과 횟수에 관하여 1회 20달러(약 2만4,000원), 연간 50달러(약 6만 원)로 제한하고 있다. 일본은 5,000엔(약 5만 원), 영국은 25~30파운드(약 4만~5만 원), 독일은 25유로(약 4만5,000원)를 초과하는 선물의 수수를 금지하거나 신고 의무를 부과한다. 우리는 선물 가액만 정하고 있을 뿐, 횟수에 대한 제한은 없다. 따라서 청탁금지법상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수차례 받아도 상관없다.

공직자가 청첩장·부고장을 자유롭게 보내는 것도 문제다. 가정의례법에 근거하여 제정된 '건전가정의례준칙'(대통령령)은 결혼식의 하객 초청은 친척·인척을 중심으로 하여 간소하게 하도록 한다. 그럼에도 공직자가 지인들에게까지 청첩장을 보냄으로 법을 위반하고 있다. 청첩장에는 "마음 전하실 곳"이라는 계좌번호까지 적어둔다. 부고도 마찬가지다. 공직자가 마음 전하라고 계좌번호를 기재하면 직무관련자들은 금품을 요구하는 것으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공직자가 자녀 결혼식장에서 축의금으로 받은 돈까지도 뇌물 여부가 문제되어 왔음을 유념해야 한다.

경조사비에 관한 국민의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축의금과 조의금은 장차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조사비를 주고받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려운 시대를 거쳐오면서 우리 사회는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돈으로 표현해 왔다. 이젠 이런 전통도 바꿀 때가 되었다. 고위공직자가 결혼식 치를 비용이 없어서 청첩장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공직사회부터 경조사 때 돈을 받는 문화를 없애면 좋겠다. 이를 위하여 하객 초청 범위도 법대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직자가 경조사비, 선물을 받는 것이 사회 상규에 부합한 의례적인 것으로 합법이라고 보는 풍토 역시 개선해야 한다. 국민의 공복인 공직자가 설 명절에 20만 원 상당의 농수산물을 선물로 받는다면 1만 원 축의금 받고 파면당한 공직자처럼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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