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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옆집 살아도 누군지..." 가난보다 고립이 부른 죽음, 고독사

입력
2022.01.26 04:30
수정
2022.01.26 07:5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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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망이 놓치는 고독사]
5명 중 1명은 복지급여 비수급자
이웃도 지자체도 위험군 감지 못 해
1인 가구 증가·코로나19로 사각지대 확대
"유연한 복지·이웃공동체 활성화 대응을"

이달 3일 노원구 상계동의 한 빌라에서 홀로 살던 비수급자 김모(52)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준규 기자

이달 3일 노원구 상계동의 한 빌라에서 홀로 살던 비수급자 김모(52)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준규 기자

지난달 9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아파트에서 고교 교사 이모(5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세상을 떠난 지 5일 만이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빌라에서 사망한 송모(74)씨는 숨진 지 2주가 흐른 지난달 15일에야 수습됐다. 그달 23일 강서구 화곡동 다세대주택에서 발견된 30대 남성 A씨의 시신은 백골 상태였다. 이달 3일에도 노원구 상계동 빌라에서 김모(52)씨의 죽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지난달 이래 서울 시내에서 일어난 어떤 죽음의 목록이다. 30대 청년, 50대 중년, 70대 노인을 막론하고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발생한 이 비극들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고인이 혼자 살아왔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숨진 채 한동안 방치됐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 고독사에 해당한다. 서울시의 경우 사망한 지 3일(72시간) 이후 발견되면 고독사로 분류한다.

하지만 네 사람과 같은 유형의 죽음엔 통상적인 고독사와 구분되는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이들 가운데 사회복지망에 편입돼 복지급여를 받던 이는 없었다는 점이다. 고독사가 경제적 곤란을 겪는 이들 가운데 사회적으로 고립되기까지 한 소수의 죽음이라는 통념이 더는 유효하지 않은 셈이다. 오히려 지자체 관리를 받지 않는 이른바 '비수급자'였기에 이들의 외로운 임종은 수급자보다 더 늦게 포착됐을 가능성이 있다.

고독사가 우리나라 복지 체계의 새로운 도전으로 부상하고 있다. 저소득층에 초점을 맞춘 기존 복지정책, 1인 가구 증가,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사회적 교류 위축 등이 맞물려 고독사 위험군 관리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소득 수준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복지 체계를 개편하고, 이웃공동체 활성화로 사회적 고립을 효과적으로 예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가는 친지 없고 복지 손길마저 단절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숨진 채 발견된 비수급자 70대 남성 송모씨가 홀로 살던 빌라 앞. 김소희 기자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숨진 채 발견된 비수급자 70대 남성 송모씨가 홀로 살던 빌라 앞. 김소희 기자

고독사가 복지망 바깥에서 속출하는 건 더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20년 서울시에서 발생한 고독사 51명 가운데 복지급여 비수급자는 12명(23.5%)이었고, 지난해 1~10월엔 67명 중 15명(22.4%)이 비수급자였다. 경제적 취약계층 중심의 현행 복지 체제에서 고독사 5건 중 1건 이상은 경보를 울리지 않는 셈이다.

지난달 이래 서울에서 고독사한 것으로 확인된 비수급자들은 하나같이 주변과의 관계가 단절돼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가족이나 지인과의 왕래가 드물었고 이웃은 이들의 존재를 잘 인식하지 못했다. 송씨는 빌라 10여 채가 늘어선 주택가에서 살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이웃은 없었다. 옆집 주민은 "우리가 여기서 5년 넘게 살았는데, 인사하고 지낸 지도 얼마 안 됐다"며 "평소엔 일절 말을 안 하는 사람이다 보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씨의 경우 숨진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옆집에 사는 주민이나 8년째 근무 중인 경비원조차 이씨의 얼굴을 제대로 봤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고 했다.

복지망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지자체도 이들의 위기 상황을 감지하지 못했다. 관할 주민센터와 구청에 따르면 이들은 복지급여 수급자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고독사 위험군 관리 대상도 아니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비수급자라도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사회복지사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거의 없는 건 사실"이라며 "비수급자는 관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1인 가구 느는데 고립은 심화

서울 고독사 사망자 중 비수급자 비율 및 1인 가구 비중. 그래픽=강준구 기자

서울 고독사 사망자 중 비수급자 비율 및 1인 가구 비중. 그래픽=강준구 기자

1인 가구 증가 추세와 코로나19 유행 국면을 고려하면 비수급자의 고독사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016년 539만여 명(전체 가구 대비 27.9%)에서 2020년 664만여 명(31.7%)으로 급증했다. 이와 함께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의미하는 '사회적 고립도' 또한 2019년 27.7%에서 2021년 34.1%로 대폭 증가했다.

1인 가구에 고독사 걱정은 실감의 영역이다. 5년간 혼자 살고 있는 20대 이모씨는 "아파서 누워 있다 보면 '갑자기 병세가 악화돼 죽는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겠구나' 싶을 때도 있다"며 "끼니도 배달을 시키거나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니까 요즘은 배달기사만 만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이모(60)씨는 "매주 등산도 가고 요가도 다녀보지만,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지근거리에 도와줄 사람이 없는 건 사실"이라며 "(비수급자여서) 주민센터 도움도 못 받고 있기 때문에 종종 두려움이 엄습할 때가 있다"고 밝혔다.

"소득 중심 복지체계 개편 필요성"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전문가들은 고독사의 사각지대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소득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서비스는 소득과 상관없이 필요하다"며 "행정기관은 소득 수준에 따라 비용을 부과하되 민원인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연결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를 위해서는 사회복지사 인력 확충과 공공·민간서비스와의 연계망 구축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이웃공동체 활성화로 사회적 고립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변에 있는 이웃들이 고독사 위험이 높은 1인 가구를 공동체로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혼자 사는 이들이 주민과 함께 이야기하거나 소일거리를 할 수 있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사회적 공간이나, 혼밥 대신 같이 식사할 수 있는 공동 부엌을 마련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소희 기자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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