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게임 '쥐번샤'에 中 MZ세대 열광
코로나 불구, 매장 4년 만에 50배 팽창
폭력·선정성·무단 도용... 사각지대 난무
상하이 단속 나서, 게임 규제 강화 일환
살인 현장으로 꾸며 놓은 공간에 용의자 역할을 맡은 6명이 마주 앉았다. 이 중 한 명은 ‘살인자’다. 참가자들은 제시된 단서를 바탕으로 서로 질문과 토론을 통해 의심되는 인물을 추려 범인을 찾아낸다. 영국에서 시작된 추리게임 ‘스크립트 킬(Script kill)’이다.
중국은 이 게임을 ‘쥐번샤(劇本殺)’라고 부른다. TV방송이나 드라마의 대본인 ‘극본’과 ‘죽이다’라는 단어를 합친 말이다. 한국의 마피아 게임과 유사하다. 중국 최대 도시 상하이시가 13일 “쥐번샤를 단속하겠다”며 관리 규정을 공표했다. 이번 조치는 3월부터 공식 시행된다. 중국 매체들은 “상하이가 시작한 만큼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중국에서는 2016년 예능프로그램 ‘스타명탐정(明星大偵探)’이 흥행하면서 쥐번샤 열풍이 불었다. 새로운 방식의 놀이문화에 MZ세대가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2년 전 방영된 한국 프로그램을 모방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 스타명탐정 동영상 재생횟수는 100억 회를 웃돌았다.
이후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2018년 68억5,000만 위안(1조2,869억 원)에서 2020년 124억3,000만 위안(2조3,352억 원)으로 두 배 가까이 몸집을 불렸다. 게임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은 2017년 중국 전역에 1,000개에 불과했지만 2019년 1만2,000개, 2020년 3만 개로 3년 만에 30배 증가했다. 지난해 매장 수는 5만 개 이상, 시장 규모는 167억8,000만 위안(약 3조1,524억 원), 이용자는 941만 명으로 추정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오히려 쥐번샤가 입지를 굳히는 기회가 됐다. 가정에서 즐기는 비대면 온라인 게임이 각광받으면서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중심으로 저변을 넓히다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2020년 하반기 이후 오프라인으로 열기가 확산되는 선순환으로 발전했다. 경쟁업종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시장이 코로나19에 치명타를 입고 고전한 것과 달리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단기간에 과도한 관심이 쏠리고 자금이 몰리면서 부작용이 속출했다.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저속하고 난폭하고 공포와 선정성이 난무하는 게임 시나리오가 판을 쳤다. 돈벌이가 될 만한 프로그램을 베끼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업계의 부정행위를 걸러낼 제도가 온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오로지 업자들이 배만 불리는데 혈안이 되다 보니 법의 허점을 파고드는 사각지대가 곳곳에 똬리를 틀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던 당국이 규제의 칼날을 꺼냈다. 게임 출시 후 30일 내에 극본을 제출해 당국의 심사를 거치도록 했다. 외설, 도박, 폭력, 독극물, 모욕·비방 등 10가지 가이드라인을 설정했다. 관리규정 1조는 ‘사회주의 핵심가치관을 고취하고 국가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당국이 전면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타인의 권익을 해치는 범법행위는 물론이고 중국의 전통과 중화민족의 우월성에 흠집을 내는 게임은 아예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콘텐츠 심사요원을 따로 배정해 매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단속을 펴고 있다. 게임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게임에 설정된 장면이나 의상, 소품도 모두 심사대상이다. 특히 미성년자가 이용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제품은 고강도로 규제할 방침이다.
중국은 지난해 8월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고 낙인찍은 이후 청소년 온라인게임 강제 셧다운, 독과점 금지 등 게임산업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급기야 중국 최대 게임업체 텐센트는 17일 “올해 춘제(중국의 설) 연휴 기간 미성년자들이 총 7시간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밝혔다. 9일간 황금연휴에 저녁 8~9시 하루 한 시간씩 게임을 하되, 이 중 첫 이틀인 29~30일은 아예 접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빅테크와 인터넷 콘텐츠를 옥죄면서 중국의 앱은 2018년 452만 개에서 지난해 10월 기준 278만 개로 38% 감소했다. 게임산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는 세계적 추세와 동떨어진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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