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은 탈진실 시대에 극단의 진영 논리가 공동체를 어떻게 위기로 몰아넣는지 설득력 있게 그린다. 영화는 한 연구원이 지구로 향해 돌진하는 거대 혜성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백악관은 충돌까지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끔찍한 경고에도 혜성엔 관심조차 없다. 언론도 자극적 보도로 조회수를 올리는 것만 신경 쓰고 위기를 알릴 의무는 외면한다.
우여곡절 끝에 혜성 충돌이 이슈로 부상하지만 상황은 더 꼬인다. 혜성에 매장된 희소광물을 활용하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혜성을 잘게 쪼개 지구에 떨어트리자는 진영과 안전을 위해 우주에서 혜성을 완파해야 한다는 진영으로 여론이 양분된다. ‘올려다보지 마라(Don’t Look Up)’는 선동과 ‘올려다보라(Look Up)’는 절규가 뒤섞여 혼돈을 거듭하다 지구가 종말을 맞는다는 게 영화의 결말이다.
영화는 기후위기에 대한 메타포라고 하지만 연초부터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놓고 싸우는 우리 정치권과도 묘하게 오버랩된다. 북한이 이번에 발사에 성공했다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최고 속도가 마하 10이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1분이면 날아오는 속도다. 더구나 저고도의 하강단계에서 활공비행과 변칙기동을 하기 때문에 탐지와 요격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위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되레 1차 발사 때는 극초음속 기술력을 깎아내리는 데 급급했다. 그러자 북한이 같은 장소, 같은 방향으로 속도를 끌어올린 극초음속 미사일을 쏘는 지경에 이르렀다. 타조는 궁지에 몰리면 모래에 머리부터 파묻는다. 이쯤 되면 우리 정부도 진실이 두려워 애써 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정치권은 더 한심하다. 야당 대선 후보가 “선제타격 말고는 막을 방법이 없다”고 발언하자 여당에선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며 들고일어났다. 호전론자, 전쟁광이란 비난도 난무한다. 선제타격은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위기에는 침묵하면서 야당만 패는 건 선후가 뒤바뀐 느낌을 준다. 안보 불안을 해소할 책임은 기본적으로 집권여당에 있다. ‘전쟁세력 대 평화세력’ 프레임 뒤에 숨을 궁리만 하는 거라면 비겁하고 무책임하다.
야당도 안보 포퓰리즘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3축체계의 하나로 정립돼 있긴 하지만 킬체인(선제타격)은 구멍이 숭숭 뚫린 탁상공론에 가깝다. 선제타격을 하려면 도발 징후를 미리 알아야 하는데 오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시작전권도 가져오지 못한 우리는 선제타격 운운할 처지도 아니다. “핵ㆍ미사일은 한 번 공격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낳기 때문에 이런 개념까지 나온 것은 이해하나 기술적으로 어렵다”(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게 솔직한 평가다.
핵과 미사일은 고도의 전략 무기다. 북한이 이런 무기를 들고 나온 건 정치적 협상을 하자는 의미로 봐야 한다. 너희가 쏘면 우리는 이렇게 응징한다는 차원에서만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결국 군사적으로는 확고한 대비 태세를 갖추되, 정치적으로는 대화와 협상을 하는 투트랙 접근이 불가피하다. 진실보다 신념이나 감정으로 여론을 주도하는 탈진실 사회의 결말이 무엇인지 ‘돈 룩 업’은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올려다보지 마라’며 진영 논리만 앞세우는 세력은 과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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