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3일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부인할 수 없는 정책 실패”라고 비판하며 전국에 총 311만 가구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당 대선후보 경선 때 제시한 250만 가구보다 61만 가구나 늘어난 수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폭탄’ 수준의 신규 주택을 풀어 잡겠다는 얘기다.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대선 승리도 불가능하다고 보고 던진 승부수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이날 경기 의왕 포일 어울림센터에서 부동산 공급 공약을 발표했다. 지난달 △실수요자 취득세 감면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등 부동산 세제 공약을 내놓았고, 13일엔 용적률을 500%까지 허용해 '4종 주거지역’을 신설하는 재개발ㆍ재건축 규제 완화안을 공개했다. 세제ㆍ금융ㆍ공급을 아우르는, 이른바 ‘이재명표’ 부동산 정책 청사진이 완성된 셈이다.
서울에 3분의1 배정... 수도권 공급 총력
이 후보가 약속한 311만 가구는 현 정부 공급계획(206만 가구)보다 105만 가구가 더 많다. 특히 서울에만 정부안(59만 가구)에 48만 가구를 더한 107만 가구를 짓는다. 분당, 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규모(29만 가구)를 고려하면 서울에 신도시 3개가 새로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먼저 인천공항과 통폐합이 거론됐던 김포공항은 존치하되, 주변 유휴부지(서울 강서)를 개발해 8만 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 후보 측은 위례신도시(675만㎡)보다 큰 김포공항 터에 집을 짓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당내에서 “제주도 가려고 인천공항까지 가야 하느냐” 지적이 나오자 뜻을 접었다.
옛 용산 미군 부지 일대인 용산공원에는 10만 가구를 100% 청년 기본주택으로 제공한다. 또 태릉ㆍ홍릉ㆍ창동 일대 국ㆍ공유지에 2만 가구, 지하철 1호선 지상 구간을 지하화해 8만 가구의 주택을 지을 방침이다. 여기에 재개발ㆍ재건축을 활성화해 20만 가구를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달라진 부분은 당초 신규 택지로 검토했던 ‘경부고속도로 양재~한남 구간 지하화’ 계획을 제외한 정도다. 그는 “철도는 폭이 좁은데 도로는 넓어 그 위에 지상 구축물을 만들면 위험할 수 있다”면서 “이게 이재명 정부의 차이”라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해당 구간을 지하로 바꿔 쇼핑몰 등을 짓겠다고 한 만큼 ‘정책 유연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경기와 인천에는 기존 계획(123만 가구)에 28만 가구를 추가해 151만 가구가 새로 지어진다. 김포공항 주변 유휴부지(경기 부천ㆍ인천 계양) 개발(12만 가구), 경인선 지하화(8만 가구), 수도권 1기 신도시 리모델링 활성화(8만 가구) 등이다. 수도권을 뺀 나머지 지역은 기존 계획(24만 가구)보다 29만 가구가 늘어난다.
공급도 시세 '반값'으로
물량 공세만 펴는 게 아니라 주택공급 가격도 ‘반값’으로 대폭 낮춘다. 시세를 반영한 감정가 대신 조성원가 기준으로 분양하면 시세의 절반 정도에 공급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 후보는 “택지조성원가 등을 따져 경기도에서 검토해 보니 30평형이 3억 원대면 된다”고 설명했다. 공급물량 30%는 무주택 청년(19~39세)에 우선 배정하고,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게 주택담보인정비율(LTV) 90%(현재 50%) 적용, 취득세 감면 등의 혜택도 부여하기로 했다.
말잔치로 끝난 文 정부, 이재명은 다를까?
집값 잡기 대책이 총망라됐지만, 실현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우선 신규 공공택지 핵심 후보군인 김포공항ㆍ용산공원 모두 지역 주민은 물론, 서울시조차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20년 ‘8ㆍ4 대책’(13만2,000가구)을 발표하며 정부과천청사 부지에 4,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었으나 주민 반발에 밀려 결국 대체 부지를 찾아야 했다. 지상철 지하화를 통한 주택 공급 또한 천문학적 재원은 물론, 기술 안정성 등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건 ‘철도 위 행복주택’사업이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점만 봐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지역구에 지상철이 있는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하화 후 실제 입주까지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의구심을 내비쳤다. 이 후보도 임기 내 입주 가능 물량을 묻자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정부가 물량을 확정적으로 공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택시장 안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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