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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담 채취'가 아직도 합법? ... 선진 한국의 그늘

입력
2022.01.26 04:4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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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관련 이슈와 제도, 개념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셨죠? 에코백(Eco-Back)은 데일리 뉴스에서 꼼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뒷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경기 용인의 한 농장에서 반달가슴곰 2마리가 탈출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1마리는 수색 2시간 만에 잡혔지만, 다른 1마리는 정부가 3주간 '지리산 곰 전문가'라 불리는 국립공원공단 남부보전센터 소속 연구원과 수의사, 전문 포수 등을 총동원했음에도 털 끝 하나 보이지 않았죠.

결과는 허탈했습니다.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서자 농장주가 "탈출한 반달가슴곰은 1마리이고, 다른 1마리는 불법 도축했다"고 자백한 겁니다. 웅담 채취 목적으로 도축한 뒤 고기로 소비한 거죠. 농장주는 결국 공무집행방해, 동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받고 있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서 드는 의문점 두 가지. 곰은 왜 동물원이 아닌 '농장'에서 탈출했는가, 그리고 웅담 채취가 여전히 가능한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접하면서 놀라는 지점인데요, 국내에서 곰 사육과 웅담 채취는 여전히 '합법'입니다. 아니 설마, 할 일이 아닙니다. 이번 에코백에서는 그 배경을 살펴보려 합니다.

강원 화천군 곰 농장 우리 속 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다. 화천= 고은경 기자

강원 화천군 곰 농장 우리 속 곰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다. 화천= 고은경 기자


1980년대 곰 쓸개는 강남 아파트 한 채

국내 곰 사육은 1981년 처음 시작됐습니다. 원래 국가나 지자체, 공공기관에서만 학술연구와 교육용 전시 등의 용도에 한해 맹수류를 수입할 수 있었는데, 전두환 정권 시절 농가소득 증대 차원에서 개인도 일정 시설을 갖추면 재수출 용도로 곰, 호랑이, 사자, 늑대, 여우 등을 수입할 수 있게 허용한 겁니다.

수입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곰에 쏠렸습니다. 잡식성이라 기르기 쉽고, 무엇보다 웅담의 인기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곰 잡으면 팔자 고친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실제 1981년 광주에 나타났다가 붙잡힌 반달곰의 쓸개는 1,600만 원에 거래됐습니다. 당시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이었습니다. 또 곰발바닥 요리는 샥스핀 등과 함께 고급요리로 분류됐고요. 이런 추세를 타고 5년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수입된 곰은 무려 493마리에 달합니다.

곰 사육 인기몰이에는 정부도 한몫했습니다. 정부가 만든 1985년 대한뉴스 영상을 보면 "곰에서 나오는 웅담과 피, 가죽 등은 수입 대체 효과까지 있다"고 강조하는 내용도 나옵니다. 당시만 해도 곰 처분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었던 탓에 웅담 채취는 물론, 고기 등도 식용으로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한 신문에 게재된 대웅제약 광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0년대 한 신문에 게재된 대웅제약 광고. 한국일보 자료사진


88서울올림픽 전 국제적 비난 여론에 돌변한 정부

곰 사육은 곧 문제가 됐습니다. 계기는 88서울올림픽이었습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곰 사육, 웅담 채취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1985년, 돌연 수입을 중단시킵니다. 수출은 가능했지만 사가는 곳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미 수입된 곰들은 방치됐고, 결국 1991년에는 살아있는 곰의 쓸개를 채취하는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국제적 비난 여론을 의식하던 정부는 1993년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도 가입합니다.

곰 사육이 점점 더 궁지에 몰리게 되자, 이번엔 곰 사육업자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기껏 합법화 해줄 땐 언제고 지금 다 묶어버리면 곰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정부는 결국 한 해 뒤인 1994년 '노화 곰 처리기준'을 만듭니다. '24세 이상' 곰의 도축은 합법화한 겁니다. 2005년 도축 가능한 곰의 나이를 '10세 이상'으로 낮추면서 웅담 채취만 약재용에 허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금지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웅담의 인기는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우루사' 같은 대체약품들이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먹기 좋은 형태로 개발돼 대중화됐고, 정부도 국제적으로 비난받는 곰 쓸개 대신 차라리 이런 약을 먹으라며 전략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야생반달곰 기준 1억~3억 원까지 치솟았던 웅담 가격이 떨어지자 농장주들은 다시 대책 마련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정부는 2014년부터 3년간 한 마리당 약 420만 원씩을 지원해 중성화 수술을 진행합니다. 더 이상 개체 수가 불어나는 걸 막자는 겁니다. 2005년 1,614마리에 달했던 국내 사육곰은 2017년 660마리, 지난해 9월 기준 369마리까지 줄었습니다.

경기 한 사육 곰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식용 개를 키우는 ‘뜬 장’을 본떠 만든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녹색연합 제공

경기 한 사육 곰 농장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이 식용 개를 키우는 ‘뜬 장’을 본떠 만든 철제 우리에 갇혀 있다. 녹색연합 제공


40년 만에 남은 곰 보호시설 짓지만 ... 웅담 채취 여전히 합법

결국 정부는 사육 곰 문제 해결을 위한 민관협의체를 만들어 지난해 '곰 사육 종식'을 선언했습니다. 곰 수입 허용 40년 만의 일입니다. 기존 사육 농가에 대해서는 2025년까지 유예기간을 주되, 전남 구례와 충남 서천에 '생추어리(Sanctuary)', 즉 보호시설을 짓기로 했습니다. 남은 곰 중 320여 마리가 10세 이하인 만큼 사육이 종료됐을 때 이 곰들을 보호할 시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생추어리는 야생으로 돌아갈 수도, 민간에서 키울 수도 없는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곳입니다. 동물원과는 다른 개념이죠. 이미 중성화 수술을 받은 사육 곰들을, 이곳에서 인도적 차원에서 보호하다 죽도록 하는 겁니다. 인간 욕심에 평생을 좁은 우리에 갇혀 고통받았지만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편히 갈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아이러니한 건 곰 사육 종식을 선언했음에도, 웅담 채취는 여전히 합법이란 점입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곰 수입을 허용, 장려했던 '원죄' 탓입니다. 곰 사육이 끝나면 웅담 채취는 어차피 자동적으로 중단되겠지만, 2025년까지 4년간은 곰을 도축해 웅담을 채취해도 여전히 '합법'이라는 사실이 못내 안타깝습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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