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그해의 크리스마스는 복음서의 명절이라기보다 차라리 지옥의 명절이었다. 텅 비고 불 꺼진 가게들… 전 같으면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한데 모여서 지내던 명절도, 이제는 때가 꾀죄죄한 가게 내실에서 일부 특권층이 금력으로 장만하는 고독하고도 부끄러운 몇 가지 즐거움 이외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서 감염병에 엄습당해 폐쇄된 알제리 오랑의 스산한 명절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 하지만 정작 이 도시의 방역 최일선에 선 의사 리유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헌신에도 불구하고 치료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고작 환자를 찾아내 그들을 가족과 격리하는 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속수무책처럼 보이는 이 방법은 그러나 여러 백신과 갖은 치료제가 빠른 속도로 개발, 이용되는 지금까지도 감염병 대처를 위한 공중위생의 기본이다. 해외 유입 차단, 군대까지 동원한 검역, 도시 간 왕래 금지, 감염자 시설 격리, 사람 간 1m 이상 거리 두기 등이 모두 페스트 이후 굳어진 방역 수칙들이라고 한다.
□ 강한 전파력을 가진 오미크론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각국이 너나 할 것 없이 놀라 방역 정책 강화에 나서고 있다. 다행인 것은 중증화나 치사율이 델타에 비해 낮고 확진자 급증세가 한 달 정도면 꺾인다는 점이다. 사망자 숫자는 대부분 나라가 델타로 심각했을 때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 때문에 오미크론을 먼저 겪은 남아공이나 영국 등에서는 이를 독감 정도로 취급하는 방역 완화 정책을 시도하기도 한다.
□ 국내에서는 높은 백신 접종률과 철저한 검사로 오미크론 전파 속도를 늦췄지만 방역망이 뚫린 이상 하루 수만 명 확진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늘어나는 확진자 숫자만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으나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준비만 잘하면 중증환자나 사망자가 심각한 수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코로나 검사와 진단, 치료 체계가 재택치료 위주로 전환된다. 시민의 책임에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는 뜻이다. 거리 두기 같은 기본 방역 수칙 준수가 2년여 코로나 확산 중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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