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열한 번째 달은 '동짓달'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이 든 달인 만큼, '동짓달 긴 밤'은 매서운 추위나 어두운 시기를 그려 낸다. 동짓달 다음 달은 '섣달'이다. 동짓달과 섣달을 아울러 이르는 '동지섣달'은 그저 두 달을 묶어 내는 데 그치는 말이 아니라, 혹한의 겨울 날씨나 한 해의 마지막 시기라는 뜻으로 쓰인다. 동지섣달이 지나가면 한 해가 다 가는 셈이므로, 옛 어른들은 '동지 전에 일 년 동안에 진 빚을 다 갚는 법'이라 했다.
지금 섣달은 한 해의 끝 달이지만, 흥미롭게도 섣달은 원래 '설이 드는 달'이란 뜻이었다.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해와 달을 보며 날을 세었다. 한 해의 첫 달을 어느 것으로 잡느냐에 따라 계산법이 달라지는데, 지금 우리가 음력 마지막 달을 섣달이라 이르는 것은 음력 12월을 설로 쇠었던 흔적이다. 한 해의 첫 달인 '섣달'과, 한 해의 첫날인 '설날'은 관련된 말이다. 열두 번째 달이 지나면 다시 정월이 된다. 정월 초하룻날은 지금 우리의 설날이다. 새해의 처음이라는 '설'이 되면 우리는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한다. '맛'과 '멋', '마리'와 '머리', '낡다'와 '늙다' 등 모음의 차이로 분화된 여러 말과 같이, '살'과 '설'도 우리말에서 각각 제구실을 하고 있다.
섣달 그믐날을 우리는 '까치설'이라 부른다. 사전에서는 설날의 전날을 이르는 어린아이의 말이라 한다. 그런데 까치도 설날이 있을까? 왜 사람 설의 하루 전날일까? 다른 새도 아니고 하필이면 까치일까? 왜 어린아이의 말이라 할까? 궁금증이 난다. 이 말은 원래 '아ᄎᆞᆫ설'이었다. '아ᄎᆞᆫ'(옛말)은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등의 '-아지, 아치'와 같이 작은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까치설'이란 곧 '작은 설'로, '아ᄎᆞᆫ'이란 말이 사라진 이후에 길조였던 까치가 이 자리를 꿰찼다. 비슷하게 생겼더라도, 까마귀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안 될 일이다.
동요에서 어린아이는 '곱고 고운 댕기'도, '새로 사 온 신발'도 자기 것이라고 생떼를 쓴다. 노랫말의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저고리'처럼, 과거에 아이들 새 옷이란 설날쯤은 되어야 마련되었다. 그 옷을 어머니는 동지섣달 내내 밤새 눈 비비며 지으셨을 것이고, 그 곁에 둘러앉은 아이들은 설렘 속에서 잠들었을 것이다. '까치설'이란 말에 소복이 담긴 기대와 설렘은 다 자란 어른의 마음에도 그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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