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성시 모델' 만든 임승관 안성병원장
"얼마 전 동네 병·의원 의사 분들에게 오미크론 대응법에 대해 설명할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조차 '코로나19 의심환자를 대면 진료하다 확진자가 나오면 병원도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지난 2년간 '코로나=격리'로만 인식하다 보니 의사 분들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오미크론 대응을 위한 '안성시 모델'을 설계한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은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대응의 출발점은 '오미크론 대응단계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는 사실부터 받아들이는 것이라 강조했다.
코로나 의심환자, 이미 동네 병·의원 드나들었다
단적으로 임 원장은 "의원 원장님들은 마치 자기 병원엔 코로나19 환자가 한 번도 안 왔던 것으로 착각하고 계시다"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진료 현장에서 보면 이미 많은 코로나19 환자들이 감기 증상인 줄 알고 동네 병·의원을 숱하게 드나들었다고 봐야 한다. "최근에 보건소로부터 인계받은 재택치료 환자도 이미 3, 4일 전 감기 기운이 있어 동네 이비인후과에 다녀온 뒤였어요. 확진되기 전이다뿐이지 의심환자들은 이미 병·의원을 드나들었고, 지금도 드나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2년간 '코로나19 확진'은 곧 '시설 폐쇄', '동선 겹치면 전부 검사'와 동의어로 쓰였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코로나19 의심 환자와 병원 대기실에서 같이 머무르거나, 코로나19 환자가 다녀간 병원에 간다는 걸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치부해왔다는 것이다.
'지역화'로 동네 병·의원이 환자 90% 감당해야
임 원장이 경기도, 보건복지부와 함께 만든 '안성시 모델', 더 정확히는 '안성시 지역사회 기반 코로나19 관리모형'을 만든 것도 그 때문이다. 확진자가 크게 불어날 오미크론 확산에 대응하려면 바이러스를 다 막을 수는 없다는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는 쪽이다.
그래서 안성시 모델의 핵심 키워드는 '지역화'다. 현재 재택치료를 제외한 입원·외래는 광역 지자체가 틀어쥐고 있는데 이를 시군구 중심의 기초자치단체로 넘겨주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확진자의 90%에 달하는 '저위험군'은 동네 병·의원이 관리하고, 10% 정도 되는 '고위험군'만 상급 병원에서 집중 치료하자는 제안이다.
가령 지금은 안성 주민이 평택병원에서 재택치료를 관리받다, 증상이 악화돼 입원이 필요하면 고양의 명지병원으로 갔다가, 더 위중해지면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된다. 경우에 따라선 수도권 환자가 대구, 군산, 목포에까지 가서 입원한다. 반드시 병상이 부족해서만도 아니다. 임의로 배정하다보니 수도권 환자가 경상도로, 전라도로 이송되는 웃지 못할 일도 종종 벌어진다. 이동 거리도 거리지만, 환자의 진료 기록이 뚝뚝 끊겨 의료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외래진료센터도 전국에 몇백 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별로 1곳씩 두루 배치되는 게 중요하다. 안성병원만 해도 1,800만 원을 들여 어린이집을 리모델링해둔 상태다. 한마디로 지역화란 안성시에서 환자가 나왔으면 안성시에서 먼저 해결하고 안 되면 인근 큰 병원으로 옮기는, 평범한 의료체계로 되돌아가자는 얘기다.
고위험군은 광역지자체가, 집단감염은 중앙정부가 맡아야
임 원장은 "지금은 확진 이후 보건소에 보고하는 것부터 입원까지 최소 5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지역화를 하면 이런 복잡한 행정절차가 줄어든다"며 "투석, 분만, 에크모 치료 등 지역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치료는 광역 지자체에서, 집단 감염 등 대규모 사례는 중앙 정부에서 맡는 식으로 분업하면 효율적으로 환자를 관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안성시 모델도 시험단계다. 가장 큰 걸림돌은 환자는 물론, 의료진의 불안감이다. 임 원장은 "일단 코로나19 경험이 없는 동네 병·의원들에 오미크론 대응이 별거 아니라는 걸 경험적으로 인식하게 해줘야 한다"며 "당장 대면 진료를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저위험군 재택치료에 참여해 1일 1회 전화 모니터링을 실시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24시간 상근 등을 요구한 방역당국 방침은 무리수에 가깝다는 얘기다.
동네 병·의원 '저위험군 재택치료'부터 단계적 적응해야
동네 병·의원 원장들이 손이 상대적으로 덜 가는 저위험군 재택치료에 참여하다보면, 이미 많은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다녀갔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대면 진료도 별 거 아니란 걸 깨닫게 될 거라는 게 임 원장의 생각이다.
임 원장이 "완전한 인식의 전환"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동네 병·의원의 대면 외래가 불가능한 이유는 음압시설이 없어서, 동선 분리가 안 돼서가 아니라, 오미크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의료진은 물론 병원이 입점한 건물주, 병원 옆에 있는 학원 원장, 학부모 등도 이제는 오미크론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걸리면 안 돼'가 아니라 '만약 걸려도 제때 치료받고 나으면 돼'로 인식이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국민 30~50%감염... 동네 병·의원 참여 더 늘려야
임 원장이 이를 반복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 국민의 30~50%가 감염될 수밖에 없는 게 오미크론"이기 때문이다. 오미크론 환자가 병원에 오는 것을 거부하거나 막을 게 아니라 사전 예약제를 실시하고 대기실을 분리하는 등 전파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찾는 게 맞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방역당국이 오미크론 대응단계에 참여시킨다는 동네 병·의원은 1,000여 개만으론 부족하다. 임 원장은 "그 10배, 혹은 100배 정도의 의료기관이 참여해야만 오미크론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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