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육사 안동으로 이전" 공약
'논산 추진위'까지 만들었던 충남도
"지역 선심성 공약 재고돼야" 비판
윤석열 측 "계룡·논산에 사드"엔
"수도권·비수도권 편가르기냐"
20대 대선을 약 한 달 앞두고 돌연 충남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육군사관학교(육사) 경북 안동시 이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 공약 때문입니다.
양승조 충남지사, 허태정 대전시장 등 지방자치단체장들이 후보들을 공개 비판했고요. 지역 언론도 '충청 홀대론이 재점화됐다'거나 '노골적 충청 패싱'이란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육사와 사드는 왜 '분노의 방아쇠'가 됐을까요. 충남의 속사정을 정리해 봤습니다.
충남, 4년 전부터 육사 유치 준비...추진위까지 만들어
2020년 각 지자체에는 육사 유치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해 7월 '정부와 여당이 서울 노원구 태릉골프장과 육사를 주택 용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촉매가 됐죠. 집값 잡는 데 번번이 실패한 당정이 "군 부지까지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서둘러 대안을 마련하던 시기였습니다.
유치전의 열기는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강원의 경우 화천·홍천군, 원주시까지 뛰어들어 도내에서도 과열 양상을 보였죠. 최문순 지사가 후보 단일화를 위한 회동을 제안할 정도였습니다. 지난해 4월 전남 장성군은 아예 대선 공약에 육사 이전을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지자체들이 육사 유치에 '목숨을 거는 건' 지역 경제 활성화 때문입니다. 수도권 쏠림 현상으로 인해 지역 자립 기반이 흔들리는 현실에서 인지도와 파급력이 있는 육사 유치는 좋은 대안이라 생각한 거죠.
충남은 지난해 4월 논산시 유치를 목표로 육사 유치추진위원회까지 출범시킬 정도로 열의를 보입니다. 사실 충남이 육사 유치를 준비했던 것은 그보다 앞선 2018년부터입니다. 양 지사는 당선 직후 지역 자립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발표했는데요. 그중 하나가 육사 이전이었습니다.
이 후보의 '육사 안동 유치' 공약에 민주당 소속인 양 지사가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반박 입장을 밝혔던 것은 이 같은 배경 때문입니다. 앞서 이 지사는 설날인 1일 고향 경북 안동을 방문해 "안동엔 약 40만 평 규모의 구 36사단 부지가 있으므로 육사를 이전한다면 안동의 지역 경제 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표합니다.
양 지사는 3일 "대선을 앞두고 제시된 지역 선심성 공약은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육사 이전 공약을 다시 한번 생각해 줄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논산시에 3군본부, 육군훈련소, 국방대가 있고 국방 관련 산학연구단 30여 개도 충남에 인접해 있다"며 논산이 최적지임도 강조하죠.
황명선 전 논산시장도 급히 지역 민심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그는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자치분권 특보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황 단장은 4일 충남도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육사 이전과 같이 여러 지역이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선거 때 발표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며 '검토 과정에서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놨죠.
이어 "김영진 사무총장과 정성호 총괄특보단장에게 문제를 제기해 놓은 상황"이라며 "집권하면 인수위 차원에서 최적지가 어디인지 합리적 의사 결정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한편 안동시와 예천군이 지역구인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가 안동시민을 상대로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 후보가 경기지사 재임 당시 경기 북부접경지역으로의 이전을 건의했던 것, 민주당이 그동안 충남 유치에 공을 들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경기와 충남은 고려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했죠. 이 지사의 '육사 안동 이전 공약'이 지역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 경우 국민의힘 입장으로서는 곤란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견제구를 날리는 것입니다.
설상가상 윤석열 측, 충남을 사드 후보지로 언급
이 후보가 육사 이전을 공약한 날, 설상가상으로 윤 후보 측은 사드 추가 배치 지역으로 충남을 언급합니다. 윤 후보는 지난달 30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사드 추가 배치"라는 여섯 글자의 단문 공약을 발표하는데요. 이어 김재섭 국민의힘 서울 도봉갑 당협위원장이 1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경기 평택시, 충남 계룡·논산시를 사드 추가 배치 지역으로 꼽습니다.
윤 후보 측은 국방력 강화를 위해 사드 추가 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인데요. 그러나 정말 현실화할 경우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드 기지가 설치된 경북 성주군에서도 갈등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도 기지로 물자가 반입될 때마다 경찰과 주민 간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자파로 인한 건강·환경 논란도 여전해 사드 후보지 선정을 '폭탄 돌리기'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이 같은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후보지 언급은 여론 격화에 불을 당겼습니다. 3일 양 지사는 물론,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도 비판 성명을 냈죠. 먼저 양 지사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주민 편가르기 발언으로 규정하며 "수도권 주민이 불편해할 수 있으니 평택 미군 기지나 계룡대 3군 본부에 배치하겠다는 국민의힘 당직자의 발표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충남도당도 "분열 조장"이라고 주장했고, 세종시당은 "충청권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하라"고 촉구했죠.
논란을 의식한 듯 윤 후보는 3일 대선후보 첫 TV토론에서 "위치는 군사적으로 정해야 할 문제"라고 밝힙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요격 장소는 꼭 수도권이 아니어도 강원도든 충청도든 아니면 경상도지만 조금 더 당겨오든"이라고 언급해 논란은 강원, 경기지역으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항공우주청 경남 설립' 두고도 "충청 홀대"
윤 후보의 '항공우주청 경남 설치' 공약도 '충청 패싱'이란 시각이 있습니다. 윤 후보는 지난달 17일 경남을 방문하며 "항공우주청을 설치, 경남을 항공우주산업 클러스터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합니다.
또 같은 달 21일 대전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자리한 경남에 항공우주청을 설치하는 것이 업무 효율과 클러스터 형성에 도움이 된다"고 쐐기를 박습니다. 대신 대전엔 방위산업청을 옮겨와 국방과학기술의 요람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하죠.
민주당 대전시당은 즉각 윤 후보가 표를 의식해 대전 발전에 역행하는 공약을 냈다며 "'충청의 아들'이 아닌 '충청의 안티'"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허태정 대전시장도 "청(廳) 단위 기관은 대전에, 부(部) 단위 기관은 세종에 배치하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며 "충청권 홀대 선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국민의힘 대전시당은 이에 "국가 전체 균형발전 차원에서 항공우주청 경남 건립 공약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방사청을 옮겨 오는 것이 (지역경제에) 더 실익이 될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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