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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화천대유는 왜 그들이 필요했나...고문 변호사 업계의 '민낯'

입력
2022.02.09 04:30
수정
2022.02.09 07:4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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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고문 변호사 세계]
<상> 화천대유가 꾸린 호화 고문단
업무·보수 기준 없어…송무 없어도 고문료 수년 지급
화천대유 임원 "김만배, 고문 변호사·액수 직접 지시"
"'신세 진' 사람들 경제적 도움 차원…자문 자료 없어"
박영수·권순일에 이경재·강찬우 법인도 억대 수령
법조계 "배후 위세 과시, 알선·청탁 보험용" 지적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으로 지난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화천대유 임원 A씨는 검찰에서 고문 변호사들의 이름과 역할을 술술 털어놨다. 대법관과 검찰총장 등 법조계 최고위직 출신부터 정치권과 언론계 인사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이름 올린 이들의 면면에 검찰은 혀를 내둘렀다. 그 명단엔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 등장하는 '50억 클럽' 인사는 물론이고, 이름만 대면 알 법한 각계 명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고문 변호사는 '어떤 분야에 대해 전문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해 의견을 제시하고 조언하는 직책을 맡은 변호사'를 뜻한다. 지식과 경험을 돈으로 거래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문제는 고문 변호사의 업무 영역과 보수와 관련해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화천대유에서처럼 대주주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보수는 천차만별이고, 역할도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 때가 허다하다. 조직 내에서 고문 변호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구성원이 극히 적었다는 점도 이들의 활동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법관·총장 출신까지 '전방위 자문료 살포'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법조계에선 대장동 의혹의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가 '일그러진 고문 변호사의 세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입을 모은다. 친분을 통해 알게 된 이름 있는 전관들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고,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거액의 고문료를 꼬박꼬박 제공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이 지난해 10월 조사한 화천대유 임원 A씨는 "법조인들 고문계약은 모두 대주주 김만배 회장의 개인적 친분에 따라 결정됐다"며 "인간적으로 신세 진 사람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려 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화천대유는 호화 고문단과 자문단에 매달 수억 원을 전달하며 각별히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정영학 녹취록'에선 "변호사들이야 자문료를 주면 된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 놓을 걸 그랬다. 변호사비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문 변호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래픽=김대훈 기자

그렇다면 화천대유는 어떤 사람들을 고문(자문) 변호사로 고용했을까.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화천대유는 2015년 7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게 2억5,500만 원(매달 1,500만 원)을 자문료로 지급했다. 그가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 강남에도 비슷한 시기 1억3,750만 원이 제공됐다. 2015년 6월 1,650만 원을 시작으로 6차례에 걸쳐 적게는 1,100만 원에서 많게는 4,400만 원까지 지급됐다.

지급 이유는 표면적으론 도시개발과 관련한 자문 대가였다. 화천대유 관계자들은 박 전 특검이 한 달에 두세 번 사무실에 들러 경영진 등과 사업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자문과 관련한 검토 보고서는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어떤 자문을 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

수원지검장 출신 강찬우 변호사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평산에도 2018년 1월부터 3년간 매달 550만 원씩 총 2억 원 가량의 자문료가 지급됐다. 차장검사 출신 이경재 변호사가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 동북아로는 2015년 9월부터 월 330만 원씩 6년간 2억3,760만 원이 건너갔다. 화천대유 임원 A씨는 "김만배 회장이 이들 법무법인 대표와 친분을 내세워 지시한 것"이라며 "지급액이 어디는 330만 원, 어디는 1,100만 원으로 달랐는데 그걸 정한 것도 김 회장"이라고 밝혔다.

'50억 클럽'에 이름을 올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 역시 2020년 11월부터 1년간 2억4,000만 원을 받기로 고문 계약을 맺었다. 다만 지난해 9월 대장동 의혹이 불거져 사직하면서 실제 지급액은 2억1,066만 원이었다. 권 전 대법관은 논란이 커지자 화천대유에서 받은 급여를 모두 사회복지기관에 기부했다.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성문 전 대표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성남시를 상대로 소송 중인) 대장동 북측 송전탑 지하화 문제 해결을 위해 모시게 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화천대유 일부 임원은 언론사 인수 문제와 관련해 권 전 대법관이 경영 자문을 해줬다고 얘기하고 있다. 물론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외에도 화천대유는 2019년 10월부터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대표로 있던 법무법인으로 매달 1,100만 원씩, 고검장 출신 변호사가 몸담은 법무법인으로 월 330만 원씩 자문 비용으로 지급했다. 또 지검장 출신 변호사들이 속한 법률사무소에도 일정 금액의 자문료가 송금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화천대유가 법조인 출신 전관과 법무법인을 상대로 지급한 고문료와 자문료만 최소 20억 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원유철 전 의원 부부와 조훈현 전 의원 등 정치인 고문까지 더하면 그 비용은 더 올라간다. 유력 중앙일간지 논설위원과 경제지 간부를 지낸 전직 언론인들에게도 고문료를 지급했는데, 그 이유는 대체로 김만배씨와의 '친분'이었다.

"영향력 과시, 알선·청탁 보험" 위법성 지적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화천대유 사무실 입구 모습. 뉴시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화천대유 사무실 입구 모습. 뉴시스

법조계에선 화천대유가 전관 변호사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들인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들을 내놓고 있다. 우선 "통상적인 자문 업무 이외에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란 얘기가 가장 많이 나온다. 과도한 고문단 규모와 초호화 멤버, 장기간에 걸친 비용 지급 방식을 볼 때 이들에게 사업과 관련한 평범한 자문 역할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 자문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당사자 계약에 따라 보수와 업무 범위가 천차만별인 게 자문 계약의 특징"이라며 "화천대유 입장에선 이런 점을 활용해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영입한 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 역시 화천대유 사례를 두고 "전형적이면서도 극단적인 고문 변호사 활용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급 액수가 크고 굉장히 많은 곳과 계약했다"며 "신생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전관을 내세워 과시하거나, 사업 과정에서 법적 리스크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보험용'으로 영입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화천대유는 특별한 역할 없이 꼬박꼬박 돈을 챙겨 가는 고문 변호사 시장의 민낯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자문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자문계약은 통상 검사장급도 월 200만~300만 원대로 시간과 건수를 정해 놓는다"며 "그럼에도 업무 내역이 없다면 '사후 대가'라는 의심이 든다"고 짚었다. 그는 "경제적 도움을 주고 싶어 고문으로 채용했다면 일종의 증여"라며 "이를 회삿돈으로 줬다면 배임으로 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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