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후보들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계승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의 꿈이었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제주 강정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의 '자주 국방' 의지를 강조했다.
봉하 찾은 이재명 "참혹했던 순간 잊기 어렵다"
이 후보는 6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이에 앞서 노 전 대통령의 연대기를 듣는 동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가 하늘을 보며 큰 숨을 몰아쉬는 등 감정이 흔들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 묘소(너럭바위)로 다가간 이 후보는 무릎을 꿇은 뒤 너럭바위에 두 손을 올리더니 고개를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돌아선 그는 면장갑을 낀 채로 눈물을 닦기도 했다.
이 후보는 참배 후 즉석 연설에서 "이곳을 보면 언제나 그 참혹했던 순간을 잊어버리기 어렵다"고 운을 뗐다. 이어 "반칙과 특권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을 여러분도 기다리시느냐"라며 "그러나 그 세상은 그냥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결국 운명은 여러분을 포함해 우리 국민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 사는 세상은 노무현의 꿈이었고, 문재인의 꿈이었고, 또 이재명의 영원한 꿈"이라며 "제가 여러분의 도구로써 이뤄내야 할 세상"이라고 했다. 그는 방명록에도 '함께 사는 세상, 반칙과 특권 없는 사람 사는 세상, 제가 반드시 만들겠다'고 적었다.
윤석열, 강정마을서 "盧의 결단, 가슴에 새긴다"
윤 후보는 5일 제주 해군기지가 있는 강정마을을 찾았다. 제주 해군기지는 2007년 노 전 대통령이 지지층의 반대에도 건설을 진행한 곳이다. 윤 후보는 "제주 해군기지는 국가의 필수적 요소다. 무장과 평화가 함께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소개하며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자주국방과 평화의 서막을 연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채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지만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자주 국방' 의지를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추가 배치와 북한 선제타격론 등 자신의 안보 공약과 연결지으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윤 후보가 민주당 출신 노 전 대통령을 추켜세운 건 처음이 아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난해 11월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기득권과 싸운 노무현 정신을 배우겠다"고 밝혔다. 최근 공개된 배우자 김건희씨가 유튜브채널 관계자와의 '7시간 통화'에서도 "남편이 노무현 연설을 외울 정도로 좋아한다", "노무현 영화 보고 혼자 2시간 동안 울었다" 등의 발언도 있었다.
이 후보는 6일 취재진과 만나 윤 후보가 노 전 대통령 향수를 자극하는 행보를 보인 것에 대해 "그분의 특이한 여러 행동이나 발언에 대해 특별히 말씀을 드리지 않는 게 예의일 것 같다"고 답했다.
與, '노 전 대통령 합성 영상' 삭제 해프닝
한편, 민주당에선 노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합성 영상'을 공개했다가 이를 삭제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5일 당 공식 유튜브채널 '델리민주'에는 '두 번 생각해도 이재명입니다 #노무현의 편지'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해당 영상에는 노 전 대통령이 "기득권과 싸워 이겨내는 정의로운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에 성대모사한 목소리를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사자 명예훼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 선대위 측은 "선대위가 제작한 게 아니라 지지자가 제작한 것"이라며 "송영길 대표가 경고 조치를 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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